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탈시설로드맵 관련 토론회 연 천주교 사회복지위원회
‘탈시설’ 용어 사용 부정하면서 ‘시설 폐쇄=주거 선택권 침해’ 주장
장애계, 장애인 권리보다 거주시설 우선시하는 천주교에 깊은 우려
천주교 “예민한 사안”이라며 취재에 불쾌감 드러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 24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 24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한국천주교주교회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지난 2일 발표된 정부 탈시설로드맵에 대해 사실상 반대하는 내용의 토론회를 열었다. 천주교 산하에 수많은 장애인수용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시설의 존폐가 자신의 이권과 철저히 결부되어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 24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는 ‘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송출되었으며 한때 동시 접속자는 560명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 토론회 영상 바로 가기)

이날 발제자로는 이병훈 대구대교구 신부(들꽃마을 원장)가 참여했고, 토론자로는 김재섭 신부(한국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 담당, 작은형제회), 이기수 신부(수원교구, 둘다섯해누리 원장), 이강화 한국가톨릭아동복지협의회 까리따스 아카데미 사무국장, 김현아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공동대표, 홍기향 발달장애인부모회 회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토론회에서 ‘탈시설’ 용어 사용을 부정하고, 시설 거주 또한 ‘주거 선택권’이라면서 시설 폐쇄는 주거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한, ‘탈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체장애인으로, 신체장애인은 지역사회 자립이 가능하지만 현재 시설에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은 자립 능력이 없다’며 지역사회 서비스 확대를 요구하기보다는 시설의 필요성을 합리화했다.

-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어처구니없다”면서 시설 다양화 정책 제시

한국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를 담당하는 김재섭 신부는 “시설을 인권유린의 장소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물론 과거 일부 시설에서 인권유린이 있었고 지금도 극소수 인권유린 시설이 있으나 대부분의 시설은 장애인 인권에 대한 긴장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를 담당하는 김재섭 신부가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한국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를 담당하는 김재섭 신부가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김 신부는 “누구를 위한 탈시설인지 되짚어보자”면서 이번 탈시설로드맵에 나온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에 대해 “정말 어처구니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는 시설에서 인권침해가 단 한 번이라도 발생할 경우, 시설을 폐쇄한다는 정부 방침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인권문제는 장애인시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 어느 곳에나 있다. 어린이집, 노인요양원, 일반회사에도 있다. 이런 기관에도 똑같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해서 ‘인권문제 있으니 10년 후에는 다 폐쇄하겠다’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특별히 장애인시설에만 적용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면서 “일반 식당, 주점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15일 영업정지나 경고를 주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안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직한 장애인 정책’의 방향으로 시설 다양화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공동체 마을 형성 △거주시설의 기능 변화 △지역별 장애인센터 운영 △장애인 유형별 전문요양원 마련 △장애인 유형별 전문병원 설립이다.

김 신부는 “전국에 장애인공동체 마을이 몇 곳 있는데 이를 활성화하여 사회와 마주하기 힘든 장애인과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최근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와 김부겸 총리가 만났다. 로드맵에 나온 ‘신규설치 제한’을 제한하고, 탈시설화 반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총리가 답했다. 희망을 가져보면서 바람직한 정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 해외 ‘좋은 시설’ 소개하며 “지체장애인은 탈시설 가능하나 발달장애인은 어렵다”

이기수 신부는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 독일, 영국의 캠프힐 등 유럽의 다양한 ‘좋은 시설’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둘다섯해누리 시설’에 관해 이야기했다.

둘다섯해누리시설 원장인 이기수 수원교구 신부가 발표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제목의 발표자료가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둘다섯해누리시설 원장인 이기수 수원교구 신부가 발표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제목의 발표자료가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이 신부는 “극장, 수영장, 카페, 체육관, 목공실, 슈퍼마켓 등 남부럽지 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런 공동체가 축복받고 마을공동체로 형성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해당 시설을 소개했다.

이 신부는 “현재 탈시설을 주장하는 장애인은 지체장애인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나와서 살 수 있다. 발달장애인이 (탈시설을 요구하며) 데모하는 건 못 봤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도 어렵게 합의 봤다.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러나 장애계의 오래된 주장처럼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시설은 시설일 뿐이다.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둘다섯해누리는 입소 정원 80명의 대형 중증발달장애인시설이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이 시설은 지역사회와는 다소 떨어진 곳에 대중교통 이용도 어렵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주간계획표에 따르면 오전 7시에 전체 기상을 하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일주일을 살아간다. 오전 11시 40분부터 1시 30분까지는 점심을 먹고, 3시부터 3시 30분까지는 ‘준아홈마켓’을 이용하며, 4시 40분에 저녁 식사를 한다. 여가활동과 간식시간도 정해진 규율에 따라 가질 수 있다. ‘좋은 시설’이라도 집단생활을 피해갈 수 없다.

- 탈시설 용어 대신 ‘분산화, 지역화’ 제안, “로드맵 핵심은 주거 다양화”

이강화 사무국장은 탈시설 용어 사용을 전면 부정했다. 이 사무국장은 “85년에 사회복지 공부하면서부터 이 단어를 들었는데 그때부터 너무 싫었다. 탈시설은 시설 내 장애인복지 종사자들의 노력을 하찮게 여기고 부정한다”면서 “독일은 ‘탈시설’이라는 단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분산화, 지역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우리도 협의해서 이 단어를 쓰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강화 한국가톨릭아동복지협의회 까리따스 아카데미 사무국장이 탈시설 단어 사용에 반대하며 분산화, 지역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대규모 시설은 폐쇄가 아닌 소규모 시설로 변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이강화 한국가톨릭아동복지협의회 까리따스 아카데미 사무국장이 탈시설 단어 사용에 반대하며 분산화·지역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대규모 시설은 폐쇄가 아닌 소규모 시설로 변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그는 대규모 시설 폐쇄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이 사무국장은 “큰 시설은 그만큼 오래된 경륜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하찮게 없어질 게 아니라 귀하게 여겨져야 한다”면서 “큰 시설만의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탈시설로드맵 핵심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거 다양화를 통해 주거결정권을 확장해 주는 것”이라면서, “시설을 없앤다는 것은 선택권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기존 시설이 보다 좋은 시설로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면서 “현재 한방에 3명이 산다면 1인 1실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선순위여야 한다”고 했다.

