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지 ‘용산정비창’, 최근 투기 광풍 예고
‘미래를 위한 점거’ 선언하며 활동가들 기습점거
민간개발 반대하며, ‘100% 공공이 보유한 공공주택 공급’ 요구
세계 주거의날(10월 4일)을 앞둔 1일, 주거·반빈곤운동 활동가들이 용산정비창 부지를 기습 점거했다.
활동가들은 용산정비창 부지 한가운데 ‘100%공공 공공임대주택, 불로소득 환수, 소유가 아닌 거주를’이라고 쓴 대형 플랜카드를 펼쳤다. 또 ‘미래를 위해 점거하자’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용산정비창을 행진하기도 했다. 점거 막바지에 부지에서 공사를 하는 건설사 직원들이 문을 닫고 활동가들을 나가지 못하게 막아 잠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점거에 나선 이유를 ‘용산정비창이 다시 투기 광풍에 휩싸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활동가들은 “서울에서 가장 큰 공공부지인 용산정비창을 비롯한 공공택지는 100% 공공이 보유하는 공공주택으로 공급해야 해야 한다”라며 “공공부지를 소유가 아닌 주거의 권리로 환원해야 한다, 주거 불평등을 여기서부터 끝장내자”고 외쳤다.
- 다시 시작된 용산정비창 개발
이들이 점거한 용산정비창(전 용산국제업무지구,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40-1 일원)은 51만 2,138㎡(약 15만 4921평)로, 축구장 70개를 합쳐놓은 규모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9월 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용산정비창 부지는 서울 도심에 남은 기회의 땅이자 마지막 대규모 유휴부지’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곳은 이미 한 차례 투기 광풍이 불었던 곳이다. 지난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에서,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초고층 랜드마크로 조성해 수변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사업비 31조 원이 투입되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이 개발폭주는 용산 일대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고, 주변 재개발 지역을 자극했다”라며 “국제업무지구로부터 500m 떨어진 용산4 재개발 구역은 더 폭력적인 개발이 추진됐고, 6명이 사망하는 ‘용산참사’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용산정비창 부지에서는 용산참사 현장에 세워진 센트럴파크타워가 가깝게 보였다.
투자사 부도로 용산정비창은 10년 간 빈 땅으로 방치됐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2021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되자마자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선언하면서 또 다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 5월에 SH공사와 코레일은 용산정비창 국제설계공모 계획을 발표했다.
활동가들은 용산구를 둘러싼 정치세력이 민간개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4선 구청장인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한남동 뉴타운에 다세대 주택을 사들여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용산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국토부장관에게 노골적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한다”라며 “여야 국회의원을 막론하고 용산 개발에 골몰하고 있는 형국이다”라고 비판했다.
- 공공택지 민간개발·매각 금지해야
용산정비창은 정부가 지난해 5월, ‘수도권 주택 공급기반 강화방안’에서 8000호 주택 공급을 한다고 발표한 곳이기도 하다. 3개월 후에는 1만 호로 계획을 상향 변경했다. 그러나 이 중 공공임대주택은 2000호에 그친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 2000호로는 부족하다고 활동가들은 말한다. 용산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용산의 주거빈곤 가구 비율이 18.7%인데, 용산구의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는 2.9%로 서울시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라고 규탄했다.
또 공공임대주택을 짓는다고 해도 민간 개발사가 고스란히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로는 주거 불평등을 끝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용산정비창과 같은 공공택지에는 민간개발·매각을 금지하고 100% 공공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활동가들은 “대장동 사건으로 밝혀졌듯, 민간에게 막대한 개발이익을 불로소득으로 몰아주는 개발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며, “민간이 아닌 공공이 개발 주체가 된다 해도 분양을 목표로 한 건설은 투기를 부추길 뿐이고, 공공성도 없고 정의롭지도 않다”고 밝혔다.
점거에 함께한 대학생 최하은 씨는 “서울에 직장에 있는 사회초년생과 서울로 학교 가는 학생들이 서울에 집을 마련해야 한다. 반지하에 있는 집도 전세로 사는데 1억 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수도가 역류해 바닥에 물이 들어차기도 했다”라며 “청년들은 이런 곳에서조차 반강제로 쫓겨 거처를 옮기고, 2년 마다 이사를 한다. 청년들은 이 사회에서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장 먼저 배운다. 집 때문에 청년들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며 공공임대주택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명서 전문]
미래를 위한 점거 투기 개발과 주거 불평등 여기서 끝내자
- 용산정비창 등 공공택지, 민간개발·매각 금지! 100% 공공주택 공급!
- 소유권이 아닌 점유와 사용의 권리, 주거권을 요구한다!
땅과 집의 독점과 주거불평등
LH 투기 사태와 대장동 개발 게이트까지 부동산 개발 독점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치솟는 집값과 주거불안, 자산 불평등과 맞물리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은 부동산이 되었다. 부동산을 더 많이 가진 이들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국 사회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개인과 법인 상위 10%가 개인과 법인 토지의 80~90%를 독점하고 있으며, 다주택자 상위 20명이 총 8,327채의 주택을 소유해 이들은 1인당 평균 416채를 넘게 가지고 있다.
땅과 집의 독점체제는 우리의 주거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집은 청년 세대나 도시 서민들의 땀으로 소유할 수도, 안정적으로 점유할 수도 없는 재화가 되었고,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의 주거권은 ‘나가라’는 한마디에 무너지고 있다.
