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1억 원, 건보 적용돼도 600만 원에 달해
20~30년 전 자료 찾아 3세 이전 발병 증명하라? 사실상 불가능
높은 자기부담금, 빚지거나 치료 포기하거나
‘치료 효과성’ 입증 못하면 건보 급여 중단
자부담 낮은 일본, 연령기준·치료 효과성 입증 없어
희귀질환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 치료제 ‘스핀라자’는 1회 투약 때마다 1억 원가량이 든다. 다행히 2019년 건강보험 급여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1회당 600만 원 정도의 자부담이 발생한다. 스핀라자는 치료 효과를 위해 투약 첫해에는 6회, 이후에는 4개월마다 한 번씩 투약해야 한다. 보험적용을 받더라도 환자 입장에선 부담이 매우 크다.
문제는 또 있다. 건강보험 급여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3세 이전에 질환이 발병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어렵게 이를 증명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어도 유지하기 위해 계속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기준에 미달하면 스핀라자 투약은 중단된다.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와 유지기준 폐지를 위한 당사자 국회 포럼이 지난 18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날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 5명의 증언과 함께 일본의 사례가 발표됐다.
이날 당사자들은 비현실적인 급여적용 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며, 목숨이 걸린 치료제 투약에 대해 ‘비장애인 기준에 맞춰진 치료 효과성 입증 기준’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희귀성질환 치료비에 대한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높은 자부담 문제 해결도 촉구했다.
- 20~30년 전 자료 찾아 3세 이전 발병 증명하라? 사실상 불가능
척수성근위축증은 운동기능에 필수적인 생존운동신경세포 단백질의 결핍으로 전신의 근육이 점차 약화되는 희귀질환이다. 그동안은 치료제가 없었지만, 지난 2016년 ‘스핀라자(뉴시너센나트륨, nusinersen)’라는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아래 심평원) 약제급여기준 소위원회는 ①5q SMN-1 유전자의 결손 또는 변이의 유전자적 진단 ②만 3세 이하에 척수성근위축증 관련 임상 증상과 징후 발현 ③영구적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등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만 당사자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적용을 인정하고 있다.
노경수 씨는 어릴 때부터 발육이 늦었고, 6세경엔 일어서서 걸을 수 있었지만 이후 근육장애가 계속 진행되어 현재는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다. 그는 앉아만 있어도 가슴과 허리, 골반 등에 심각한 통증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치료제 투여를 위한 건강보험 급여적용을 받을 수 없다. 3세 이전 발병한 사실을 입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 사상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인 그는 고통 속에서 평균 14시간 이상을 휠체어 위에서 견디고 있다.
“의사 선생님께서 치료제 스핀라자가 있다며, 세 살 이전에 받은 장애판정 진단서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얼토당토않은 말입니다. 당시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병은 세상에 드러나지도 않아 의사들은 소아마비 또는 척수신경마비 등으로 진단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건강보험공단은 현실에 맞지도 않는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노경수 부산 사상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노금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3세 이전 발병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 2021년 7월 건강보험 급여심사에서 떨어졌다가 최근 재심사를 통해 급여적용을 승인받았다. 재심사 때 3세경 그의 상황을 증언해줄 가족과 이웃의 진술서, 어린 시절 다리변형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등을 추가로 제출한 덕분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증명이 어려워 재심사를 통해 급여승인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급여신청과 재심사로 1년이 흐르는 동안 저는 오른손의 세 손가락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와 같은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스핀라자를 투약받아도 이미 손상된 근육은 되돌릴 수 없다고 합니다. 저와 같은 많은 성인 당사자들이 20~30년 전 진료기록과 증명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워 치료제 급여적용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습니다. 재심사를 통해 스핀라자 투약을 승인받은 저의 경험이 한 개인의 행운으로 그치지 않는 건강보험제도를 원합니다. 지금도 신체적 손상에서 오는 일상적 고통과 예산 효율성 논리로 절망하고 있는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와 가족들, 그들과 함께 존엄하게 살고 싶습니다.” (노금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
- 어렵게 급여 적용받아도 ‘높은 자부담’으로 치료 포기
급여적용을 받는다고 해도 높은 자기부담금으로 결국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심평원 약제급여기준 소위원회의 2022년 2월 1일 ‘약제급여목록 및 급여상한 금액표’에 따르면 스핀라자의 1회 투약(5ml) 비용은 9235만 9131원이다. 한 회당 약 1억 원에 이른다.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인 서보민 함께가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우리 언니 또한 척수성근위축증이지만 우리 자매는 스핀라자를 맞지 않고 있다. 치료제를 맞기 위해 선지출해야 하는 자부담 때문에 이번 생은 포기했다”고 자조했다. 척수성근위축증은 유전 질환으로 이처럼 형제가 함께 발병하기도 한다.
이날 서 소장은 급여적용을 받는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 ㄱ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한해 연봉이 2400만 원인 ㄱ 씨는 1년에 스핀라자 자부담으로 1740만 원을 쓰고 나머지 660만 원으로 생계를 꾸린다. 월세 67만 원, 활동지원 자부담 17만 원, 근로지원인 자부담 5만 원, 이 밖에도 보조기기 구입‧유지비, 통신비, 식료품비, 공과금 등의 지출이 발생하니, 사실상 그의 급여로 생계유지는 불가능하다. 결국 빚을 내고 가족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현재 스핀라자 자부담은 가구소득으로 책정되고 있다. 자부담은 1년 후 일부 환급받을 수 있으나 먼저 지출해야 한다. 즉, ㄱ 씨 또한 부모님의 소득이 가구소득에 포함되어 자부담이 높게 책정되었고, 이를 부담하기 위해 온 가족이 빚을 내어 ㄱ 씨의 치료비를 감당하고 있다.
