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시설권력 편승하며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
탈시설 용어 삭제하고 거주시설 예산 증액

고나영 활동가가 지난달 15일 열린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고나영 활동가가 지난달 15일 열린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투쟁

2009년, 일명 ‘마로니에 8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의 보장을 촉구하며 진행한 노숙농성 투쟁으로부터 탈시설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2013년 서울시는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목적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IL센터)와 ‘거주시설 연계 자립생활 지원사업(아래 거주시설연계사업)’을 시작했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아래 숨센터)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송파구에 있는 신아재활원(아래 신아원)과 거주시설연계사업으로 만나 탈시설을 지원했다. 6년의 시간 동안 활동 일정을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숨센터 활동에 참여 의사를 밝히는 분에게 ‘숨센터 가려면 병가를 내야 하지만 그만큼 월급은 깎인다’, ‘결근이 잦으면 외부 취업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라며 시설의 일정을 수행할 것을 최우선으로 요구하거나, IL센터와의 활동은 탈시설 ‘중복지원’이라 말하며 필요성을 반문했다. 이미 정해진 선택을 강요하면서, 거주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여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고 했다. 시설 종사자와 거주인 간의 위계적인 구조 속에서 당사자가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다른 사람의 요청(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번복 없이 결정하기 어려운 맥락은 존중받지 못했다.

거주시설연계사업을 통해 만나온 이들 대부분은 거의 평생을 시설에서 살아오면서 ‘내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지’ 질문할 수 없었다. 탈시설을 하고 싶더라도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한글을 알아야 하고, 건강이 좋아져야만’ 가능한 기약 없는 일로 유예되었다. 숨센터가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자 서울시는 거주시설연계사업 목적에 따른 분명한 입장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함에도 ‘민원’ 정도로 취급하며, IL센터와 거주시설의 개별적인 관계의 문제로 치부했다. 탈시설 지원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면서 탈시설 권리를 아주 손쉽게 삭제했던 것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이 자신들의 운영 원칙을 지킨다며 현장에서 보이는 다양한 발언은 차별이자 인권침해에 가깝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일정을 알고 조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 시설의 허락을 받아야 외출이 가능한 것,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용돈을 주지 않는 등의 ‘처벌’이 ‘경미한’ 인권침해로 받아들여지거나 인권침해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거주시설은 스스로 “인권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인권의 가치와 실천 방법은 운동의 언어와 매우 상이하다. 서울시는 시설 권력에 편승하는 탈시설 정책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2021년 1월 15일, 활동가들은 신아원 정문 앞에서 사다리와 쇠사슬로 자신들을 묶고 거주인의 긴급 탈시설 이행을 외쳤다. 사진 비마이너DB
2021년 1월 15일, 활동가들은 신아원 정문 앞에서 사다리와 쇠사슬로 자신들을 묶고 거주인의 긴급 탈시설 이행을 외쳤다. 사진 비마이너DB

- 자발적 퇴소가 불가능한 시설의 구조가 차별이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2020년에는 신아원 거주인들과의 활동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고, 외부와의 관계를 전부 막는 등 시설 안에서 얼마나 손쉽게 통제가 이뤄지는지 수많은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거주시설의 집단생활 구조, 방역과 치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안 된 채 분리하는 방식 등을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예방적 코호트 격리가 진행되었다. ‘국가가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장애인, 취약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아님을 확인했으며, 국가와 공모하여 감금을 정당화하는 시설 권력을 확인했다.

예방적 코호트 격리 발생 후 긴급 탈시설 투쟁이 진행되었고 숨센터는 더 이상 시설에 살 수 없다며 신아원에서 탈출한 당사자를 지원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거주시설은 당사자가 말한 탈시설 의사에 진정성이 있는지 계속 의문을 제기했다. 현 사회복지 체계 안에서는 당사자가 다른 시설로 전원 조치 되는 것 외에 사실상 자발적 퇴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탈시설은 지역사회로 이동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자립’하여 함께 살아가는 일은 단순히 몸이 다른 공간, 내 방 한 칸이 있는 공간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가능해지는 게 아니다. 긴급 탈시설 투쟁 이후 신아원 거주인 중 일부는 지원주택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해당 지원주택의 운영자는 신아원이었고, 여전히 신아원 내 보호작업장으로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온 이에게 안부를 묻고 같이 식사를 제안하는 만남도 ‘허락’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설에 있을 때보다 더 만나기 어렵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거나, 누군가 옆에 있으면 조심스러워하며 통화를 서둘러 마치려고 한다. 시설의 영향력이 계속 미치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여전히 나갈 수 없는데, 이런 일상을 삶이 변화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난달 15일 열린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활동가가 ‘거주시설연계사업 살려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달 15일 열린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활동가가 ‘거주시설연계사업 살려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예산의 논리로 탈시설 권리를 폐기하지 말라

거주시설연계사업은 차별과 권력이 재생산되는 시설의 구조를 묵인해 온 역사에 IL센터가 대항하는 운동이자, 시설에 들어가서 당사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이자, 탈시설 지원을 통해 동료를 조직하는 활동이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시설장애인이 탈시설하여 자립정착할 때 소요되는 비용은 1년 차의 경우 장애인 1인당 연 1억 4100만 원인 반면 시설거주 장애인에게 전문적인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비용은 연 6100만 원 수준으로, 탈시설한 장애인에게 훨씬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실정”이라며 시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1) 2024년 서울시 예산에서 거주시설연계사업은 사라졌다.

2023년도에 IL센터 43개소에서 거주시설연계사업으로 운용하던 19억 원가량의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탈시설 용어를 삭제한 채 거주시설의 ‘자립생활 강화’ 사업비로 43억 원을 신규 반영했다. 탈시설 권리예산은 전액 삭감하고 시설 예산을 늘린 것이다. 거주시설연계사업은 시설 거주인이 그곳을 나와 다른 삶에 도전하고 관계와 자원 없이 고립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기반이다. 시설 문을 나갈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는 것, 수치화되기 어려운 탈시설 지원의 현장을 ‘실적’이라는 말로 납작하게 평가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인권을 지키기 위한 IL센터들의 저항의 목소리다. 서울시의 기조 없는 탈시설 정책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탈시설 권리를 후퇴시키다 못해 폐기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지원하는 활동을 예산의 논리로 중단시키는 의도는 너무나 명백하다. 활동가들은 거주시설연계사업으로 만난 이들과 다시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을 거란 우려와 걱정이 크다. 서울시는 IL센터와 거주인들의 관계를 단절시킬 권리가 없다. IL센터는 동료로서 함께 사는 삶, 돌보는 삶을 함께 고민해 온 시간을 믿으면서 끝까지 싸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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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시 복지정책실, 「서울시, 지역사회 거주 장애인과 시설거주 장애인 모두 행복한 장애인 정책 흔들림 없이 추진」(보도참고자료), 2023. 7. 20, 4쪽.

필자 소개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적 관점의 IL운동을 실천하기 위한 현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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