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학이 장애학에 건네는 화해
치료, 증강 그리고 사이보그 ②

“탈모가 과연 건강보험 대상이냐 아니냐는, 저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신체의 완전성이라는 측면에서요. 건보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게 하나의 이유였을 것 같은데, 저는 기본적으로는 책임지는 게 맞다고 보고(...)”

지난 1월 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탈모 공약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이 후보는 그동안 미용 영역으로 간주되어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왔던 탈모 치료제를 건강보험의 테두리 안으로 포함할 것을 적극 검토할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온라인 탈모 커뮤니티에서는 이 후보의 공약을 지지한다는 의견이 다수 올라왔고, “이재명을 심겠다”(탈모 커뮤니티에서 ‘뽑는다’는 금기어가 있음을 패러디한 것)는 인터넷 밈(meme)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건보재정을 파탄 내는 모(毛)퓰리즘적(포퓰리즘적) 공약이다’, ‘그렇다면 쌍꺼풀 수술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여야 하는가’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비판에 응답하며, 지난 1월 5일 이 후보는 탈모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의 근거로 “신체의 완전성”을 언급하였다. 신체의 완전성을 회복하는 탈모 치료는 충분히 건강보험에서 지원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캠프 공식 유튜브 채널 ‘재명이네 소극장’ 갈무리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캠프 공식 유튜브 채널 ‘재명이네 소극장’ 갈무리

- 건강보험과 ‘정상성’

그렇다면 건강보험은 어떠한 기준으로 건강보험 지원 여부를 선정하는 것일까? 우선 건강보험의 목적을 명시한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를 살펴보자.

-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

이 법은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에서 말하듯, 건강보험은 국민의 ‘질병과 부상’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지급한다. 그렇다면 피부과적 ‘질병’으로 명시되어 있는 대머리는 왜 보험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건강보험은 ‘모든’ 질병과 부상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지급하고 있지는 않다. 건강보험법 제41조 제4항에서는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 등”에 대해서는 급여에서 제외하는 ‘비급여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자비로(즉, 비급여로) 금액을 납부하라는 것이다. 법에서는 그 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아래 건강보험요양급여규칙) 제1조의2

보건복지부장관은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등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사회적 편익 및 건강보험 재정상황 등을 고려하여 요양급여대상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상기 규칙의 비급여대상의 구체적 목록을 보면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 “신체의 필수 기능개선 목적이 아닌 경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1호에 명시된 “노화현상으로 인한 탈모”와 2호에 명시된 “쌍꺼풀 수술”이다.1)

탈모 보험급여화 정책이 가장 강한 비판을 받았던 것도 쌍꺼풀 수술 등의 성형수술과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 ‘탈모’에 대해서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하는 것과 ‘쌍꺼풀 수술’에 대해서 지급하는 것 사이에는 무언가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탈모 치료와 쌍꺼풀 수술 사이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 ‘질병’ 경계의 유동성 : 탈모 치료와 쌍꺼풀 수술

이에 대해, 탈모는 질병이지만 외꺼풀은 질병이 아니기에 건강보험 대상 선정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대답을 생각해볼 수 있다. 건강보험은 “질병·부상”에 대해서 적용되는 것이며(국민건강보험법 제1조), 따라서 정식 질병으로 등록된 ‘대머리’는 보험급여 적용 여부를 검토해볼 수 있지만 쌍꺼풀 수술은 보험급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주장으로, 누군가는 쌍꺼풀/외꺼풀은 모두 인체의 ‘자연스러운’ 특징이지만, 대머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병리적인’ 것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간명하고 직접적인 첫 번째 해답은 탈모 치료와 쌍꺼풀 수술 사이의 차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애초에 ‘질병’의 경계는 유동적이며, 대머리가 ‘질병’으로 등록되었던 과정 자체가 논쟁과 타협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머리 상태가 사회적으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고통스러운 질병이라면, 왜 ‘쌍꺼풀이 없어 작은 눈’은 질병이 될 수 없는가?”라는 보다 근본적 차원의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위와 같은 해답은 ‘질병’과 ‘질병 아님’의 구분이 애초에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그 기저의 근거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몸의 상태가 언제 ‘질병’이 되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모에 대한 표준 분류법인 노우드 스케일(Norwood scale). ‘질병’의 경계는 유동적이며, 대머리가 ‘질병’으로 등록되었던 과정 자체가 논쟁과 타협의 산물이었다. 사진 https://www.freedomclinictoronto.com/about-hair-and-hair-loss/types-of-hair-loss/
탈모에 대한 표준 분류법인 노우드 스케일(Norwood scale). ‘질병’의 경계는 유동적이며, 대머리가 ‘질병’으로 등록되었던 과정 자체가 논쟁과 타협의 산물이었다. 사진 https://www.freedomclinictoronto.com/about-hair-and-hair-loss/types-of-hair-loss/

특정 몸의 상태는 언제 ‘질병’이 되는가?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콘래드는 대머리가 질병이 된 역사를 추적하며, 이를 일상생활이 모두 의학의 언어와 의학의 영역으로 포섭되는 현상인 “의료화(medicalization)”의 일종으로 설명한다.2) 과거 사회에서 ‘정상’의 일부로 취급되어왔던 (대머리와 같은) 여러 요소가 의학과 치료제의 발전에 따라 점차 ‘고쳐야 할 대상’ 혹은 ‘질병’에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콘래드가 지적하듯, “의학적 필요가 무엇인지는 생각보다 자명하지 않고, (...) 의학적 치료와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운 질병이나 장애가 [새롭게] 정의되기도 한다.”3)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대머리가 질병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쌍꺼풀 수술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해주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 치료와 차별금지 사이에서

