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가 말하는 노숙인복지법 제정 10년 ③ 김영국

[편집자 주]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노숙인복지법)’ 제정 10년을 맞아, 노숙인복지법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지난 5일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비마이너는 노숙인복지법 평가하는 데 있어 당사자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이날 발표된 홈리스 당사자의 증언을 동의받고 게재합니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20년가량을 살며 다섯 번의 이사를 거쳤습니다. 그중 한 번은 연희동의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그 매입임대주택에 가게 된 상황과 왜 그곳에서 다시 동자동 쪽방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2015년 저는 서울 동자동 9-20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약 45명가량의 주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방마다 몇 월 며칠까지 퇴거하라는 딱지가 붙었습니다. 안전 진단 결과 보수공사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집주인은 외국에 있다는 말만 들었지, 그동안 하자가 있어도 아무런 보수가 없었고 오히려 사는 사람들이 관리하면서 살던 낡은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니 느닷없이 안전을 들먹이며 나가라는 통보가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들려오는 소리로는 리모델링 이후에는 쪽방이 아닌 게스트하우스가 지어져서 원래 주민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쪽방 주민들은 화재나 붕괴 위험 속에 놔두고도 세받고 살다가, 안전한 건물로 리모델링하면 기존 주민들 쫓아내고 세 올려 받겠단 이야기이니 화도 났습니다. 주민들은 방을 비우지 않기로 합의하고 버텼습니다. 이사비든 뭐든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밤에는 철거반이 들어올까 봐 돌아가며 보초도 섰습니다. 수도도, 전기도 끊긴 여름을 지나고 6개월, 1년을 버텼습니다. 나중에는 아시바까지 들이닥치고 건물 일부 철거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추후에 주민들이 내놓은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받아들여졌지만, 이미 대다수 주민의 삶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였기에 큰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난리통에 지친 주민 대다수는 옆의 다른 쪽방으로 옮겼고 일부는 멀리 임대주택으로 떠나 연락이 끊겼습니다.

지난 7일 열린 토론회에서 김영국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유튜브 캡처
지난 7일 열린 토론회에서 김영국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유튜브 캡처

남아서 살겠다고 버티던 주민들을 서울시 자활지원과 직원과 쪽방상담소가 수차례 설득했습니다. 매입임대주택이란 것이 있으니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 했습니다. 답사나 한번 가보자는 마음에 저를 포함한 아홉 명이 봉고차에 올랐습니다. 연희동 어느 빌라에 가서 방을 보고, 그 자리에서 호수를 나누고,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반 토막 난 집에 살다가 막상 깨끗한 집을 보니 모두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쪽방의 두 배는 되는 원룸에, 화장실과 싱크대도 방 안에 있어 편리해 보였습니다.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8만 원, 어디 가서 이 가격으로는 못 구할 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20년 동안 거주가 보장된다는 점이 안심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사 이튿날부터 현실적인 문제가 닥쳤습니다. 우선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수급자인 저는 식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평소 무료급식을 이용해왔습니다. 동자동에서는 5분 거리인 마을밥상 식도락을 이용하거나 인근의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연희동에는 그런 급식소가 없어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일 가까운 홍대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30분이었습니다. 밥 한 끼를 먹으려면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집에서 나와 지하철로 향해야 했습니다.

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병원 일정을 소화하기가 벅찼습니다. 서울의료원은 한 달에 한 번, 은평 정신병원도 한 달에 한 번, 영등포 요셉의원은 일주일에 한두 번을 방문하는데 교통이 불편하니 병원 방문에 하루를 꼬박 써야 했습니다. 역에서 집으로 가는 30분 동안 최소 두 번은 쉬어줘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녹초가 되어 방안에 누워있자면, 앞으로 이렇게 20년을 살아야 한다는 막막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한 많은 사람들이 역과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에 있어 일상에 불편함이 많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연고 없는 동네에서 섬처럼 고립된 생활도 마음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나마 저는 병원이나 급식 때문에 활동적인 생활을 했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함께 입주했던 나머지 여덟 명은 병원도, 급식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방 안에 틀어박혀 살았습니다. 동네를 잘 아는 반장이나 통장 같은 사람들이 가끔씩 들러 안부를 묻고 대화도 하면 좋겠는데 그런 제도가 미비했습니다. 나가도 마땅히 갈 데가 없고, 사람들 얘기하는데 끼어들 수도 없고, 겉만 빙빙 돌다 외로움을 술로 달래고 사는 주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더욱 방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지금처럼 코로나로 많은 급식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면 저 또한 다른 주민과 마찬가지로 방 안에 틀어박힐 도리밖에 없었겠구나 생각합니다.

매입임대주택에서의 고립은, 단적으로 문만 닫으면 누가 죽어나가도 모른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실제로 제가 살던 곳에서도 한 명이 죽었습니다. 동자동에서 온 젊은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죽음이 알려진 건 사망 뒤 20일이 지나서였습니다. 

이런 고립을 예방하려는 차원에서인지, 매입임대주택을 연계해준 노숙인 지원기관에서는 입주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꾸립니다. 마포구, 서대문구 이렇게 구역이 비슷한 열댓 명은 같은 조로 배정을 받고, 회비를 걷어 의무적으로 밥을 먹습니다. 하지만 생활권도 다르고, 같은 건물도 아닌 입주자들끼리 친해져야 하는 일은 참 어색한 일이었습니다. 관리하는 입장에서만 편한 모임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동질감이나 반가움보다는 관리자들의 눈치 때문에 부담을 안고 참석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혹여나 이런 프로그램에 따르지 않으면 매입임대주택의 안정적인 거주에 불리한 꼬투리가 잡힐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동자동에는 주민들의 자치 조직인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가 있다. 지난 2007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자동 주민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동자동사랑방의 모습. 사진 하민지
동자동에는 주민들의 자치 조직인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가 있다. 지난 2007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자동 주민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동자동사랑방의 모습. 사진 하민지

사람이 집만 좋아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짧은 매입임대주택 입주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입주 두 달 만에 저는 50만 원의 보증금 중 반을 포기하고 다시 동자동으로 왔습니다. 이웃들은 저에게 굳이 돌아온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홀로 임대주택에 갔다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 주민들이 이미 많기 때문입니다. 이곳 쪽방에서 저는 여전히 바퀴벌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여전히 수급비로 꾸리는 삶은 팍팍하지만 마음만은 편안합니다. 이웃을 들여다보고, 내가 어려운 순간에 이웃들이 다가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는 매입임대주택 사업도 이런 부분까지 고려한다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교통이 좋고, 이웃과 교류하고 동네와 교류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지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방안에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김영국 님의 구술을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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