주거·부동산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영끌’과 ‘패닉바잉’이라는 각자도생 부동산 소유를 향한 투기로 내달리게 하고 있다. 투기적 소유를 향한 경주는 소수의 부동산 권력들에 더 많은 독점과 불로소득을 안겨줄 뿐이다.
이제 주거 불평등을 끝내야 한다. 다가오는 10월 4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매년 10월 첫 주 월요일)이다. 심각한 주거 불평등 속에서 세계 주거의 날을 맞이하는 우리는 주거의 날을 기념하고 축하할 수 없다. 최근 독일 베를린 시민들의 주택 사회화 투표 결과는 주택의 독점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끊임없는 직접행동의 결과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에 우리는 베를린 시민들의 주택 사회화 투쟁에 연대하며, 저항과 행동에 나선다.
부동산 개발 욕망이 뒤엉킨 땅, 용산 정비창
오늘 우리는 주거불평등을 끝장내고 부동산투기공화국을 해체할 것을 제안하며 바로 이곳에서부터 주거권을 선언하고자 한다. 우리가 선 땅, 이곳 용산 정비창(옛 용산 국제업무지구) 부지는 부동산 개발 욕망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한국철도공사와 국토부 등이 소유주인 50만㎡, 축구장 70개 크기에 달하는 이 땅은, 2007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과 함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동산투기 개발의 복마전이 되었다.
사업비 31조의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 불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삼성물산을 대표 주관사로 해 SH공사도 출자하는 등 27개의 금융·건설 재벌들이 재무, 전략, 건설 부문 투자자로 나섰다. 당시 삼성물산 한 곳이 얻는 이익이 1조 4천억 원이라는 증권회사의 분석도 있었다. 이들은 민간주도의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라는 특수목적회사를 만들어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모든 욕망이 총 망라된 큰 판이 한바탕 열린 셈이다.
이 광란의 개발 폭주는 용산 일대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고, 주변 재개발 지역들을 자극했다. 국제업무지구로부터 직선거리 5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용산4 재개발 구역에서는 더 빠르고 더 폭력적인 개발이 추진되었고, 이 개발 폭주의 한 가운데서 여섯 명이 사망에 이르는 ‘용산참사’가 발생했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은 2013년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기’라는 드림허브PFV 부도 선언으로 마무리되어 10여 년 동안 허허벌판 빈 땅으로 방치되어 있다.
공공 토지를 민간 소유로 넘기는 주택공급
욕망의 신기루가 무너진 이 땅은, 작년 5월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이 발표되면서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국공유지인 용산정비창 부지에 미니 신도시급 8천 호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고, 3개월 후 용적률 상향으로 1만 호를 공급한다고 계획을 변경했다. 올해 4월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제2의 한강르네상스를 내세우며 다시 국제업무지구로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주택공급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정부의 공급 계획만 봐도, 공공부지인 이 땅의 80% 이상은 민간 소유로 귀결된다. 1만 호 중 공공이 땅과 건물을 보유하는 공공임대주택은 2천 호만 계획되어 있다. 현재의 개발 방식으로는 공공분양주택 물량도 결국 개인 소유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공공주택이라 할 수 없다. 가뜩이나 부족한 공공의 토지를 개발해 고스란히 민간 소유로 넘겨주는 꼴이다.
그런데도 오세훈 시장과 국민의힘당은 민간개발을 만능이라 주창하고 있고, 용산구청장이나 용산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은 노골적인 공공임대주택 공급 반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용산구에는 전국 최대의 주거 취약 밀집 지역인 쪽방촌이 있고, 용산정비창 부지의 끄트머리 풀숲에는 홈리스들의 거처인 텐트촌이 도심 속 섬처럼 형성되어 있다. 용산구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및 쪽방·고시원 등 비주택 거주 가구, 지하·옥탑 거주 가구를 포함한 주거빈곤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18.7%에 이른다. 그러나 용산구의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는 2.9%로 서울시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하는 탐욕의 부동산 정치는, 30년 장기 대출로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겨도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이들, 월세 부담과 퇴거의 위협에 놓인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 열악한 거처에서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투기적 부동산 개발과 주거 불평등, 이 땅에서부터 끝내자
이제 투기적 부동산 개발과 주거 불평등을 여기, 이 땅에서부터 끝내야 한다. 대장동 사건으로 밝혀졌듯, 민간에게 막대한 개발이익을 불로소득으로 몰아주는 개발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 민간이 아닌 공공이 개발 주체가 된다 해도 분양을 목표로 한 건설은 투기를 부추길 뿐이다. 공공성도 없고 정의롭지도 않다. 서울에서 가장 큰 공공부지인 용산정비창을 비롯한 공공택지는 100% 공공이 보유하는 공공주택으로 공급하자. 단 한 푼의 불로소득도 용납하지 말자.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점거한 이유이다. 용산정비창을 점거하는 주거권 직접행동을 통해, 점유와 사용의 권리, 주거의 권리를 주장한다.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빈 땅을 점거해, 이 땅의 공공성을 되찾고자 한다. 개인 부동산 소유로 귀결될 이 땅을 점거해, 소유를 넘어 거주의 권리를 되찾고자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시작한 우리의 주거권 선언은 한국사회 불평등한 땅 곳곳에서 이어질 것이다. 미래를 위한 오늘의 점거로, 투기적 개발과 주거 불평등을 끝내는 길을 여기에서 시작하자!
2021. 10. 1
2021 주거의 날 직접행동_ 미래를 위한 점거단
남산 주변도 깨끗하게 개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