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원 재입소 장애인, 슬리퍼 차림으로 시설에서 도망 나와
‘탈시설 원한다’ 송파구청에 편지 쓰기도… 신아원에 들켜 휴대폰 압수
서울시, “당사자 탈시설 진정성 확인 후 지원하겠다”
신아원, 시설은 퇴소조치 안 한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
장애계, “서울시는 긴급 퇴소지원하고 인권침해 실태조사해야”
서울시 송파구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내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아래 신아원)에서 지난 2월 22일, 한 중증 지적장애인이 스스로 탈시설했다. 그러나 탈시설을 권장하고 지원할 의무가 있는 서울시가 “당사자의 탈시설 진정성을 확인 후 지원하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신아원 집단감염 후 재입소 과정에서 탈시설 결심
지적장애인 강 아무개 씨(82년생)는 무연고자로,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여러 시설을 전전했다. 신아원에서는 30여 년간(추정) 거주 중이었다.
그는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숨]을 통해 ‘서울시 거주시설 연계사업’으로 지난 5년간 탈시설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강 씨는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과 만날 수 없었다. 복지부와 지자체는 코로나19 ‘예방적 코호트 격리’조치 명목으로 거주인들과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러던 지난 12월 시설종사자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확진이 집단감염으로 확산해 거주인 114명 중 56명이 확진됐다. 이에 장애계는 이들의 긴급탈시설을 요구했고, 서울시는 근거가 없다며 ‘긴급 분산조치’를 내렸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강 씨는 그때 잠시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곧 시설로 재입소했다.
이 과정에서 강 씨는 탈시설 의지가 더욱 확고해진 것으로 보인다. 재입소 후 강 씨는 동료 거주인의 도움을 받아, ‘탈시설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장애여성공감과 송파구청에 보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신아원 종사자가 강 씨의 휴대폰을 압수했고, 그 과정에서 강 씨는 시설을 뛰쳐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22일,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을 찾은 강 씨는 슬리퍼 차림이었고, ‘혼날까 봐 무서워서 나왔다. 더 이상 신아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거주장애인에 대한 ‘화학적 구속’ 의심 정황 나와
현재 강 씨는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와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 임시거주지에 머물고 있다. 지난 2일에는 강 씨가 직접 쓴 퇴소신청서와 장애여성공감의 퇴소진행 협조 공문을 신아원에 보냈지만, 신아원은 퇴소절차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강 씨는 퇴소신청서에 (시설이 압수한) 통장, 도장, 휴대폰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신아원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강 씨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에 따르면, 신아원 종사자들이 매일 밤 강 씨를 찾아와 강 씨가 복용하던 약을 주며 재입소를 회유하고 있다.
강 씨가 복용하던 약물이 ‘화학적 구속’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강 씨는 신아원에서 원장이 보는 앞에서 정신과 약을 먹어야 했다고 진술했다. 그가 복용하던 약은 알코올 의존성 환자에게 사용되는 약물이다. 강 씨가 성인이 되고 난 뒤, 음주와 관련된 이유로 복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아원에서는 음주를 금하고 있어 약물복용을 지속한 이유에 의문이 남는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팀장은 “다수의 시설에서 과다한 약물로 거주인을 관리하는 ‘화학적 구금’으로 시설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신아원에서는 음주를 금지하고 있는데, 강 씨는 20년 넘게 약물을 복용했다. 어떠한 약물인지 부작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도 전달되지 않았다. 거주인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지 의심된다.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강 씨가 자립지원금 및 활동지원 등 공식적인 탈시설·자립지원을 받으려면 시설이 퇴소조치를 하고 송파구청에 신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신아원은 강 씨의 퇴소신청을 처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마이너가 신아원에 강 씨의 퇴소여부를 물었지만, 날카롭게 대응하며 답변 자체를 거부했다.
강 씨를 지원하는 한 활동가는 “신아원 종사자들이 매일 강 씨를 찾아와 시설에서 강 씨가 돌보던 동물 사진을 보여주며 ‘책임질 생명이 많다’라고 재입소를 회유 중이다”라며 “신아원은 강 씨가 단순 가출한 것으로 보고, 탈시설 의사를 믿지 않고 있다. 분명 휴대폰을 빼앗겼다는데, 신아원에서는 강 씨가 두고 나왔다고 주장한다”라고 밝혔다.
서울시, 탈시설 진정성 확인 후 지원하겠다? “긴급 지원해야” 규탄
강 씨가 신아원을 스스로 나와 퇴소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음에도, 서울시는 ‘강 씨의 탈시설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 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신훈 서울시 장애인탈시설팀 팀장은 3일,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신아원은 코로나19 대규모 확진자가 나왔고, 대형거주시설로 밀집도가 높아 탈시설이 우선적으로 필요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탈시설 지원을 진행 중이다”라면서도 강 씨의 지원을 유보했다.
안 팀장은 “신아원에서는 ‘강 씨가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서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인권침해가 있을 수 있겠냐’고 하더라. 타의에 의해서 나갔다는 입장이다”라며 “강 씨의 탈시설 의도에 진정성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거주시설 자립지원실무지원단을 통해 당사자와 시설장 면담을 한 뒤, 탈시설 욕구를 확인해 자치구에 행정처리를 이행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장애계는 서울시청 앞에 모여 서울시의 안일한 처사를 규탄했다. 4일 오후 2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는 서울시청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복지실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선포했다.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서울시는 제2차 탈시설 계획에 따라 2022년까지 800명을 탈시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탈시설하고 싶어서 신아원에서 뛰쳐나온 사람조차 탈시설지원이 미뤄지는데 어떻게 내년까지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겠는가”라며 분노했다.
이어 “강 씨가 탈시설을 결심하게 된 것은 장애인단체가 신아원 앞에서 농성투쟁을 할 때 흰머리 할아버지(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발언을 듣고, ‘나도 탈시설을 할 수 있겠구나 밖에 나가더라도 나를 도와줄 수 있겠구나’라며 탈시설을 결심했다고 했다”라며 “서울시는 당사자의 탈시설 의지를 꺾지 말라”고 비판했다.
서울장차연은 서울시에 △강 씨의 개별의사를 존중한 퇴소절차·개인별지원계획 이행 △신아원 내 인권침해 진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민관합동 실태조사 진행 △신아원 긴급탈시설 지원체계 구성해, 30인 이하로 규모 축소 △서울시 탈시설 민관협의체 구성 신속 진행 등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오후 5시, 장애계는 서울시 복지국장과 면담을 했다. 면담에서 서울시는 현재 신아원 내 인권침해 상황을 서울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했고, 곧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는 권익옹호기관의 판단에 맡긴 채, 절차에 따라 탈시설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이에 장애계는 복지실장과의 면담과 탈시설 지원을 촉구하며 서울시청 후문 앞에서 농성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날 서울시청 지하주차장 출구 앞으로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동하자 경찰이 방패로 막아섰고, 활동가들이 항의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후 서울시청 후문 앞에서는 복지실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활동가를 경찰이 막아서면서 다시 한번 충돌이 발생했다.
현재(오후 7시 기준) 서울시청 후문은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어, 장애인 활동가들이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활동가들은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라며 “SNS에 이 상황을 많이 알려달라”고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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