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원 인권침해 8건 중 1건만 인정, 7건은 각하‧기각 
주일예배 강요, 욕설… ‘그렇다’는 답변 적어 ‘기각’
위계적 시설 구조 가린 채 인권침해 면죄부 준 인권위  
장애계 “직접 답변 없다고 기각, 무책임한 인권위” 분노 

인권위가 신아원 내 거주인 인권침해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 장애인권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인권위 결정을 규탄하며 행정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장애계는 이번 인권위의 결정은 탈시설 권리를 침해한 신아원의 인권침해에 면죄부를 준 판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아원 현판 앞에 쇠사슬이 드리워졌다. 현판에는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정신지체 재활시설 신아재활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사진 허현덕
신아원 현판 앞에 쇠사슬이 드리워졌다. 현판에는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정신지체 재활시설 신아재활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사진 허현덕

- 신아원 인권침해 8건 중 1건만 인정, 7건은 각하 또는 기각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내 신아재활원(아래 신아원, 서울 송파구 소재)은 117명의 장애인이 거주하는 초대형 장애인거주시설이다. 지난 2020년 12월 신아원이 코호트격리 조치된 동안 75명(거주인 56명, 직원 19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 됐다. 당시 장애여성공감 등 장애인권단체의 요구에 따라 긴급 분산조치가 시행되었지만, 거주인은 곧 시설로 돌아갔다. 

장애여성공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신아원은 거주인에게 분산조치 되는 이유와 예상 기간 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설 내부의 상황이 밖으로 알려질까 봐 거주인들의 통신기기 사용을 제한했다. 

그러던 지난 2021년 2월 22일, 거주인 강 아무개 씨가 신아원을 나와 장애여성공감에 찾아왔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그는 슬리퍼만 신고 있었다. 신아원을 나오기 직전 강 씨는 ‘탈시설하고 싶다’는 의사가 담긴 편지를 다른 거주인의 도움을 받아 썼고, 이를 발견한 신아원 관계자로부터 추궁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애여성공감에 따르면 “강 씨는 서신의 자유 침해는 물론, 약물 복용을 통한 ‘화학적 구속’과 종교의 자유 침해, 신체적 폭력 및 위협 등의 상황이 짐작됐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3월 22일 장애여성공감은 신아원, 서울시, 송파구를 상대로 인권위에 △코로나19 코호트격리 상황에서 외부와의 소통차단 및 정보 폐쇄 △당사자의 탈시설 권리 통제 △문제행동에 대한 통제로서의 약물복용 △종교의 자유 침해 △신체적 폭력 및 위협 등을 비롯한 8개의 인권침해에 대해 진정했다.

진정 후 10개월이 지난 2021년 12월 29일, 인권위는 ‘코로나19 코호트격리 상황에서 외부와의 소통차단 및 정보 폐쇄’에 대한 부분만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했고, 나머지는 기각 또는 각하 결정했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위 결정을 규탄하며 행정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장애계는 이번 인권위의 결정은 탈시설 권리를 침해한 신아원의 인권침해에 면죄부를 준 판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 허현덕
장애여성공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위 결정을 규탄하며 행정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장애계는 이번 인권위의 결정은 탈시설 권리를 침해한 신아원의 인권침해에 면죄부를 준 판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 허현덕

- 위계적 시설 구조 가린 채 인권침해 면죄부 준 인권위  

장애여성공감과 장추련은 기자회견에서 “인권위는 인권침해 사실 확인을 위한 기본적인 조사도 진행하지 않고 거주인의 진술만 단편적으로 확인했다”라고 규탄했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42명의 거주인 면담을 통해 인권침해 여부가 가려졌다. 그러나 개인별생활일지, 간호일지, 투약일지 등을 검토했다는 내용은 없다. 

인권위는 거주인 42명 중 1명을 제외하고는 휴대전화 사용 제한과 검열을 받지 않았다고 답변한 것을 토대로 진정을 기각했다. 또한 서신의 자유 침해에서도 ‘편지를 외부에 보낸 과정에서 사건 경위를 추궁한 사실은 있으나 화를 내는 지점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진은선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소장은 “30년이 넘는 시간을 시설에서 살아온 거주인들의 일상적 인권침해 상태를 문제 삼아야 한다. 조사한 42명 중 11명만 휴대전화가 있었다는 점과 휴대전화가 있더라도 ‘종사자가 핸드폰을 가지고 가서 나중에 주었다’라는 진술을 토대로 실제 통신의 자유가 보장됐는지 확인해야 한다”라며 “서신의 자유 또한 종사자가 ‘화’를 냈는지가 아니라 ‘탈시설 의사’를 외부에 알린 것만으로 호출해 추궁한 사실을 봐야 한다”라고 짚었다.

정신과 약물 과다 복용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의사에게 처방받은 기록이 존재하고 시설 내 필요 시 처방약(PRN: pro re nata)이 별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각하 결정했다. 즉 의사처방에 따라 투약했고, 임의로 약을 복용시켰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진 소장은 “문제는 (시설의 필요에 의해) 처방되지 않은 약을 불필요하게 복용했냐는 것보다 당사자의 중단 요구에도 강요된 약물 복용이 어떤 목적에 따라 처방됐는지다”라며 “강 씨는 신아원에서 처방받은 감정기복, 공격적 행동, 자해행동, 충동조절, 알코올 사용 문제 등과 관련한 정신과약을 10년간 복용했다. 하지만 탈시설 후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도 잘 지내고 있다. 인권위는 약물 투여 목적이 발달장애인의 행동을 문제화하고 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았는지를 살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탈시설 권리침해=인권침해', '인권침해 사안에 경중을 두고 조사하지 말라!', '거주인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인권위의 조사방식을 규탄한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탈시설 권리침해=인권침해', '인권침해 사안에 경중을 두고 조사하지 말라!', '거주인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인권위의 조사방식을 규탄한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 주일예배 강요, 욕설… ‘그렇다’는 답변 적어 기각

이 밖에도 인권위는 퇴소방해 건에 대해서도 퇴소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주일예배 강요에 대해서는 42명 중 2명이 ‘강요하는 종사자가 있다’라고 답했지만 기각했다. 욕설 등 인격권 침해 등에 대해서도 참고인을 통한 유의미한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인권위는 ‘인권침해가 없었다’ ‘강요당했다’고 말한 사람이 적으니 인권침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권위에 인권침해 8건에 대해 진정한 것은 그것만 인권침해인지 아닌지를 가려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로 인해 벌어지는 거주시설 인권침해 전반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의미였다”라며 “인권위가 제대로 거주시설 인권침해 사실을 확인하지 않으면 거주시설 장애인의 인권침해를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인권위는 이번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최혜영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5년간 거주시설 장애인학대로 판정한 것만 181건에 이른다. 1년으로 따지면 36건, 한 달에 3건이 벌어진다는 의미다. 그만큼 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는 일상적이다. 또 폐쇄적인 거주시설 구조상 인권침해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라며 “이처럼 인권은 누구에게나 있으나 일상적으로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권위에 진정하는 것은 사법적 판단을 내려달라는 게 아니라 인권의 잣대로 인권에 대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달라는 것이다”라고 규탄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인권위 관계자와 면담했지만, 조사에 대해 입장 차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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