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입법·정책 수립 목표
탈시설당사자로서 지역사회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제안 계획
“하늘 아래 좋은 시설은 없다. 모든 장애인거주시설 폐쇄하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탈시설당사자들을 중심으로 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출범했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는 20일 오후 2시, 이룸센터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양대법안 농성장 앞에서 출범식을 열고 활동을 알렸다.
탈시설연대는 시설에 있는 장애인이 모두 지역사회에 함께 살 수 있도록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입법과 정책 수립을 목표로 한다. 탈시설당사자로서 지역사회에 필요한 정책을 국회,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에 제안하는 활동도 할 예정이다.
김진수 탈시설연대 공동준비위원장(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지난 2008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탈시설했다. ‘마로니에 8인’의 투쟁으로 잘 알려진 이 투쟁으로,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탈시설 정책을 시작했다. 탈시설자립정착금, 활동지원시간 추가지원, 주거지원 등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다. 이는 현재 지자체별로 시행되고 있는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의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차원의 탈시설 정책은 없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제공한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현황 대비 탈시설 장애인 현황(2014~2020년 6월)’을 살펴보면 지원주택 입주(서울시만 해당)는 32명, 전환주거 입주 709명, 자가주택 입주 1998명으로 탈시설 장애인은 2969명이다. 이는 전체 시설 거주인의 13.2%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특히 세종시(7명), 충남(16명), 인천(47명)은 탈시설한 장애인이 매우 적다.
탈시설연대는 “탈시설 권리는 나 혼자 우연히 얻어낸 행운이 아니라, 모두에게 마땅한 권리가 되어야 한다”라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 2014년 한국에 장애인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충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문재인 정부는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러나 장애인탈시설이 목표가 아닌 거주시설 변환이 궁극적인 목표다. 탈시설로드맵에 따르면 올해부터 시범사업 후, 2025년부터 정책을 추진하지만 정책이 완료되는 2041년에도 최중증장애인은 거주시설에서 나올 수 없다. 정부 예산도 거주시설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탈시설 예산은 24억 원, 거주시설 예산은 6224억 원이다.
김진수 위원장은 “정부가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소규모 시설과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간판만 바꾸려 하고, 시설을 시설이라고 부르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라며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탈시설연대의 활동에 힘을 모아달라”라고 강조했다.
박경인 탈시설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시설에서 살았고, 23세 때 탈시설했다. 탈시설 전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탈시설 후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와 살아보니 좋더라고요. 물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저는 탈시설할 때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지원해 주는 이들이 없어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중략)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지원으로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지금은 활동지원도, 근로지원도 받고 일자리도 있어서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친구도 생기고, 내가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이 사람들과 만나면서 세상을 하나하나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생’을 배우는 것 같아요. 시설 안에 있으면 전혀 배울 수 없는 거를 배우는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 더 많은 발달장애인이 탈시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앞으로 곧 여당이 될 정당의 당대표가 탈시설을 반대하는 부모들과 함께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고 나섰다는 말을 듣고 분노가 차올랐다”라며 “그들은 ‘어떤 장애인에게는 시설이 좋으니 시설이 있어야 한다. 말과 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시설이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시설이 아닌 다른 선택권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탈시설장애인의 목소리를 알려, 제대로 탈시설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수나 대구탈시설장애인자조모임 IL클럽 리더(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구지부 준비모임)는 정부 차원의 탈시설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년 동안 지역사회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사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은 탈시설 후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러니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반드시 통과되어, 탈시설 예산이 충분히 책정되어야 합니다. 탈시설당사자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 주세요.”
한편, 탈시설연대는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회원을 모집한다. 탈시설당사자(정회원)와 탈시설에 연대하는 사람 누구나(준회원) 탈시설연대 회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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