[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치아 엑스레이 사진. 사진 픽셀

- 나의 치아에 비상벨이 울렸다

최근에 치아가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어릴 적부터 치아가 약한 편이고 관리를 잘 못 한 탓에 성인이 된 후에 치아 때문에 고생을 꽤 하고 있다. 하지만 치아로 인해 고생해도 가기 싫은 곳이 치과다.

치과에 가면 날카로운 기계가 내 입속에서 맴돌며 내는 괴기한 소리와 아픈 치료를 참아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더구나 중증장애인들은 치과에 가기 싫은 이유가 몇 가지 더 추가된다. 일단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치과를 찾기가 어렵고, 검사와 치료 과정에서 옮겨 앉는 과정을 최소로 할 수 있는 배려와 협조적인 지원 인력이 있는 곳도 드물다.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치과에 가서도 진료 거부당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대놓고 거절하기보다 본인 실력이 안 되고 병원 장비가 부족해서 치료할 수 없다는, 그럴싸한 포장을 해대지만 결국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치과 방문이 쉽지 않았던 터에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 치아 관련 자원 활동하시는 의사분을 알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되었다. 게다가 그 의사 선생님이 우리 집 근처에 치과 개원까지 하면서 나의 치아 걱정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비록 병원이 넓지도 않고 완벽한 편의시설도 없지만,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잘 지원해줘서 다니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 치과 덕분에 몇 년 동안 치아 관리가 수월했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의 개인 사정으로 병원이 이전하게 되었다. 집 가까이 있던 치과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니 나도 서서히 치과와 멀어졌다. 치과라면 겁부터 내는 내가 그나마 치과가 집 근처에 있어서 꾸역꾸역 다닐 수 있었는데 거리가 멀어지니 나름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겼다. 그렇게 치과와 멀어지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나의 치아에는 비상벨이 켜졌다.

- 중증장애인의 치아 관리는 포기부터 시작된다

사실 장애 상태가 점점 중증으로 진행되면서 홀로 양치질하는 게 어려워졌다. 간신히 혼자 할 수 있다고 해도 시간만 더 오래 걸리지 잘 닦아내지 못하는 느낌이라서 보조를 받는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보조를 받아도 힘든 건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활동지원사분은 본인이 씻는 방식으로 타인을 씻겨 준다.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나중에는 본인이 편한 방법을 택한다. 양치질도 사람마다 닦는 방식이 달라서 개운함과 치아를 닦는 강도의 차이가 다르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어쩔 수 없기에 포기해 버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치아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치아 상태가 정말 안 좋아졌다. 보나 마나 그동안 치과 방문도 소홀히 해서 비용도 상당할 것만 같았다. 비용 생각하니 걱정돼서 미루고 또 미루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가 이렇게 미루면 진짜 손댈 수 없는 상태가 될 거 같아서 평소에 알고 있었던 장애인 치과에 가기로 했다. 편의시설도 좋을 것이며, 장애인 진료 경험도 풍부해 어려움 없이 치료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일반 치과보다 비용이 저렴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진료 예약이 쉽지 않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대기 기간이 기본 한 달이라는 말에 진료 예약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비용을 생각하면 쉽게 포기할 문제는 아니라서 꾹 참고 예약에 도전하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예약했다. 생각보다 이른 날짜에 진료를 보게 되었다.

- 장애인 치과는 ‘그냥 치과’였다.

치과 직원과 첫 대면에서 나는 불편한 부분을 말하며 임플란트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의 말에 직원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알 수 있다’고 해서 엑스레이 찍는 장소로 이동했다. 기계가 고정형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호스 모양의 기계로 되어 있어서 입속에 그 기계를 넣고 찍어야 했다. 처음에는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막상 기계가 입속 깊이 들어오자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그래도 여러 번 시도하면 적응할 수 있을 거 같았으나, 직원은 두어 번 시도 후 인상을 찌푸리며 ‘더는 안 되겠다’며 포기해버렸다. 그 순간 나는 위축감이 들었다. ‘장애인 치과’에서도 엑스레이를 못 찍으면 나는 평생 치아 엑스레이를 못 찍는 것인가!

엑스레이 찍기에 실패하고 얼마 뒤에 담당 교수가 왔다. 그는 치아 상태를 대충 살피고 진료 5분도 안 돼서 치료 시 전신마취가 필요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가버렸다. 이후 다른 직원의 상담이 진행되었다. 직원은 다른 장애인들 진료를 많이 해 본 경험상 내 장애 특성으로 임플란트는 해봤자 고생만 하게 될 게 뻔하다며, 충치 치료와 치아 발치가 최선이고 지금 있는 치아나 잘 관리하라고 조언했다.

처참했다. 치아 발치만 했다가 나중에 치아가 내려앉으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도 없는 치아가 있어서 윗니가 많이 내려왔다고 하면서 대책이 그것밖에 없는 것인가?

