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짜리 신약 급여 결정 외에 건정심에서 통과된 사항들
윤석열 정부에 대항하는 SMA 의약품 접근권 투쟁

의료계에서는 종종 ‘심평의학’이라는 표현을 쓴다. 병원은 건강보험 급여 적용 항목에 대해 환자를 진료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진료비를 청구한다. 심평원은 진료가 적절했는지 심사해서 병원에 진료비를 지급할지 말지 판단한다. 의료계는 심사는 필요하나, 그 기준이 증거기반이 아니라, 정치적이라며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일부 맞다. 식약처에서 의약품 사용에 대한 허가가 나는 과정은 의학적이라고 할지라도 심평원에서 보험을 적용할지 말지, 즉 예산을 쓸지 말지는 정치적이다. 우린 이 정치가 어떻게 작동되는가 되돌아봐야 한다.

희귀난치질환은 시장의 논리 속에서 수요자가 적다는 이유로 항상 소외되었다. 진단 자체도 어렵지만, 진단을 받고 나서 마침 운이 좋게 신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1) 글로벌 시장 전체에서 희귀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를 웃돌지만, 희귀의약품 건강보험 지출규모는 2018년 기준 약 3,700억 원으로 전체 약품비의 2.1%에 불과하다.2) 하지만 항상 희귀질환자들은 ‘혈세를 낭비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이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싸울 힘이 없다면, 살 권리도 없다. 약 7만 명의 장애인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1929년 히틀러의 논리3)와 크게 다르지 않다.

SMA공대위와 장애운동단체는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폐지를 위해 심평원 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지난 2월 7일 서울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을 점거했다. 사진 허현덕
SMA공대위와 장애운동단체는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폐지를 위해 심평원 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지난 2월 7일 서울 송파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을 점거했다. 사진 허현덕

- 20억짜리 신약 급여 결정 외에 건정심에서 통과된 사항들

7월 20일 제16차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졸겐스마에 대한 급여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연대하는 SMA 환자 의약품 접근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SMA공대위)는 급여 신규 적용이 이루어지는 8월 1일 건정심의 결정에 대한 성명서4)를 냈다. 언론은 이 약이 얼마인지, 이 약으로 인해 소모되는 재정이 얼마인지 등 이 약이 얼마나 비싼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건정심에서 논의된 사항들은 가격 이상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건정심에서 논의된 졸겐스마 급여 적용 기준은 굉장히 협소하다. 우리나라는 의약품이 식약처에서 승인되어야 판매가 가능하고, 이후 식약처에서 판단한 대상, 적응증, 유효성, 안정성 등을 토대로 심평원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 급여 기준을 마련한다. 이렇게 마련된 급여 기준을 보건복지부가 정부, 의료계, 소비자단체가 모인 건정심에 상정하고 여기서 최종 결정된다.

이번 건정심에 올라온 급여 기준은 연령 제한이 12개월 이하로 정해졌다. 그마저도 9개월에서 12개월 사이의 아동은 조건이 붙는다. 졸겐스마에 대한 급여 적용을 이미 하고 있는 나라(미국, 일본 등)들이 대부분 24개월로 두고 있다. 또한 “투여 후 다른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투여 시 급여를 인정하지 않음”을 급여 기준에 명시하였다. 따라서 졸겐스마 투여 후 효과가 없더라도 다른 SMA 치료제에 대한 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다.

고가 약제인 졸겐스마가 통과되면서 희귀의약품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자 스핀라자의 급여 중단 기준을 강화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스핀라자는 1년에 4번 척추강에 투여하는 약물이다. 스핀라자 보험적용은 주사를 맞을 때마다 평가를 진행한다. 현재는 “개선 혹은 유지”가 안 될 경우에는 급여적용을 중단한다. 그런데 심평원은 이 기준을 “개선”으로 강화하려고 한다. 

SMA는 점차 온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퇴행성 질환이다. 약을 투여했을 때 몸의 기능,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개선”은 극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흔히 쓰이는 평가 도구인 HFMSE5)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점수가 다음 그림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0점은 주로 일정 동작을 할 수 없으며, 1점은 3초 동안 일정 동작을 유지해야 하며, 2점은 3초 이상 일정 동작을 유지해야 한다. 심평원이 추진하는 대로 기준이 강화되면 이 점수를 4개월마다 올려야 한다. 

