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공공주택 확충과 서민주거안정’ 토론회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해 도시개발한 역대 정부
주거권 전문가들 “이런 방식이 투기의 근본 원인”
“동자동 쪽방촌같이 정부 주도의 공공주택 공급 필요”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가 내건 현수막이다. '토지 강제수용 결사반대,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 서울역 동자동 정비계획 철회하라,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대표 오정자 외 주민일동'이라고 적혀 있다. 소유주들은 자신을 주민이라 칭하지만 동자동 쪽방촌 개발구역에 거주하는 소유주는 거의 없다. 사진 홈리스행동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가 내건 현수막이다. '토지 강제수용 결사반대,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 서울역 동자동 정비계획 철회하라,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대표 오정자 외 주민일동'이라고 적혀 있다. 소유주들은 자신을 주민이라 칭하지만 동자동 쪽방촌 개발구역에 거주하는 소유주는 거의 없다. 사진 홈리스행동

지난 2월 5일, 국토교통부·서울시·용산구는 동자동 쪽방촌을 공공주택 사업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주택 1,250호를 지어 기존 쪽방주민을 재정착시키는 ‘선(先)이주 선(善)순환’의 공공개발이다. 동자동 쪽방촌 개발구역의 토지주와 건물주에게는 감정평가액과 공시지가 등을 기준으로 한 보상금이 현금으로 지급된다.

발표 직후 토지주와 건물주는 강하게 반발했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유재산을 탈취하는 정부를 규탄한다”,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 세워라”라고 주장하며 연일 공공개발을 반대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민간개발을 하면 투기적 거래에 의한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공공개발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발은 LH 투기사태와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국민의힘과 함께 ‘부동산 시장 정상화 간담회’라는 것을 열고 “강제수용 개발이므로 동자동 쪽방촌 정비사업은 전면 취소돼야 한다”, “과연 20%의 쪽방 공익이 동자동 전체의 재산권 침해를 상쇄할 정도로 정당한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발표된 다른 쪽방촌 공공개발과 달리, 동자동은 주민과 소유주가 유례없는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가난한 사람의 주거권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 의견은 다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27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투기공화국을 넘어, 공공주택 확충과 서민주거안정’ 토론회에서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이 빈민 주거권 보장 정책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공주택을 짓는 동자동 개발이 그간 공공성이 부족했던 재개발·재건축 개발정책의 대안이 될 거란 뜻이다.

토론회에서 최은영 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유튜브 캡처
토론회에서 최은영 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유튜브 캡처

- 공공택지 민간매각은 공공성 훼손… 정부 주도로 공공주택 공급하는 개발 이뤄져야

‘공공주택’을 짓는 ‘공공개발’이 왜 중요할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을 빠르게 진행해 왔다. 과거 1, 2기 신도시 개발 때도 토지를 강제수용해 민간에 팔아넘긴 후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개발했다. 정부가 산 공공택지에 정부 주도로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을 공급하는 개발이었지만 공공주택 보급률은 낮았고 땅 투기만 과열됐다. 문재인 정부의 3기 신도시 개발도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주거권 전문가들은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이른바 “정부가 땅 사서 민간에 팔아 장사하는” 방식으로는 부동산 투기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강훈 변호사는 “민간에 택지를 매각하면 시세차익의 먹이사슬이 생긴다. 건설사는 분양이익을 보려 하고, 주택분양 시장에서는 투기사태가 일어난다. 문재인 정부의 신도시 정책이 소수 민간 건설사를 위한 ‘로또 택지분양’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런 방식의 개발은 토지를 정부가 강제수용한 정당성과 공공주택 사업의 공정성이 훼손된다”라고 지적했다. 땅을 민간에 팔고 그 위에 집 짓는 정부의 주택공급 사업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왼쪽 사진에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 공공개발 찬성 의견서를 작성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1평 남짓한 방이 매우 좁게 느껴진다. 오른쪽에는 동자동 쪽방촌 공용화장실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왼쪽 사진에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 공공개발 찬성 의견서를 작성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1평 남짓한 방이 매우 좁게 느껴진다. 오른쪽에는 동자동 쪽방촌 공용화장실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최은영 소장은 이런 개발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지하, 옥탑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쪽방 등으로 내몰렸다고 비판했다. 최 소장은 “주택 이외의 거처, 즉, 최저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곳에 거주하는 가구는 2005년에 5만 7천 가구였다. 2015년엔 40만 가구로 늘었다. 주거빈곤층이 개발속도에 맞춰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소장은 공공주택 공급정책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공공의 주택공급은 주택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가구를 대상으로 부담가능하고 살 만한 집을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공주택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며 “최저소득계층과 비적정주거에 거주하는 가구에 먼저 공급한다는 원칙을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은 △정부가 땅을 강제수용하되 △대형 건설사나 자본가 등 민간에 매각하지 않아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지 않고 △정부 주도로 공공주택을 지어 △비적정주거에 거주하는 쪽방촌 주민을 입주시킨다는 점에서 공공주택 공급의 공공성이 실현된 사업이라 볼 수 있다.

