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지하철 4호선에서 장애인 권리 보장 예산 요구
교통약자법 개정안 통과 임박했지만, 국비 지원 근거 미약해
장애인 평생교육·탈시설·활동지원 예산 늘려야 지역사회에서 산다 
예산 없는 정책은 껍데기… “홍남기 기재부 장관 나와라”

​장애인들이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홍남기 기재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지하철을 멈춰 세웠다. 지하철 입구에서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다른 활동가가 '장애인 권리 예산 기획재정부 마음대로 규탄한다!'라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장애인들이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홍남기 기재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지하철을 멈춰 세웠다. 지하철 입구에서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다른 활동가가 '장애인 권리 예산 기획재정부 마음대로 규탄한다!'라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장애인들이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홍남기 기재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지하철을 멈춰 세웠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고, 다른 활동가는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을 찾습니다'라는 글자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허현덕
장애인들이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홍남기 기재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지하철을 멈춰 세웠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고, 다른 활동가는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을 찾습니다'라는 글자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허현덕

오늘(29일) 오전 8시, 또 장애인들이 지하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홍남기 기재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지하철을 멈춰 세웠다. 이로 인해 지하철은 20여 분간 그대로 멈춰 섰다. 출근길이 막힌 시민은 장애인 활동가를 향해 분노의 말을 쏟아냈다.  

“씨발 장애인들이 집구석에나 있지”
“(휠체어) 끌어내려, 나가” 
“아 이 또라이 새끼들”
“병신 염병하네”
“사람이면 사람답게 행동해야지” 
“(시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왜 아침시간에 하는 거야?”
“계약 망치면 손해배상할 거냐고”

여기저기 원망 섞인 욕설과 혐오 발언이 터져나왔다. 욕설에만 그치지 않았다. 어떤 시민은 장애인 활동가의 휠체어와 몸을 거칠게 밀치고 때리기도 했다. 휠체어 이용자의 휠체어는 비장애인의 신체와 다름없지만 경찰도 시민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다루었다. 그 과정에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의 안경이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외쳤다.

“시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연내 통과될 수 있도록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지난 27일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개정안에는 꼼수가 있습니다.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 운영비 예산 국비 책임이 임의조항으로 돼 있습니다. 국가 예산을 담당하는 기재부는 장애인의 권리 예산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편하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시민분들도 (장애인들과) 함께 했으면 합니다.”

성난 시민이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성난 시민이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욕설에만 그치지 않았다. 어떤 시민은 장애인 활동가의 휠체어와 몸을 거칠게 밀치고 때리기도 했다. 휠체어 이용자의 휠체어는 비장애인의 신체와 다름없지만 경찰도 시민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다루었다. 사진 허현덕
욕설에만 그치지 않았다. 어떤 시민은 장애인 활동가의 휠체어와 몸을 거칠게 밀치고 때리기도 했다. 휠체어 이용자의 휠체어는 비장애인의 신체와 다름없지만 경찰도 시민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다루었다. 사진 허현덕
시민과 경찰이 휠체어 이용자의 전동휠체어를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사진 허현덕
시민과 경찰이 휠체어 이용자의 전동휠체어를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사진 허현덕

- 교통약자법 개정안 통과 임박했지만, 국비 근거 미약

이형숙 회장을 비롯한 장애인 활동가는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두 정거장을 지나 혜화역으로 향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운동단체는 혜화역 승강장(서울역 방향)에서 지난 6일부터 교통약자법 개정안,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등의 국회 통과를 요구하는 선전전을 열고 있다. 벌써 18일째다. 이들 법안이 마련되고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예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장애인 권리보장에 관한 예산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 개정안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27일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국가와 지자체가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와 광역지원센터의 운영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근거가 담겼다. 이 중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운영비 국비 지원은 지역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매우 중요한 조항이다. 문제는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에 중앙정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근거가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혜화역에서 활동가들이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천지차이'라는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냥 지나쳤다. 사진 허현덕
혜화역에서 활동가들이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천지차이'라는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냥 지나쳤다. 사진 허현덕