- 발달장애인 부모 “중증 발달장애인, 시설 거주할 권리 보장하라”

이날 토론회에는 중증자폐성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 김현아 씨도 나왔다. 그는 탈시설로드맵 발표 이후 복지부 앞에서 줄곧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의 공동대표다.

김현아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김현아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토론회 유튜브 영상 캡처. 

김 공동대표는 “강제적 탈시설 정책은 엄연한 폭력이며 위법행위”라면서 탈시설과 시설 소규모화 정책으로 중증발달장애인이 미신고시설에 가게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김 공동대표는 “탈시설 정책에 맞춰 정원을 줄이는 과정에서 문제행동이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먼저 퇴소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증발달장애인은 미신고시설이나 정신병원에 가기도 한다”면서 작년 3월에 발생한 평택의 미신고시설 평강타운 사건을 언급했다.

김 공동대표는 ‘자신의 아들’이라며 중증 발달장애인이 시설 내 ‘문제 행동’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그는 “이런 아이들이 어째서 자립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자립주택에 입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입주하더라도 주변 민원으로 계속 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시설 다 없애고 자립주택에서도 살 수 없을 때 중증 발달장애인은 어디로 가야 하나”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정부는 탈시설 관련 조사에서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면서 “현재 시설 거주자의 80%가 중증발달장애인인데 이들은 자기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치 않다. 반면, 탈시설 운동하는 사람들은 신체장애인이다. 이들은 시설이 필요하지 않고 지역에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중증발달장애인에게 막무가내로 너도 자립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한가. 중증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거주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이야기했다.

- ‘깊은 우려’ 밝힌 장애계… 천주교는 “예민한 사안”이라며 취재에 불쾌감 표해

이러한 천주교 사회복지위원회의 탈시설 입장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다음날 즉각 성명을 내고 “탈시설에 대한 이해와 성찰, ‘당사자 이익’에 우선하지 않고, 거주시설 전달체계의 존립에만 우선하고 있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중증중복장애인위원회 위원장 또한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장애부모가 탈시설 찬반으로 나뉜 것 자체가 정부의 정책 부재와 무책임을 증명한다”며 깊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중증중복장애인위원회는 발달장애가 있으면서 뇌병변장애, 경련성 질환(뇌전증), 시·청각 감각장애, 느린학습자, 희귀난치병 등 다양한 질병을 복합적으로 가진 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 모임이다. 김 위원장 또한 발달장애에 뇌병변장애, 희귀난치병이 있는 중증중복 성인 장애인 자녀를 키우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한국사회에서는 자녀가 부모 책임으로 떠맡겨진다. 이 사회에서 무능력한 인간으로 대접받는 자녀를 양육하며 부모 입장에선 자기가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시설을 선택하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거절을 당하며 살았겠냐”라면서 “그러한 구조 속에서 시설 운영자들은 우리를 이용해 시설을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에게 주어진 복지서비스가 적고 중증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부모님들이 차마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영국에서 독립하기 어려운 중증발달장애인을 포기하지 않고 지원하는 모습을 봤다. 결국 이념이나 철학의 부재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시설 정책이 강화되는 것이 아닌 “근본적으로 활동지원서비스 뿐만 아니라 주간보호센터 등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와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시설로드맵이 발표되던 지난 2일, 여의도 이룸센터 앞 2층 컨테이너 위에 부모연대 활동가들이 올라가 ‘김부겸 국무총리는 탈시설을 권리로 인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현수막에는 ‘발달장애인 하루 최대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 ‘아버지를 아버지로, 탈시설을 탈시설로 부르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분노와 설움의 목소리’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탈시설로드맵이 발표되던 지난 2일, 여의도 이룸센터 앞 2층 컨테이너 위에 부모연대 활동가들이 올라가 ‘김부겸 국무총리는 탈시설을 권리로 인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현수막에는 ‘발달장애인 하루 최대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 ‘아버지를 아버지로, 탈시설을 탈시설로 부르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분노와 설움의 목소리’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비마이너는 26일 탈시설 토론회에서 나온 입장이 천주교 공식입장인지 확인하기 위해 천주교 사회복지위원회에 전화했다. ‘토론회를 준비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밝힌 담당자는 “이름이 나가면 곤란하다. 여러 사람에게 예민한 사안이라 함부로 이야기 못 한다”며 신원 노출을 극히 경계했다.

토론회 개최 이유에 관해 묻자 담당자는 “이런 로드맵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같이 생각해보자는 차원에서 개최했다”면서 “탈시설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된 것 같다. 지역사회 안에서 기반이 조성되어야 탈시설이 가능하지 조성도 안 된 현재 상황에서는 탈시설은 안 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천주교 공식입장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얘기하는 거 불편하다. 끊었으면 좋겠다”며 통화 도중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

두 번째 통화에서는 “왜 계속 따지는 건지 이해 못 하겠다. 토론회 본대로 그대로 써라. 이미 발표한 것 가지고 왜 그러냐”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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