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이전 발병 기록 없다고, 보험급여 받지 못해
보험급여 적용받아도 자부담 높고, 보험유지도 어려워
대책위 “절차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절박” 무기한 농성 돌입
척수성근위축증 환자와 장애운동단체는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폐지를 위해 심평원 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7일 현재(오후 10시) 서울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아래 심평원) 서울지원을 점거했다.
- 척수성근위축증 대책위 꾸려져, 첫 번째로 심평원 점거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은 운동 기능에 필수적인 생존운동신경세포 단백질의 결핍으로 전신의 근육이 점차 약화되는 희귀질환이다. 척수성근위축증은 과거에는 치료제가 없었지만, 2016년 ‘스핀라자(뉴시너센나트륨, nusinersen)’라는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한국에서는 2019년부터 보험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보험급여가 적용되면 환자 본인부담금은 1회당 약 600만 원가량. 치료를 위해 첫해에는 6회, 이후부터는 4개월에 한 번씩 투여해야 한다. 따라서 보험급여가 적용돼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스핀라자 1회 주사 비용은 약 1억 원. 향후 신체 기능과 생존이 직결된 문제임에도 비용 탓에 포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값비싸다.
이런 문제의식 속 척수성근위축증 환자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아래 대책위)가 7일 출범했다. 대책위에는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근육장애인협회, SMA환우 청년회 모닥불 등의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현 스핀라자 건강보험 급여적용 기준이 “인간의 생명을 예산과 효율의 잣대로 판단하는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민낯”이라고 비판하며, 급여적용 기준 확대를 요구했다. 그 첫 번째 행동으로 심평원 서울지원을 점거했다.
- 3세 이전 발병 기록 없다고, 보험급여 받지 못해
노금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은 척수성근위축증 환자다. 노 부회장은 두 살 무렵부터 몸에 힘이 없고 잘 넘어졌다. 당시 부모는 ‘아들이 단지 걸음이 서투르고 어리광을 부린다’고 생각했으나, 증세가 악화돼 병원을 찾은 네 살 무렵(1986년) 그는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았다. 그러다 34년이 지난 2020년, 증세가 더욱 악화돼 병원 진단을 다시 받으니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노 부회장은 ‘3세 이전에 병이 발병했다’고 증명할 의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최근 심평원으로부터 보험급여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노 부회장이 2세 6개월 때의 사진 등을 근거로 담당의사 소견을 제시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현재 재심의를 요청했고, 오는 9일 심사를 앞두고 있다.
심평원은 △5q SMN-1 유전자의 결손 또는 변이의 유전자적 진단 △만 3세 이하에 척수성근위축증 관련 임상 증상과 징후 발현 △영구적 인공호흡기 주 1회를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경우 등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보험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노 부회장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담당의사가 ‘만약 어머니가 당시 병원에서 만 3세부터 증상이 있었다고 말했다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이 얘기를 아시게 될 부모님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마음이 복잡하다. 건강보험 심사 평가지표가 사람을 너무 비굴하게 만든다”라며 “그래도 살고 싶다. 살려고 이곳에 왔고, 다른 척수성근위축증 환우들도 모두 함께 살기 위한 투쟁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라고 말했다.
- 보험급여 적용받아도 자부담 높고, 보험유지도 어려워
보험급여를 적용받아도 높은 자부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안석희 한국근육장애인협회 간사는 2년 전부터 급여적용을 받아 치료제를 투약하고 있다. 그러나 한 해 드는 비용이 수입에 비해 턱없이 높아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안 간사는 1년에 세 차례 치료제를 투여하는데, 한 회당 580만 원이 든다. 이후 건강보험 상한제 적용을 받아 실제로 드는 비용은 한 해 580만 원이지만, 1740만 원을 미리 내야 돌려받을 수 있다.
안 간사는 “지난해 월급이 80만 원이었다. 그러나 (자부담이 가구 소득에 비례해 책정되어) 자영업 하시는 부모님의 수입으로 인해 자부담 비용이 높게 책정됐다. 나의 수입에 비해 치료비가 너무 크기 때문에 부모님께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라며 “일본은 보험이 적용되면 1회당 10만 원~20만 원 수준이다. 자부담이 아예 없는 게 가장 좋지만, 최소한 일본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라고 말했다.
어렵게 보험 적용을 받아도 중도에 철회되기도 한다. 심평원은 ①치료 시작 전 ②4회 투여 후 5회 투여 전 ③5회 이후 매 투여 전, 임상평가(발달단계, 운동기능, 호흡기능 등)를 실시하여 보험적용 유지 여부를 평가한다.
김민재 한국근육장애인협회 간사는 8회부터 스핀라자 급여적용이 중단됐다. 본인 스스로는 “투여 후 한 달간 전체적으로 신체활동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지만, 심평원은 최근 몇 차례의 투여에도 그가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급여 적용을 중단했다. 김 간사는 이의 제기를 하며 재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 간사는 “성인은 보험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적용되는 척도가 근육병 환우들에게 적절하지 않다. 대근육이 소실되고, 소근육도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된 상태에서 팔과 다리를 움직여야 보험급여가 유지되는 것은 매우 행정편의적이다”라며 “스핀라자는 근육병 환우들에게는 생명과 직결된다. 보험급여 중단은 한 줄기 희망을 묻어버리는 것임을 알아야 하다”라고 강조했다.
- 대책위 “절차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심정” 무기한 농성
대책위는 기자회견 직후 심평원 박인범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위원, 이희화 진료실위원회 심사실 실장, 김채옥 사전심사부 부장과 면담했다.
대책위는 심평원 측에 치료제 스핀라자의 급여적용 확대와 급여유지 심사평가 기준 개선, 자부담 경감 등에 대한 현재 상황을 전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심평원 측은 “노금호 씨의 보험급여 심사관련해서는 영상이나 사진 등을 직접 제출해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라면서 “당사자들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절차상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추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선민 심평원 원장과의 면담 요구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대책위 측은 “우리는 지금 절차를 논하고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심정으로 이곳을 찾았다”라며 원장 면담 약속이 정해질 때까지 심평원에서 무기한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책위는 오는 18일(금)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철폐를 위한 증언대회’를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