개정안 원안에는 제16조에 국가 또는 도(道)가 특별교통수단의 확보 또는 이동지원센터 설치·운영에 드는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로 책임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에서는 ‘할 수 있다’라고 수정되어 정부 책임이 불분명해졌다. 현재 장애인특별교통수단이 ‘보조금 지급 제외 사업’을 벗어나게 되지만, 여기에 정부 예산을 투입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전장연은 “현행 개정안은 기재부가 예산을 반영하지 않아도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예산 비율조차 정하지 않아 단돈 1원만 반영해도 되는 것이다. 기재부 입맛에 맞게 편성될 우려가 있다”라며 “운영비에 대한 기준보조율을 국비 50%, 지방비 50%로 해야 지역 간 특별교통수단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예산 없는 정책은 껍데기… “홍남기 기재부 장관 나와라”

이날 모인 이들은 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장애인평생교육, 탈시설권리보장, 활동지원 24시간 등 장애인 권리 보장 예산이 필요하다며, 기재부의 책임 있는 예산 책정을 촉구했다.  

장애인평생교육 시설 운영비는 현재 지자체 예산으로만 충당하고 있는데, 국가에서 50% 정도는 지원해야 장애인의 교육권이 실현될 수 있다.  

탈시설권리를 위한 예산도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 8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아래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했지만, 내년도 탈시설 예산은 고작 24억 원이다. 반면 장애인거주시설 운영 예산은 6224억 원에 달한다. 무려 6200억 원 차이다.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한 활동가가 '장애인거주시설 예산 6224억, 탈시설 예산 24억 장난치지 말라'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뒤로 지하철이 멈춰 서 있다. 사진 허현덕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한 활동가가 '장애인거주시설 예산 6224억, 탈시설 예산 24억 장난치지 말라'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뒤로 지하철이 멈춰 서 있다. 사진 허현덕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보장도 필요하다. 현재 활동지원 국비 지원은 최대 16시간이다. 이마저도 16시간을 받는 장애인은 전국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장애인들이 기재부를 향해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을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20년부터 기재부 소유인 나라키움저동빌딩(서울 중구 삼일대로 340) 국가인권위원회 1층을 점거하며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재부 장관 면담은커녕 변변한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 장애인 예산은 여전히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2년 전 목에 걸고 투쟁했던, '긴급현상수배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을 찾습니다'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2년 전 목에 걸고 투쟁했던, '긴급현상수배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을 찾습니다'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2년 전, 목에 걸었던 피켓을 흔들어 보이며 홍남기 장관 면담이 성사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2월 31일 기재부 장관 집 앞 투쟁과 1월 3일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예고하기도 했다.  

“탈시설권리 예산은 24억 원이고, 거주시설 예산은 6224억 원입니다. 적어도 똑같은 예산을 내놓고 시설에서 살지 지역사회에서 살지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산조차 제대로 책정하지 않으면서 장애인의 권리를 말하지 마십시오. 예산 없이 권리는 없습니다. 기재부를 향한 예산 증액 요구는 오늘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홍남기 장관 한 번도 못 만났습니다. 장관 만나서 장애인 권리 예산이 실현될 때까지 이 투쟁을 계속 이어갈 겁니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보장 관련 법률 제·개정 상황에 대한 입장을 기재부에 공식 질의했다고 밝혔다. 비마이너는 기재부에 직접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담당자와 통화할 수 없었다.

전장연은 혜화역 승강장(서울역 방향)에서 지난 6일부터 교통약자법 개정안,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등의 국회 통과를 요구하는 선전전을 열고 있다. 장애인 권리 예산이 실현될 때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 허현덕
전장연은 혜화역 승강장(서울역 방향)에서 지난 6일부터 교통약자법 개정안,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등의 국회 통과를 요구하는 선전전을 열고 있다. 장애인 권리 예산이 실현될 때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 허현덕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