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협 19주년 기념 탈시설·자립왕 시상식 열려
탈시설장애인 당사자 13명과 대구 자조모임 ‘아이엘클럽’ 선정
수상자들 “모두 탈시설하도록 열심히 투쟁하겠다”

박창재 씨는 2003년부터 15년간 장애인거주시설에 살았다. 그가 살던 시설이 횡령 등의 문제로 폐쇄되면서 탈시설하게 됐다. 현재는 자립생활 5년 차다. 지난 8월에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삭발투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용호 씨는 제주도의 한 시설에 갇혀 있었다. 탈시설운동을 하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들이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 해당 시설에 방문했다. 용호 씨는 조사 중에 활동가들에게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가들의 지원으로 탈시설했다.

이선화 씨는 재가장애인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삶을 상상만 하다가 작년에 자립생활 단기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선화 씨는 올해 완전히 자립해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는 중이다.

이들은 올해 탈시설·자립왕 수상자로 선정된 사람들이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는 19일 창립 19주년을 맞아 오후 1시,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상패의 모습. 수상자 최경윤 함세상센터 활동가의 사진이 있다. 사진 오른쪽에는 ‘창립 19주년 기념 자립왕 최경윤 당당하게 자립의 길을 걸어온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 큰 감동과 힘입니다.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든든한 동지로서 오래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2022년 10월 19일 한자협’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상패의 모습. 수상자 최경윤 함세상센터 활동가의 사진이 있다. 사진 오른쪽에는 ‘창립 19주년 기념 자립왕 최경윤 당당하게 자립의 길을 걸어온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 큰 감동과 힘입니다.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든든한 동지로서 오래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2022년 10월 19일 한자협’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자립생활실천운동의 증인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한자협 산하 11개 광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센터)가 추천한 탈시설장애인 13명이 탈시설·자립왕상을 받았다. 수상자는 △김석중 강릉센터 △박창재 포천나눔의집센터 △이용호 김포센터 △하여진 밀양센터 △윤대선 안동센터 △최승규 오방센터 △피용헌 성북센터 △이봄 민들레센터 △김보영 인천센터 △천혜진 신안군센터 △백한기 중증장애인지역생활센터 △이선화 옥천센터 △최경윤 함세상센터 활동가다.

탈시설특별상은 대구사람센터의 ‘자조모임 IL(아이엘. ‘Independent Living’의 약어. ‘독립적인 삶’이라는 뜻)클럽(아래 아이엘클럽)’이 받았다.

수상자는 모두 각 지역 센터 소속 활동가들이기도 하다. 센터는 장애인 권익옹호, 시설에 사는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지원, 동료상담, 활동지원서비스와 보조기기, 자립생활주택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생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한다. 한자협은 전국 95개 센터의 협의체로, 매년 창립기념일에 탈시설장애인에 대한 시상식을 하고 있다.

한자협은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탈시설·자립생활 이념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당사자들이다. 부족한 사회적 지원에도 자립을 계획해 마침내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자립생활 중이다. 자신의 자립에 그치지 않고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등 자립생활 이념을 확장하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라며 “이들은 자립생활실천운동의 증인으로서 장애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기에 이를 기념하고자 한다”고 시상식의 배경을 밝혔다.

김보영 인천센터 활동가가 꽃다발, 상금, 상패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보영 인천센터 활동가가 꽃다발, 상금, 상패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 탈시설장애인들 “자립하니 너무 좋아… 투쟁으로 탈시설 사회 만들 것”

수상자들은 수상소감에서 공통으로 ‘더 많은 장애인이 탈시설하도록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박창재 포천나눔의집센터 활동가는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신 이영봉 포천나눔의집센터 소장님께 감사드린다. 뭐 하나 잘난 것 없는 저도 탈시설하고 자립했다. 과거의 저처럼 시설에 처박혀 사는 장애인이 많다. 그분들이 탈시설했을 때 사람답게 사는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여진 밀양센터 활동가 또한 “너무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자립하고 싶은 장애인에게 자립하면 어떤 게 좋은지 많이 알리고 싶다. 이를 위해 센터에서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겠다”고 말했다.

자립한 지 4년이 된 이봄 민들레센터 활동가도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신 민들레센터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나도 다른 분의 자립을 돕고 싶다. 앞으로 장애인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분의 탈시설 지원에 열심히 참여하겠다”고 했다.

윤대선 안동센터 활동가는 자립을 고민하는 동료 장애인에게 “함께 도전하자”고 했다. 윤 활동가는 “시설에 격리돼 통제받는 삶이 잘못된 지 모른 채 살았다. 이젠 조금 느리더라도 스스로 결정하며 매일 열심히 산다”며 “자립생활은 가끔 흐트러지고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도전한다면 주체적 자립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탈시설·자립생활이 너무 좋다고 감탄한 수상자도 많았다. 최경윤 함세상센터 활동가는 “저는 자립해서 좋아요”라는 말을 연달아 세 번 반복했다. 천혜진 신안군센터 활동가는 “자유롭게 살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꽃다발과 상패, 상금을 들고 웃는 피용헌 성북센터 활동가. 사진 하민지
꽃다발과 상패, 상금을 들고 웃는 피용헌 성북센터 활동가. 사진 하민지

피용헌 성북센터 활동가는 탈시설 후 악기 연주, 작사·작곡, 랩 등을 선보이는 음악가가 됐다. 비마이너가 주최한 ‘영화 〈버스를 타자〉 감상 백일장’에서 ‘저상버스 타고 고향 가자’라는 노래로 ‘비마이너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도 많은 투쟁현장에서 랩과 노래로 연대공연을 하고 있다. 피 활동가는 “더 신명 나고 괴상망측하게 살아보겠다. 신나는 작품(음악) 많이 만들어서 들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저상버스 타고 고향 가자’ 감상하러 가기)

아이엘클럽 활동가들이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라왔다. 이수나 리더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아이엘클럽 활동가들이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라왔다. 이수나 리더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탈시설특별상을 받은 대구사람센터의 아이엘클럽은 대구시에서 최초로 결성된 탈시설장애인 당사자 모임이다. 2015년부터 모이기 시작한 아이엘클럽 구성원은 현재 14명이다. 이날 시상식에는 7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난 4월 출범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의 대구지부를 준비하고 있다.

이수나 아이엘클럽 리더는 “자립생활은 장애인당사자에게 정말 중요하다. 모든 장애인이 각 지역사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이끌고, 지원하고, 함께해야 한다. 그 역할을 잘 해내겠다”고 말했다.

김진욱 아이엘클럽 활동가는 “뜻깊은 상을 받았다. 한자협 관계자분들과 노금호 대구사람센터 소장님께 감사드린다. 모두가 열심히 활동한 것도 있겠지만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의 자립생활을 함께 지원하고, 당사자가 이뤄냈기 때문에 받은 상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은 장애여성공감 무지개합창단의 축하공연으로 마무리됐다. 합창단원 모두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이다. 그들이 무대에 올라 청중을 향해 박수를 유도하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대 앞에 몇 사람들이 뛰어나와 신나게 춤췄다. 그들 또한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이다. 무대 위에 선 사람들과 아래에 선 사람들 모두, 시설 안에선 누릴 수 없는 자유와 아름다움을 한껏 누렸다.

장애여성공감 무지개합창단이 축하공연 중이다. 한 사람이 무대 앞에서 활짝 웃으며 춤추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여성공감 무지개합창단이 축하공연 중이다. 한 사람이 무대 앞에서 활짝 웃으며 춤추고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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