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틀니·휴대폰 있던 가방, 보관 없이 즉시 폐기
집 없어 거리에 짐 두는데, 반복적인 철거에 모욕감 커
“홈리스 짐은 쓰레기 아냐… 폐기 관행 중단·사과하라” 

서울 중구청이 서울역 홈리스들의 짐을 싹쓸이 폐기해, 거리 홈리스들이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거리 홈리스의 짐에 대한 잦은 감시와 통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역 안에 있는 짐을 치우라고 경고장을 붙이거나, 잠자리를 위해 깔아둔 박스와 가방에도 ‘적치물 이동조치 명령서’라는 계고장이 붙여지고 있다. 

서울 중구청이 서울역 앞 홈리스들의 가방과 잠을 잘 때 이용하는 박스에 ‘적치물 이동조치 및 자진수거 명령서(계고)’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명령서에는 ‘귀하께서 2021.7.9. 현재 도로변에 폐기물(파지 등)을 무단적치하여 주민통행 불편, 도시미관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자진 이동조치 및 자진수거를 명하오니 조속히 정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한 2021.7.12.까지’라고 적혔다. 사진제공 홈리스행동
서울 중구청이 서울역 앞 홈리스들의 가방과 잠을 잘 때 이용하는 박스에 ‘적치물 이동조치 및 자진수거 명령서(계고)’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명령서에는 ‘귀하께서 2021.7.9. 현재 도로변에 폐기물(파지 등)을 무단적치하여 주민통행 불편, 도시미관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자진 이동조치 및 자진수거를 명하오니 조속히 정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한 2021.7.12.까지’라고 적혔다. 사진제공 홈리스행동

지난 13일 오전, 서울역 인근 거리 홈리스들의 짐이 중구청이 운영하는 쓰레기차에 실려 버려졌다. 

서울역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 아무개 씨는 하늘색 여행용 가방에 틀니, 주민등록증, 휴대폰 등 생활필수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구청은 이 씨의 가방을 하룻밤 만에 수거해 폐기했다. 

이 씨는 지난 9일 저녁 ‘소지품을 철거하겠다’는 중구청의 계고장을 확인했다. 이후 그는 가방 위에 ‘16일까지 철수하겠다’는 메모를 크게 남겨 두었지만, 중구청은 이를 무시한 채 13일 오전 모든 짐을 폐기해버렸다. 홈리스행동은 “이런 철거는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짐을 옮길 곳이 없거나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꼼짝없이 가방에 담긴 전 재산을 잃는다”라고 밝혔다. 

중구청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이 씨의 짐 등을 투기된 폐기물로 여겨 철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활동에 필요하지 아니하게 된 물질’을 폐기물로 정의한다. 

이 씨의 가방과 물건은 폐기물이 아니었다. 주민등록증과 같은 중요한 물건을 비롯해 여름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 얇은 담요와 갈아입을 옷, 지난 삶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었지만, 중구청이 보관 기간조차 없이 폐기물로 처리했다.  

더군다나 이 씨의 짐은 투기된 것도 아니었다. 홈리스행동은 “이런 싹쓸이 철거는 민원이나 환경개선을 이유로 일어나지만, 거리에 있는 홈리스의 짐은 집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반복적인 철거,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정 태도, 소지품을 쓰레기 취급당한 모욕과 상실감은 홈리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홈리스행동은 “홈리스의 짐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은 홈리스의 삶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중구청에 폐기된 물품에 상응하는 마땅한 보상과 사과를 요구한다. 홈리스의 짐을 ‘폐기물’로 보고, 보관 기간 조차 없이 압축 폐기하는 관행을 완전히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중구청 관계자는 26일, 비마이너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원이 있다고 해서 바로 폐기처분을 하지 않는다. 주변에 홈리스가 해당 짐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소유자가 없으면 계고장을 붙인다”고 답했다. 보관 기간 없이 폐기하는 절차에 대해서는 “바로 폐기하지 않고 물건을 찾아갈 수 있을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도록 타 부서와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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