한편, 탈모 치료나 쌍꺼풀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지급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두 의료적 처치 모두 보다 근본적 문제인 ‘차별적인 사회의 시선’은 그대로 두고, 오히려 개인의 몸을 그 차별적 시선에 맞추어 변형시키려는 시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대머리와 작은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 자체가 몸의 통증을 유발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당사자의 고통은 탈모와 작은 눈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시선’과 ‘부당한 대우’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즉, 탈모 당사자는 ‘대머리라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대머리를 차별하는 사회에 살아서’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모와 작은 눈에 대한 보다 근본적 개선은 고통을 유발하는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는 것에서 출발하게 된다.

나아가, 사회에 만연한 부당한 차별은 외면한 채, 외모적 소수자인 개인들의 신체 상태를 차별에 맞추어 변형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기만적일 수 있다. 차별적인 시선을 비판할 생각은 안 하고 모두가 다 그 차별에 편승하여 자신의 외모를 바꾸어 나간다면, 차별의 구조는 더욱 공고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탈모 치료나 쌍꺼풀 수술과 같은 개인에 대한 의료적 개입은 오히려 이러한 차별적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렇기에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 건강보험은 ‘대머리’나 ‘작은 눈’을 교정하는 데에 자원을 투자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체조건을 차별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부당한 대우를 교정하는 데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국가의 탈모 치료 지원과 쌍꺼풀 수술 지원은 차별적 구조에의 순응을 돕고 차별을 공고화한다는 점에서 같은 선상에 놓이며, 두 지원은 모두 정당화될 수 없다.

탈모 치료제인 프로페시아(Propecia)에 대한 1998년 미국 광고. 자신의 탈모를 걱정하는 광고 속 남성은 프로페시아를 복용하고 나서 ‘남성’으로서의 자신감을 되찾는 것으로 묘사된다. 탈모에 대한 약제 치료는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차단하고, 오로지 스스로의 몸을 그 차별적 구조에 맞추어 변형시키려는 ‘기만적’ 행위인가? 사진은 프로페시아 광고 갈무리(https://www.youtube.com/watch?v=LXhV6Ku52Pw)
탈모 치료제인 프로페시아(Propecia)에 대한 1998년 미국 광고. 자신의 탈모를 걱정하는 광고 속 남성은 프로페시아를 복용하고 나서 ‘남성’으로서의 자신감을 되찾는 것으로 묘사된다. 탈모에 대한 약제 치료는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차단하고, 오로지 스스로의 몸을 그 차별적 구조에 맞추어 변형시키려는 ‘기만적’ 행위인가? 사진은 프로페시아 광고 갈무리(https://www.youtube.com/watch?v=LXhV6Ku52Pw)

그러나 자신의 신체적 차이로 인하여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사회 구조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자신의 몸을 변형시키는 선택을 한다면, 이는 모두 차별을 묵인하는 ‘기만적 행위’인 것일까? 이러한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장애를 치료하는 것 또한 차별적 사회에 순응하는 기만적 행위가 되는 듯이 보인다. 신체장애에 대해 재활치료를 하거나 적절한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까지도, 사회의 차별적 구조는 그대로 놔둔 채 자신의 몸을 문제적 사회구조에 맞추려는 기만적 타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앞의 글에서 살펴보았던 치료와 증강 사이의 문제와 얽혀 더욱 복잡한 논의로 이어진다. (▷참고 : 마약과 치료제 사이)

이처럼 ‘치료↔증강’, ‘개인적 치료↔사회 변혁’ 사이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택하는지에 따라, 소수자의 몸에 대한 의학적 개입의 의미는 극적으로 변화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논쟁을 빚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척수성 근위측증(SMA) 장애 당사자의 치료를 위한 고가의 약제(스핀라자Spinraza)를 건강보험 대상으로 포섭할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장애학의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 화에 계속)

*                  *                  *

1) 건강보험요양급여규칙 [별표 2] 비급여대상

1. 다음 각목의 질환으로서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실시 또는 사용되는 행위·약제 및 치료재료

나. (…) 노화현상으로 인한 탈모 등 피부질환

다. 발기부전

2. 다음 각목의 진료로서 신체의 필수 기능개선 목적이 아닌 경우에 실시 또는 사용되는 행위·약제 및 치료재료

가. 쌍꺼풀수술

2) 의료사회학자인 피터 콘래드에 따르면, 의료화(medicalization)란 “비의학적 문제가 질병이나 질환과 같은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과거에 비의학적인 것으로 다루어졌던 문제들이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는 과정을 거쳐 치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의료화와 관련된 자세한 논의는 피터 콘래드,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 탈모, ADHD, 갱년기의 사회학』, 정준호 역, 후마니타스, 2018. 1장과 2장을 참조할 수 있다.

3) 피터 콘래드(2018), 앞의 책, 155쪽. 괄호 안의 내용은 필자가 추가함.

필자 소개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휴직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야학을 만났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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