평가 도구인 HFMSE에 따르면 0점은 주로 일정 동작을 할 수 없으며, 1점은 3초 동안 일정 동작을 유지해야 하며, 2점은 3초 이상 일정 동작을 유지해야 한다. 심평원이 추진하는 대로 기준이 강화되면 이 점수를 4개월마다 올려야 한다. 사진 출처 HFMSE Manual of Procedures and Score Sheets, Biogen
평가 도구인 HFMSE에 따르면 0점은 주로 일정 동작을 할 수 없으며, 1점은 3초 동안 일정 동작을 유지해야 하며, 2점은 3초 이상 일정 동작을 유지해야 한다. 심평원이 추진하는 대로 기준이 강화되면 이 점수를 4개월마다 올려야 한다. 사진 출처 HFMSE Manual of Procedures and Score Sheets, Biogen

현재 심평원은 SMA공대위가 계속 주장했던 “스핀라자 3세 이하 증상 발현 급여 기준 폐지”와 함께 급여 적용 중단 기준 강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같은 적응증, 대상자를 지닌 에브리스디의 논의도 지연시키고 있다. 에브리스디는 먹는 약으로, 척추측만으로 인해 척추강 주사를 놓을 수 없거나 잦은 입원치료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고 경제적 부담이 큰 이들에게 꼭 필요한 약물이다.

3세 이하 증상 발현 급여 기준 폐지는 행정적으로 입증할 수 없으므로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 급여 중단 기준 자체도 폐지되어야 한다. 의사가 약물이 필요한지 아닌지에 따라 처방한다. 이 과정 자체가 이미 심사의 과정을 거친다. 또한, 아직 국내 임상 결과도 충분하지 않다. 신약인 만큼, 치료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때까지는 모니터링을 통한 급여 중단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스핀라자를 시작으로 기존의 고가 약재에 대한 재정을 삭감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건정심에서는 ‘고가 중증질환 치료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 제고 및 급여 관리 강화 방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6)가 있으나, 고가 신약에 대해 다시 비용효과성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결정되었다. 

- 윤석열 정부에 대항하는 SMA 의약품 접근권 투쟁

윤석열 정부는 후보시절 ‘중증질환·희귀암 치료제 등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허나 오히려 중증질환·희귀암 치료제에 대한 재정을 감축하는 방안들이 시행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걸었던 신속등재 방안과 위험분담제도도 이번에 결정되었으나, 결국 예산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지금도 고가 신약은 항상 법적으로 지정된 등재기간을 넘겨서 논의과정이 길어진다. 길어진 이유는 하나다. 예산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루어내기 위함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칼날이 SMA 환자에게 가장 먼저 닥쳐왔다. 

일본에서는 SMA 환자의 치료비가 최대 30만 원밖에 들지 않는다. 또한 의료비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생활도 지원한다. “건강보험”은 이름 그대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로 작동해야 한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의료보장제도에 머무를 뿐. 사회보장제도로 폭넓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

SMA공대위의 투쟁은 단순히 SMA라는 특정 희귀질환을 겪는 일부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희귀질환자의 삶을 “경제성 평가”라는 효율의 잣대 앞에서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투쟁이다. 그리고 건강보험이 의료보험이 아니라, 진짜 “건강보험”으로 작동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투쟁이다. 

“지금도 신체적 손상에서 오는 일상적 고통과 예산 효율성 논리로 절망하고 있는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와 가족들, 그들과 함께 존엄하게 살고 싶습니다”7)라는 노금호 동지의 말처럼 모두가 존엄하게 살 수 있을 때까지 투쟁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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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1년 8월 26일 최혜영 의원실 발표 자료 ‘희귀의약품 건강보험 적용 현황’에 따르면 전체 희귀의약품 380개 중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있는 약제는 176개에 불과하고, 55개는 급여 신청 중이다.

2)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발간잡지 ‘엔젤스푼’ vol.30,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 이종혁, 희귀질환 치료제의 환자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제언

3) [선전] 2022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전동행진(06.30-07.01) https://youtu.be/YV-7f58RkNw

4) [성명서] 효율의 잣대로 희귀질환자의 삶을 재단하지 말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스핀라자 급여 중단 기준 폐지하고, 에브리스디 급여 논의를 즉각 시작하라! http://sadd.or.kr/data/23808

5) HFMSE Manual of Procedures and Score Sheets, Biogen

6) 2015년에 도입된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는 대체제가 없거나 환자 수가 적어 통계로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운 희귀질환치료제, 항암제 등에 대해 경제성평가를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7)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우리나라는 1억 원, 일본은 10만 원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49

* 필자 소개_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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