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화재로 10명 사망, 17명 중경상
불 났지만 외국인 도주 우려해 문 안 연 여수보호소
15년 지나도 보호소 내 인권침해 여전
화성보호소 고문 피해자 “한국 정부는 사과하라”
법무부는 개선하겠다며 전신결박 의자 도입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5주기 추모 기자회견 현장. 지난해 4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새우꺾기(손목·발목을 각각 묶은 다음 등 뒤에서 손발을 연결해 묶는 것)’ 고문피해를 당한 M 씨가 왔다. 그는 고문 시 강제로 착용당한 머리 보호대를 쓰고 있었다. 활동가들과 함께 부드러운 소재로 재현한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선보일 ‘프리덤 앤 저스티스(freedom and justice, 자유와 정의)’ 퍼포먼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
강제구금된 외국인이 화재로 사망한 지 15년이 됐지만 한국 외국인보호소 내 인권침해는 여전하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난민신청자 등을 무기한 구금하고 있다. 고문장비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외국인보호소 고문사건 대응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는 15주기를 하루 앞둔 10일 오후 2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보호소는 필요 없다. 더는 가두지 마라”라고 외치며 법무부를 규탄했다.
- 불 났는데 도주 우려된다고 이중잠금장치 해제 안 해… 갇혀 있다 10명 사망
2007년 2월 11일 새벽 4시,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동 소재 여수외국인보호소에 불이 났다. 보호소 직원들은 우레탄이 타서 유독가스가 나오는데도 외국인들을 대피시키기는커녕 외부 이중잠금장치조차 해제하지 않았다. 외국인들의 도주가 우려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소방대원이 도착한 뒤에야 보호소 상황실에 보관돼 있던 열쇠로 잠금장치를 열 수 있었다. 보호소에 갇혀 있던 외국인 55명 중 17명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를 면한 28명은 인근 보호시설에 구금됐다. 나머지 10명은 죽어서야 보호소를 나올 수 있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17명은 제대로 된 치료와 피해보상을 받지 못했다. 입원실에서도 수갑을 차야 했다. 간단한 진료만 받은 후 청주외국인보호소에 재구금됐다. 강제로 출국 처리된 사람도 있었다.
당시 여수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던 사람들에게는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출국할 수 없었던 것, 출입국 실수로 신원 확인이 늦어져 6개월 넘게 기다린 것 등 다양한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보호’라는 미명 하에 철창 속에 갇혀 있었다.
시민사회단체는 단속과 구금으로만 이뤄지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 정책이 변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법무부는 화재예방과 경비강화만 신경 썼다. 공대위는 “법무부는 외국인 한 명을 방화범으로 만들고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지윤 화성외국인보호소 시민 방문 모임 마중 활동가는 “참사 이후 불타버린 여수외국인보호소 건물은 깨끗하게 새로 지어졌지만 한국 정부의 제도는 여전히 그대로다”고 말했다.
- 15년 뒤 화성외국인보호소, 달라진 것 하나 없다
모로코 국적의 M 씨는 난민 신청을 위해 2017년 10월 한국에 왔다. 체류자격 연장을 놓쳐 지난해 3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보호소는 ‘치통이 심해 병원에 가고 싶다’, ‘물과 약을 달라’는 M 씨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M 씨가 샴푸 2통을 마시고 자해하며 거세게 항의하자 보호소는 박스테이프, 케이블타이 등 위법하고 위험한 도구로 M 씨를 결박했다. 일명 ‘새우꺾기’ 고문은 12차례나 일어났다.
법무부는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M 씨의 ‘난동’을 막고 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새우꺾기 고문이 불가피했다고 밝혀 시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M 씨가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장면을 무단으로 공개해 M 씨를 매우 위험한 사람처럼 표현했다. 보호소가 M 씨의 외래진료와 약 처방 요구를 묵살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M 씨가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나와 기자회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보호일시해제’ 조치됐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법무부에 M 씨에 대한 보호해제를 권고하고 M 씨가 직접 두 차례나 보호해제를 신청했는데도 법무부는 모두 거절하며 요지부동이었다. 시민사회단체와 M 씨의 끈질긴 투쟁, M 씨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의사 소견서가 나오고 나서야 법무부는 보호일시해제를 허가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M 씨는 ‘화성 관타나모(쿠바에 있는 미군기지 포로수용소. 수감자를 고문하는 인권침해가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다.)’, ‘프리덤 앤 저스티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나는 11개월간 화성관타나모에 자의적으로 구금돼 고문당한 피해자다. ‘불’법무부(the Ministry of Injustice. 법무부 영어 명칭은 ‘the Ministry of Justice’다.)와 화성 관타나모 소장에게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내 평생 잊지 못할 멋진 경험이었다”며 법무부와 화성외국인보호소를 규탄했다.
M 씨는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우리가 매일 같이 노예 의식을 치렀던 곳이다. 나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재판도 없이 무려 342일 동안, 목숨이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는 비인간적 고등보안감옥(high security prison)에 갇혀 지냈다. 밧줄과 족쇄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 고문도구다. 이 도구들은 가치관과 도덕성이라곤 없는, 가학성을 띤 보호소 직원들과 함께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규탄했다.
또한 한국 정부를 향해 △모든 정신적·신체적 피해와 자의적 구금에 대해 배상할 것 △보호소 내에서 나와 내 형제들에게 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을 처벌할 것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 △보호소 안에 갇힌 이들을 즉각 무조건적으로 석방할 것 등을 요구하며 “나는 오늘 내 형제들을 대신해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법무부와 화성외국인보호소는 M 씨의 문제제기에 공무집행 방해, 기물파손 혐의를 씌워 고발장을 제출했다. M 씨는 시민사회단체, 공익변호사 등과 함께 난민인정 소송을 포함한 기나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법무부가 사태를 수습하는 태도는 15년 전과 유사하다. 단속과 구금 위주의 정책을 변경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10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는 M 씨 인권침해에 대한 대안으로 전신결박용 의자와 의복 등 교도소 수용자에게 적용되는 장비 13가지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는 수갑, 포승, 머리 보호대 3가지를 사용하고 있다. 추가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시행규칙 개정안 마련 등 입법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해진다.
-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 개정돼야
김세진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외국인보호소의 무기한 구금과 가혹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전국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외국인은 933명이다. 이들은 출입국관리소 63조 1항에 근거해 구금돼 있다. 해당 조항에는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사람을 즉시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할 수 없으면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그를 보호시설에 보호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구금 기한에 관한 내용이 없어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가능하다.
김세진 변호사는 “법에는 구금이 왜 필요한지 심사 절차도 없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재량에 따라 바로 구금이 가능하게 돼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구금 상태는 갇힌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피폐하게 만든다. 정신적 불안 상태에서 살고자 몸부림 치면 난동이란 이름으로 보호소 직원이 가혹행위를 한다”고 비판했다.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은 세 번이나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았다. 첫 번째 소송에서는 인권침해 구제방안이 있다며 각하됐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소송에선 합헌 결정이 났다. 2015년, 유엔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는 구금 기간을 제한해야 하고 구금이 최단 기간,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9대 대선 후보 시절, 구금 기간에 상한을 둔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김세진 변호사는 “대만에선 구금 기한을 15일로 정했다. 15일 내에 송환될 수 없는 사람은 어차피 송환이 불가능한 사람이니 풀어줘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 법도 바뀌어야 한다. 행정 편의를 위해 사람을 가두는 반인권적 행위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한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청와대까지 행진하고 한국 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