서 소장은 “그동안 장애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비용도 가족이 짊어졌는데, 이젠 유일한 치료제까지 가족이 부담하고 있다”라면서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에 관한 기준’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당사자 의사 상관없이 ‘치료 효과성’ 입증 못하면 급여 중단
설령 급여적용을 받는다고 해도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심평원은 ①치료 시작 전 ②4회 투여 후 5회 투여 전 ③5회 이후 매 투여 전, 임상평가(발달단계, 운동기능, 호흡기능 등)를 실시하여 보험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평가를 통해 ‘치료제 투약 후 눈에 띄게 나아졌다’는 치료 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급여적용은 중단된다.
신형진 씨는 스핀라자를 9차례 맞았지만, 10회 투여 직전 심사에서 탈락했다.
“희귀난치성 질병은 단순히 비용 효율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치료제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난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탈락되면, 지금까지 생존하기 위해 병마와 치열하게 싸워온 환우와 환우 가족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신형진 씨)
이명주 씨도 10번째 치료를 앞두고 급여 적용이 중단됐다.
“저는 심사기준평가표의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다만, 이 치료제의 목적은 무엇인지, 심사기준을 정하고 법과 제도를 만드시는 분들이 알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성인을 위해 개발된 스핀라자를 왜 성인 척수성근위축증 환자가 맞을 수 없습니까? 치료제를 투약하면 당장 일어서고 뛰어다니는 기적을 일으켜야만 합니까? 치료를 받고 안 받고는 당사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제약회사의 이익과 나라가 정한 기준에 의해 결정되어선 안 됩니다.” (이명주 씨)
- 자부담 낮은 일본, 연령기준·치료 효과성 입증도 없어
반면 일본은 척수성근위축증과 같은 희귀질환에 대한 치료가 어렵지 않다.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인 유다 유이(쿄토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씨는 일본의 치료제 지원제도를 설명했다.
일본은 ‘지정난병 등의 의료조성제도’를 통해 330개 이상의 질환에 대한 의료비가 지원되고 있다. 척수성근위축증은 2009년 포함되었다.
일본 또한 자부담이 가구소득으로 정해지나, 아무리 소득이 높더라도 월 30만 원을 넘지 않는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1년이 아닌 1개월을 기준으로 자부담 상한액을 정한다.
유다 유이 씨에 따르면, △생활보호자(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는 0엔 △연 소득 약 160만 엔(1600만 원) 미만의 저소득 가구는 2500엔(2만 5000원)~5000엔(5만 원) △연 소득 약 160만 엔~370만 엔(1600만 원~3700만 원) 가구는 5000엔(5만 원)~10000엔(10만 원) △연 소득 약 370만 엔~810만 엔(3700만 원~8100만 원) 가구는 1만 엔(10만 원)이나 2만 엔(20만 원) △연 소득 약 810만 엔(8100만 원) 이상 가구는 2만 엔(20만 원)이나 3만 엔(30만 원)을 부담한다.
일본에서 ‘지정난병 등의 의료조성제도’ 적용을 받는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는 스핀라자(2017년)를 비롯해 에브리스디(2021년 8월), 졸겐스마(2020년 5월 2세 이하 영유아 대상) 등 3가지다. 물론 일본도 스핀라자 9300만 원(1회 비용, 연 2회 적용), 에브리스디 2억 원(1년 기준), 졸겐스마 16억 7000만 원(평생 1회)으로 값비싸게 책정돼 있다. 그러나 ‘지정난병 등의 의료조성제도’로 척수성근위축증 환자가 과도한 치료비를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진 않는다.
유다 유이 씨는 “저는 어머니와 세대 분리를 하고 있지 않아서 매월 자부담 10만 원을 내고 있다. 스핀라자를 맞은 달도, 맞지 않은 달도 10만 원을 넘긴 적은 없다. 만약 어머니와 세대를 분리한다면 매달 2만 5000원이나 5만 원만 내면 된다”라며 “한국의 자부담 기준이 일본에도 적용된다면 극히 일부의 고소득 사람 외에는 치료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8년부터 스핀라자를 투여받다가 지난해 11월부터는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경구약 에브리스디로 바꿨다. 주사로 투여되는 스핀라자의 경우, 투여 후 2박 3일을 입원해야 하고 신체적으로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유다 유이 씨는 “꾸준한 치료를 통해 최근 2년간 근력저하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라며 “이것이 치료약의 효과”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치료비 부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처럼 3세 이전 발병을 증명해야 하는 까다로운 기준이나 치료제 투약 후 효과를 증명해야 하는 평가 절차도 없다. 유다 유이 씨는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치료의 효과와 효율에 위화감을 표했다.
“(치료 후)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었거나 호흡기능이 좋아지는 큰 변화도 중요하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왠지 덜 피곤하게 된 것 같아’, ‘어깨 뭉침이 괜찮아진 것 같다’처럼 병의 진행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거나 멈춘 것도 큰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 기준으로 ‘치료 효과’를 일방적으로 정하여 계속 치료 여부를 본인이 아닌 국가가 정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아닐까요? 비용과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하여 전자를 우선하는 사회적 풍조에 저항하여,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자원을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다 유이 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