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HIV,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요구하다

[편집자 주]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장애인복지법상의 등록 장애인이 아님에도, 국립재활원에서 입원 거부를 당한 HIV감염인의 차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차별로 판단했다. 그러나 “모든 HIV감염인 및 AIDS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단서는 한계로 남았다.

인권위의 판단은 HIV 감염과 AIDS 확진 그 자체를 장애로 보고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적 흐름에 비춰봤을 때, 여전히 보수적이다. HIV감염인은 감염을 이유로 사회적 격리와 분리,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차별은 왜 ‘사회적 장애’로 인정될 수 없는가? 비마이너는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과 함께 HIV감염인이 의료를 비롯해 생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하는 차별의 맥락을 드러내는 연속기고를 연재한다.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은 없다. HIV감염인 중 일부가 발병되면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발전된다. AIDS는 면역체계가 파괴되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 10여 년이 지나면 사망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30년 이상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HIV를 보유하고 있거나 AIDS에 걸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0년부터 매해 HIV를 보유하거나 AIDS로 진단되어 신규 신고되는 사람이 매해 1,000여 명 이상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HIV에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다양한 대책 수립은 정부가 해야 할 필수 업무 중 하나이다. 마치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 확산 방지·치료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난 4월 19일, 레드리본인권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HIV감염인의 차별 진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가연
지난 4월 19일, 레드리본인권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HIV감염인의 차별 진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가연

- ‘치료’에만 집중하면 ‘그 사람이 문제다’ 메시지 전파 우려

그런데 코로나 판데믹에서 보듯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유포되면 감염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HIV/AIDS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비난은 전파력이 매우 높다. 인간에게는 발달된 공감하는 뇌가 있지만, 긍정적 공감보다 혐오와 배척이라는 부정적 공감은 그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이러한 부정적 공감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집단적 역량을 떨어뜨린다. 배제를 통해 사회적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바이러스 예방과 치료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때 특히 ‘의료’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피해야 할 매우 나쁜 방법이다. ‘의료’는 개인이 가진 질병 치료를 목표로 하는데, 사회정책이 의료에만 집중되면 ‘치료받는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치료’에 초점을 두는 사회정책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치료받는 대상에 대한 편견과 혐오, 차별과 배제가 확산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든다.

‘누구라도 HIV에 감염될 수 있다’ ‘감염인과의 단순한 신체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등을 골자로 하는 차별 해소, 인식개선 홍보 또한 편견과 혐오를 누그러뜨리는 데 거의 효과가 없다. 감염인의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장치가 구체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러한 메시지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차별과 배제를 본능적으로 인지한다.

- 인권모델에 기반한 질병에 대한 사회정책 필요해

바로 이런 이유로 바이러스 또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대처, 사회정책에서의 인권모델이 중요이다. 인권모델이란 질병 또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인간으로서 존엄한 존재로 존중받아야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통합하여 생활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인권모델은 HIV 감염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감염인이 사회적 삶을 최대한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인권모델은 편견, 차별, 혐오를 최대한 줄이고, 격려와 지지의 연대의식이 형성되는 것을 지향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이런 집단이성이 꽃필 수 있는 규범적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러나 HIV/AIDS에 대한 우리사회의 정책은 ‘에이즈예방법’이 유일하다. 이 법은 ‘오로지 의료’라는 정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IDS 환자는 질병으로 인한 신체손상으로 사회적 장애에 놓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조에서 말하는 장애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장애인법’도 HIV감염인과 AIDS 환자를 장애인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취업에서 차별받지 않고 개인 사정에 따라 정당한 편의제공을 통해 직무수행을 지속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법은 의료모델에 입각해 있을 뿐 아니라, 장애유형을 제한적으로 열거해 놓았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입은 사람 중 통합적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사회보장급여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지난 4월 19일, 레드리본인권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HIV감염인의 차별 진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HIV감염인도 장애인정 필요하다”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그 뒤로 인권위 간판이 보인다. 사진 이가연
지난 4월 19일, 레드리본인권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HIV감염인의 차별 진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HIV감염인도 장애인정 필요하다”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그 뒤로 인권위 간판이 보인다. 사진 이가연

- 국내적 이행 독려하는 인권위의 역할

이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규범적 힘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으로, 이 법 제2조의 장애인은 국제인권규범에서 정의하는 장애개념에 근접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인권법상의 장애개념에 근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을 적용한다면, HIV감염인이나 AIDS 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들이 의료, 고용, 사회생활에서 차별당하거나 정당한 편의제공을 받지 못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 되어 시정권고나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보장급여 제공을 규율하는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의 범위를 협소하게 정의하여 HIV감염인이나 AIDS 환자에게 필요한 사회보장급여를 제공받지 못하는 것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관장하는 주무관청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이고, 인권위는 국제인권규범의 국내적 이행을 독려하고 모니터링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기구이다. 즉 인권위는 국가기관이지만,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원래의 설립 취지에 따라 국제인권조약의 국내적 이행을 독려하고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권위의 존재가치가 있다.

따라서 인권위는 HIV감염인과 AIDS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으로서 인정하여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의료, 재활, 취업, 문화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이들의 사회통합을 위한 제도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 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관에 제도적 및 실무적 개선사항을 끊임없이 제안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보듯이 인류는 앞으로도 새로운 바이러스의 위협에 끊임없이 노출될 것이다.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우리 모두의 안전과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두려움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 아니라, 연대의식이라는 ‘집단이성’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도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연대의식’이다. 인권위는 나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집단이성’이 작동될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가기관으로서 인권위의 고유한 임무다.

* 필자 소개 _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