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명한 기준으로 평가해 국비지원 탈락시켜
장애계 “센터는 중증장애인 노동현장… 능력·경쟁 중심 잣대 거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서울시협의회)는 13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와 주체성을 무시하는 서울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센터) 3년 평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서울시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이뤄진 평가에서 서울시복지재단(아래 복지재단)은 불분명한 기준으로 센터를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ㄱ센터의 경우 사업평가 중 계획 대비 80%를 진행하고 ‘우수’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사업은 100%를 모두 진행했는데도 ‘탁월’이 아닌 ‘우수’ 판정을 받는 데 그쳤다. ㄴ센터는 장애인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서울시협의회는 “평가위원이 재량권을 남용해, 센터 활동은 수치화된 점수로 평가절하됐다. 이런 평과결과는 수용할 수 없다. 서울시가 센터의 지역사회 활동을 그대로 인정하며 지원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우리 없이 우리를 논하는 잣대 거부한다”
서울시협의회는 2018년, 서울시가 중증장애인 노동력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평가지표로 센터를 평가하는 것에 문제제기한 바 있다. 당시 서울시는 상대평가를 거쳐 센터를 줄 세우기 한 다음, 하위 10% 센터를 재공모 대상으로 지정하기도 했는데 서울시협의회는 이 또한 강하게 규탄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는 센터 평가방식을 개편했다. 우선 평가 운영기관으로 복지재단을 선정했다. 그간 서류의 정량적 측면만 측정해 온 평가지표를 폐지하고 사업운영의 내용적 측면을 점검하는 정성적 평가로 변경했다. 센터 간 경쟁을 부추긴 상대평가도 절대평가로 바꿨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이처럼 변경된 지표로 평가하겠다고 밝혔으나 올해 평가 결과, 중증장애인의 노동현장을 고려하지 않는 평가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시협의회는 “평가점수를 ‘탁월’과 ‘우수’로 구분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평가되는 센터에만 ‘탁월’ 점수를 부여했다. 서울시는 경쟁을 부추기는 상대평가 방식을 유지한 것”이라며 “그마저도 기준이 모호해 특정 평가위원이 특정 센터에만 ‘탁월’ 점수를 주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기준이 모호하니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이 고려되지 않아 점수가 깎인 사례도 있었다.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거주시설연계사업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시설 측에서 거부해 진행되지 못했다. 복지재단은 이런 사유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감점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시설이 문을 걸어 잠그는데, 이건 서울시가 시설에 따져야 할 문제가 아닌가? 거주시설 문제의 책임을 서울시가 지지 않고 왜 센터에 돌리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런 모호한 기준의 상대평가에 국고지원 여부가 달려 있다. 53개 센터 중 평가에서 상위권을 따낸 8개 센터만 국고를 지원받을 수 있다. 서울시협의회는 “하위 10% 탈락과 재공모 대상 지정 방식은 사라졌지만 서울시는 여전히 상위권을 별도로 지정한다. 사실상 센터 간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용기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센터는 중증장애인이 노동하는 현장이다. 중증장애인은 생산성을 잣대로 하는 능력 중심주의를 거부한다. 또한 ‘우리 없이 우리를 논하는’ 전문가 중심주의를 단호히 거절한다. 센터는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주체성을 확보해, 당사자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서울시는 중증장애인이 더 열심히 일하고 자립생활을 꿈꿀 수 있게 하기 위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라”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발달장애인이 운영하는 센터를 평가할 때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철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소장은 “서울시는 멋대로 실적만 매겨서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평가를 나락으로 만들었다. 이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부정하는 일이다. 이런 식이라면 결국 비장애인 실무자가 일하게 될 것이고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서울시는 발달장애인 센터 평가기준을 발달장애인 특성에 맞게 조정하라”라고 규탄했다.
상대평가 방식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서울시협의회는 “‘탁월’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센터 간 경쟁을 부추기지 말라. 센터를 경쟁사회의 틀에 끼워 맞추려는 방식의 평가를 멈추고, 각 센터가 자립생활운동 이념에 맞게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장애인을 만나 지원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달라”며 “점수가 높은 센터에 국고를 더 지급하는 형태로 자립생활 정책을 펼칠 게 아니라, 모든 센터가 동등한 조건에서 각자의 색깔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라”라고 요구했다.
오후 2시경 서울시협의회와 서울시가 면담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평가방식은 평가운영위에서 계속 논의했다. 거기서 논의를 이어가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서울시협의회가 ‘당장 국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된 센터는 노동자 한 명을 해고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서울시는 ‘노동자 인건비 문제는 서울시에서 방법을 논의해 보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