동자동 건물 곳곳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빨간 깃발이 꽂혀있고, 국회의원과 소유주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이가연 
동자동 건물 곳곳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빨간 깃발이 꽂혀있고, 국회의원과 소유주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이가연 

동자동 쪽방촌 주민자치단체인 동자동사랑방의 김정호 이사장은 쪽방촌의 건물주와 토지주가 이번 공공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

“소유주들은 ‘제2의 용산참사 피바람을 각오하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있습니다. 동네 전봇대, 나뭇가지, 도시가스 외관, 베란다 같은 데 붉은 깃발을 달면서 이곳이 자기들 거라고, 민간개발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서운 풍경입니다. 얼마 전엔 생전 우리한테 눈길도 주지 않던 건물주가 찾아와서 자기를 도와 달라, 힘을 실어달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원하는 걸 다 해줄 테니 민간개발에 동의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그동안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깨끗하게 밥해 먹고 화장실도 있고 제대로 잠 잘 수 있는 곳에서 월세 내고 살고 싶다고 말해 왔는데 소유주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민간개발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나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 사회가 민간개발을 하면서 주거약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많이 봐 왔습니다. 월세 5개월 치 정도 푼돈 쥐여주고 용역들 데려와 쫓겨난 분들도 많습니다. 가진 자들이 서로의 이득만 취하는 걸 봐 왔기 때문에 그 사람들(소유주들)의 말을 우리는 믿을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우리는 공공주택을 정당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쪽방지역을 다 공공주도로 개발해서 차질 없이 공공주택 사업이 진행됐으면 합니다. 그래야 가난한 사람의 주거권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공공개발 안 되면 대한민국은 무너진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2018년 11월 9일,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고시원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 여러 송이가 놓여 있다. 사진 최한별
2018년 11월 9일,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고시원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 여러 송이가 놓여 있다. 사진 최한별

- 주거급여 현실화하고 주거품질 개선돼야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주거급여와 주거품질을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공공주택을 지어놔도 주거급여만으로 들어갈 수 없거나,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면 ‘공공’이라는 말이 붙은 게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공공임대 주택에서 거주하게 되더라도 주거품질마저 보장받긴 어렵다. 경기도 부천시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서는 방 2개에 7명이 거주하고 있다. 잘 공간이 없으니 베란다에 이불을 펴고 자야 한다. 최 소장은 이 같은 현실을 지적하며 “공공임대 주택의 주거품질을 개선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임대 주택은 주거품질이 더더욱 규제되지 않아 천장이 낮은 옥탑, 난방이 안 되는 지하 등 불법 건축물마저 주거로 제공되고 있다. 최 소장은 “벨기에에는 지역주택감독부서가 모든 임대주택을 모니터링한다. 최저주거기준을 넘지 못한 곳은 임대를 금지한다. 우리도 이런 식의 강력한 규제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주거급여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 2018년 11월에 일어난 국일고시원 화재 사망자 7명 중 4명은 주거급여 수급자였다. 최은영 소장은 “주거급여는 고시원 같은 비적정주거에 살지 말라고 주는 돈이다. 하지만 주거급여만으로 갈 수 있는 저렴한 주거가 없기 때문에 빈곤층은 비적정주거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라며 “현재 주거급여는 중위소득의 45%다. 이를 60%까지 올려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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