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이즈의 날,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 위헌 촉구
“에이즈예방법,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공포 조장… 개정 필요”

1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HIV 감염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활동가들이 목에 '전파매개행위죄' 피켓을 걸고 해당 조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1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HIV 감염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활동가들이 목에 '전파매개행위죄' 피켓을 걸고 해당 조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의 금지)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HIV/AIDS 인권활동가들이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처벌을 조장하는 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촉구했다. 

1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HIV 감염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019년 11월, 서울서부지법 신진화 부장판사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와 처벌조항인 제25조의2(징역 3년 이하)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내었으며, 현재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진행 중이다. 

과거 에이즈예방법 제19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감염의 예방조치 없이 행하는 성행위’ 문구를 통해, 명시적으로 ‘콘돔 없는 성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전파방지 목적 달성의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권고해 2008년, 해당 문구가 삭제되었다. 그러나 개정취지가 무색하게도 여전히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공포를 양산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처벌까지 이뤄지고 있다. 

HIV는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된 지 오래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하루 한 알의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바이러스 수치를 완전히 억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에이즈예방법 제19조는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했는지를 사실상 유일한 쟁점으로 판단한다”라고 지적했다. 

장서연 변호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장서연 변호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장서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제19조가 △입법의 목적성 △수단의 적합성 △형법의 최후수단성에 위반되어 위헌이라고 밝혔다. 장 변호사는 “이 처벌조항은 사회적 공포에 기반하고 있어 목적의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에이즈에 대한 낙인과 공포로 인해 자가검사를 주저하게 만들어 공중보건상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다른 질병과 달리 HIV/AIDS에 대해서만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는 것은 형사처벌의 필요성보다는 막연한 사회적 공포 때문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라며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에이즈예방법을 폐지한 뒤 1998년, HIV/AIDS를 포함해 ‘감염증예방및감염증환자에대한의료법’을 통해 모든 전염병 관리를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 전문에는 ‘과거 후천성면역결핍증 등의 감염증 환자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이나 편견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신중히 받아들여 이를 교훈으로 삼아 향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반성의 의미를 담았다. 

반면,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임박해 졸속으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을 제정한 이래, 현재까지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이 남아 있다. 장 변호사는 “에이즈예방법이 제정된 뒤 에이즈 치료제는 빠르게 개발되었으며 의학기술이 발전했다.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가 억제되며 현재 HIV는 관리가능한 만성질환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밝히며 “그러나 전파매개행위 처벌조항은 이런 시대적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규진 인권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최규진 인권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작년 9월, 손가락이 절단된 HIV 감염인이 수십 곳의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했다. 당시 병원에서는 코로나19 등을 핑계로 거절했으며, 결국 감염인은 13시간가량 병원을 전전긍긍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이 사례는 한국 의료진이 HIV 감염인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저급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전파매개금지 조항이 오히려 사회적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HIV/AIDS는 빠르고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하지만, 감염인에 대한 범죄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라며 제19조가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공포를 촉발하는 처벌조항으로 인해, 이들은 성적 즐거움을 제대로 향유하기도 어렵다. 

김보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 사무국장은 “국제사회는 HIV 감염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성적 권리의 주체임을 강조한다”라며 “모든 사람은 차별, 강요, 폭력, 사회적 낙인 없이 성적 즐거움을 향유할 권리를 갖는다. HIV 감염인이 언제든 성에 관련된 정보와 건강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누구나 HIV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점철된 정보가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제19조의 폐지는 성적 권리의 보장을 향한 큰 전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참여자들이 '전파매개행위죄 위헌이다!', '혐오를 넘어, 질병을 넘어, 사람을 보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헌법재판소 앞에서 참여자들이 '전파매개행위죄 위헌이다!', '혐오를 넘어, 질병을 넘어, 사람을 보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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