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앞, 출입국관리법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 열려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한다는 조항 모호성 지적
헌재 앞선 각하·합헌 결정 후 이번 판결서 위헌 나올까
보호라는 미명하에 보호소에서 자행된 폭력 이제 끝내야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외국인보호소에 2년간 있었습니다.”
13일 오후 1시 헌법재판소 앞, 김연주 난민인권네트워크 변호사가 대독한 사다르 씨의 발언이다. 사다르 씨는 인도에서 뉴질랜드로 가던 중 인천공항에서 체포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2년 가까이 갇혔다. 그곳에서 한 달 넘게 단식투쟁을 하며 무기한 구금에 저항했다.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사람들은 구금이 언제 끝나는지 알지 못하고, 알 권리조차 없다. 감옥이 아니지만 마치 감옥 같은 곳”이라는 게 그의 증언이다.
7만 5,046명. 2018년 이후 외국인보호소에 ‘보호’라는 이름으로 구금된 사람들의 수. 비자 연장 기한이나 난민 신청 기간을 놓친 이들,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귀국을 미룬 이들, 난민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이 현재 외국인보호소에 갇혀있다. 이건 사다르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외국인보호소에 기약 없이 수용된 외국인 모두의 문제다.
- ‘보호’는 ‘통제’의 다른 이름… 무기한 구금 가능케 하는 출입국관리법
외국인보호소 고문사건 대응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와 난민인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은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오후 1시부터 40분가량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외국인을 무기한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의 위헌 결정을 헌법재판소에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집트에서 홀로 입국한 ㄱ 씨는 이 사건의 제청신청인 중 한 명이다. 2018년 미성년자(당시 17세)라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거부당한 그는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단속반에 붙잡혀 강제퇴거·보호명령을 받았다. 두 손에 수갑을 찬 채로 향한 곳은 어딘지도 모를 한 외국인보호소. 그곳에서 스무 명이 넘는 4~50대 어른들과 함께 감옥 같은 한 달을 보냈다. 볕이 잘 들지 않아 추위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방 한 칸, 하루에 30분 간신히 주어지는 산책 시간이 그의 세상의 전부였다.
2018년 11월, “미성년자이자 난민신청예정자”임을 인정받은 ㄱ 씨는 보호일시해제 조치를 받아 보호소를 빠져나왔다. 구금된 지 한 달여 만이다. 그러나 보호일시해제는 구금 상태에서만 벗어나게 할 뿐, 별도의 체류자격을 인정하거나 외국인등록증 발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듬해인 2019년 그는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지인의 집에 얹혀살며 해당 조항의 위헌 판결을 기다린 지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간다.
이번 위헌제청 사건의 심판대상조항인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은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사람을 여권 미소지 또는 교통편 미확보 등의 사유로 즉시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할 수 없으면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그를 보호시설에 보호할 수 있다.”
여기서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라는 구절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호기간의 상한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서다. 이때 ㄱ 씨의 사례처럼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외국인의 경우, 보호소 내에 장기간 구금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시민모임 마중(아래 마중)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를 활용해 전국의 외국인보호소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21년 7월 기준 1개월 이상 장기 수용된 외국인이 전체의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항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보호소 내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서 정하는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입을 모은다. 김지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강제퇴거명령 집행이나 보호의 시작·연장 단계에 별도의 독립적인 기관이나 사법기관이 관여하고 있지 않아, 피해자의 의견진술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인보호소 수용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구금과 다를 바가 없음에도 법관의 영장 발부 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짚었다.
이날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함께한 마중 활동가들은 출입국관리법이 인권침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외국인들을 격주로 만나며 시설의 열악한 상황을 시민사회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심아정 마중 활동가는 “외국인보호소는 찰나의 사생활도 허용하지 않는 감시와 억압의 공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기 구금은 보호소에 입소한 외국인들을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외국인보호소를 방문조사(2017~2018년 기준)한 결과, 장기수용 외국인 대부분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심약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이윤정 마중 활동가는 “법무부에서 말하는 ‘보호’는 개인의 자유를 빼앗아 시설에 가두는 통제와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이제는 추방을 위한 구금이 아니라 안정적인 체류를 위한 보호가 절실하다”며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거듭 촉구했다.
- 무차별적 구금, 상한 없는 구금, 적법절차 없는 구금… “기본권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
같은 날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 위헌제청 사건에 대한 공개 변론이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양측 대리인단은 재판관의 질문에 각자 준비한 답변을 차례로 이어나갔다. 해당 사건에 관해 처음 열리는 공개 변론인 만큼, 이날 30여 명의 방청객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지난 2016년 심판대상조항에 관한 첫 판결에서 헌법재판소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2018년 두 번째 판결에서는 재판관 5인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에 미치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났다. 출입국관리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넓어지며 세 번째 판결을 앞둔 지금, 관련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위헌 결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법무부는 심판대상조항이 “위헌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당 조항이 헌법에서 정하는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에 반하지 않는다며,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법무부를 대리한 정부법무공단 측은 “강제퇴거 대상으로 보호명령을 받은 이들의 경우 통상 열흘 안팎으로 강제퇴거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위헌제청신청 대리인으로 나온 이상현 사단법인 두루(아래 두루) 변호사는 “보호기간 열흘은 ‘평균의 함정’을 보여주는 숫자”라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보호소 내 수용된 외국인의 98%는 시설에서 빠르게 강제퇴거가 이뤄지긴 하나, 정당한 사유로 강제퇴거에 어려움이 있는 나머지 2%를 장기간 구금한다고 해서 이들을 둘러싼 불가피한 조건이 해소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즉, 열흘 내 강제퇴거가 어려운 이들이 이후에도 별다른 대책 없이 장기 구금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위헌제청신청 대리인단은 이번 사건의 쟁점이 “무차별적 구금, 상한 없는 구금, 적법절차 없는 구금”이라고 짚었다. 강제퇴거제도와 외국인보호제도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사건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대리인으로 함께한 최초록 두루 변호사는 “모든 퇴거 대상자를 구금하는 것, 송환이 불가한 외국인과 보호가 필요한 아동·난민까지 예외 없이 구금하는 것, 통제 절차 없이 무기한 구금을 지속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심판대상조항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유엔난민기구 구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제법상 무기한 강제 구금은 어떠한 형태로든 금지된다. 지난 2015년 유엔자유권위원회가 “한국 정부는 구금 기간을 제한해야 하고 구금이 최단기간,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해당 조항을 둘러싼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다. 국회에 매년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주무 부처인 법무부의 반대로 통과하지 못했다.
이상현 변호사는 “(무기한 구금을 금지하는) 국제인권조약이 우리나라 헌법 해석의 절대적 기준이 되진 못하더라도, 헌법의 국제법 존중 원칙으로 위헌 결정을 충분히 도출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심판대상조항의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시민 6,140명의 온라인 서명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추후 기일을 정해 당사자들에게 다시 통지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