전신마취는 꼭 해야 한다기에 일단 마취 가능성 유무 확인을 위해 검사 날짜를 잡고 나왔다. 예약을 잡고 나오면서도 뭔가 꺼림칙했다. 진료 5분도 안 돼서 내 겉모습만 보고 무조건 전신마취 해야 한다는 말도 이상했고 비용도 저렴하지 않았다. 전신마취 비용만 2~30만 원이었다.

치과 의자와 치료를 위한 장비들. 사진 픽셀
치과 의자와 치료를 위한 장비들. 사진 픽셀

- 미래의 치아를 위한 선택할 권리

장애인 치과에 다녀온 이후 여러 가지로 의문이 생겨서 다른 치과를 알아봤다. 우선 기존 원장 선생님은 안 계시지만 예전에 다녔던 동네 치과에 가봤다. 기존 원장 선생님의 아는 의사가 인수했다 하여 혹시나 하고 찾아간 것이었다. 역시나 치과 원장은 내가 치료해야 할 곳이 본인이 하기엔 어렵다면서 기존 원장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가보라며 연락처를 안겨 주었다. 마치 내가 희귀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지만, 어쨌든 치료는 해야 하기에 연락처를 받아왔다.

결국, 전에 진료해줬던 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원장 선생님은 내 치아 상태를 살펴보니 임플란트는 당연히 가능하고 전신 만취도 할 필요가 없으며 치아 상태도 몹시 나쁜 게 아니라서 앞으로 관리만 잘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순간 안도감이 들면서 울컥했다. 원장 선생님은 임플란트를 안 하면 치아가 더 무너질 수 있어서 향후 살아갈 나날을 위해 비싸더라도 꼭 했으면 한다고 말해 주었다. 앞서 찾아갔던 장애인 치과와 대조되는 말이다.

장애인 치과는 내게 향후의 삶이 없는 것처럼 대했던 것만 같았다. 만약 임플란트 비용 때문에 내게 권하지 않았다면 그런 부분까지 설명해 주고 내가 선택할 수 있게 안내해 줘야 했다. 치료적 예후가 좋지 않은 뇌병변장애인들을 많이 봤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선택을 차단해 버리는 건 경험에 갇힌 진료방식이라고 생각한다.

- 편의시설보다 중요한 것

그렇게 전신마취 아니면 못 한다던 치료를 전신마취 없이도 무사히 받았다. 비록 편의시설은 장애인 치과에 비해 부족해서 치아 엑스레이 찍을 때는 병원에 있는 모든 바퀴 달린 의자를 가져와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선별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엑스레이 촬영으로 몇 번을 옮겨 앉아야 했기에 활동지원사분의 눈치는 보였지만 말이다.

치료는 내 전동휠체어가 리클라이너(등받이를 뒤로 눕힐 수 있는 기능)가 작동되니 여기서 치료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엔 기계 사용 공간이 안 나와서 어렵다고 거절하더니 엑스레이 촬영할 때 몇 번 옮기는 걸 보고 나서야 한 번 시도하자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시도 끝에 치과 침대로 옮기지 않고 내 전동휠체어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온 김에 임플란트도 심고 가라고 해서 비용 생각 안 하고 바로 하겠다고 말해 버렸다. 임플란트가 가능하다는 말 한마디에 감격해서 말이다.

주변에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한 장애인들을 너무 많이 봤다. 혼자 치아 관리가 어려울수록 상태가 안 좋고 치과란 벽을 못 넘어서 빨리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본인에게 맞는 치과를 찾아도 치료 시기를 놓쳐 어마어마한 비용에 짓눌려 결국 틀니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틀니를 한다고 해도 착용의 불편함과 관리의 어려움은 장애인 개인의 문제로 남는다.

- 의미 없는 제도, ‘그냥 병원’

나는 운 좋게(?) 치료를 선택할 수 있었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의료혜택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카드빚을 치아에 심고 말았다. 치료가 가능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다음 달부터 나오게 되는 카드 할부금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요즈음 들어 치과 말고도 병원에 갈 일이 끝도 없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병원에 자주 가서 건강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의무적으로 받아야 할 국민건강검진도 몇 년째 안 받고 있다. 검사 때문에 여기저기 옮겨 앉으며 활동지원사의 힘듦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과정은 할 수만 있다면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친화적인 병원 찾는 게 쉽지 않아서 웬만한 건 포기한다. 그러다 진짜 참을 수가 없고 급한 질환이 생길 때만 병원을 찾는다. 이제는 그마저도 너무 잦아지고 있다.

오로지 근로소득이 모든 병원비를 감당해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나는 버거움을 느낀다. 장애인주치의제도가 있고 장애인전문병원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냥 제도’이고 ‘그냥 병원’일 뿐이다. 장애인이란 정체성만 내세운 의미 없는 ‘그냥 장애인 병원’은 이제 기대가 없다. 장애가 있는 나의 아픈 몸이 다른 생각 안 하고 진짜 아픈 몸만 돌볼 수 있는 병원은 아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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