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예산에 무관심한 정치권, 빈 깡통과 같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위해 지하철 오체투지 진행 
기재부의 책임 있는 약속 다시 한번 강조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체투지를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는 깡통을 안고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체투지를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는 깡통을 안고 있다. 사진 허현덕

“21년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 모두 헌법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장애인은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시민 여러분, 저희는 지하철을 기어서라도 장애인의 권리를 지켜달라고 말씀드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기어서 지하철 타는 시간 잠깐 지체되더라도, 장애인이 길 수 있는 공간과 잠깐의 시간은 허락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 청문회 다음날인 3일, 장애인들이 또다시 지하철을 기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경복궁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 장관 후보자는 장애인권리예산 중 약속어음 한 개 발행했을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3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경복궁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 장관 후보자는 장애인권리예산 중 약속어음 한 개 발행했을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회견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 ‘장애인 교육권 보장하라’ ‘장애인 노동권 보장하라’ 등의 문구가 쓰여 있는 빈 깡통이 놓여있다. 사진 허현덕
3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경복궁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 장관 후보자는 장애인권리예산 중 약속어음 한 개 발행했을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회견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 ‘장애인 교육권 보장하라’ ‘장애인 노동권 보장하라’ 등의 문구가 쓰여 있는 빈 깡통이 놓여있다. 사진 허현덕

지난 2일 열린 청문회에서 추 후보자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광역이동지원센터 국비 지원에 대한 질문에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한 장애인평생교육 국비 지원에 대한 질문에는 “지방이양사업으로 편입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추 장관의 청문회에서 이 두 가지 질문 외에 장애인권리예산에 관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전장연은 “국회 인사청문회의 특성과 짧은 질의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정의당과 기본소득당을 제외한 거대 양당 소속 의원 누구도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해 질의하지 않았다”며 정치권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으로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활동지원 하루 최대 24시간 예산 국가 보장 △탈시설예산 807억 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청문회에서 네 가지의 권리예산 중 답을 받은 것은 고작 하나(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기자회견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 ‘장애인 교육권 보장하라’ ‘장애인 노동권 보장하라’ 등의 문구가 쓰여 있는 빈 깡통이 놓이기도 했다. 

기자회견 직후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은 휠체어에서 내려 맨몸으로 지하철 바닥을 기었다. 그들의 목에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글이 쓰인 깡통이 걸려 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 직후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은 휠체어에서 내려 맨몸으로 지하철 바닥을 기었다. 그들의 목에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글이 쓰인 깡통이 걸려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 허현덕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지하철 역사에서 기어가고 있다. 뒤로는 멈춘 지하철에서 시민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다. 사진 허현덕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지하철 역사에서 기어가고 있다. 뒤로 멈춘 지하철 안에서 시민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 직후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휠체어에서 내려 맨몸으로 지하철 바닥을 기었다. 허종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학생도 오체투지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지하철보안관의 진압으로 대오가 끊기는 바람에 함께할 수 없었다. 장애인활동가들은 지하철 바닥에 몸을 밀착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시민들에게 알렸다. 

“출근길 시민 여러분, 장애인은 천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차별공화국입니다.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권리로 보장해주십시오.” (박경석 전장연 대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체투지하고 있다. 박 대표  등 뒤에는 '예산 없이 권리 없다, 탈시설 권리보장 예산 6224억으로 보장하라!!'라는 손피켓이 놓여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체투지하고 있다. 박 대표  등 뒤에는 '예산 없이 권리 없다, 탈시설 권리보장 예산 6224억으로 보장하라!!'라는 손피켓이 놓여 있다. 사진 허현덕 

장애인활동가들은 3호선 경복궁역에서부터 동대입구역까지, 동대입구역에서 경복궁역까지 이동하며 계속 외쳤다. 동대입구역을 왕복한 것은 지난 4월 16일 지체장애인이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다리가 빠져 부상을 당했던 것에 대한 항의의 의미다. 

전장연은 추 장관 후보자의 소극적인 답변을 비판하면서도 지난해 12월 3일부터 28회 진행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는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기재부가 5월 중순경 확정할 2023년도 ‘실링 예산’(정부 부처별 다음 연도 예산 요구 한도액)을 기다리며 그때까지 지하철에서 오체투지로 시민들에게 장애인권리예산의 필요성을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기재부에 요구하는 건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권리예산을 촉구하는 삭발결의식도 25차례나 열렸다. 오늘(3일)은 정명호 고양아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허종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학생이 삭발했다. 

이와 함께 전장연은 △기획재정부 장관 5월 중 면담 약속 △장애인권리 4대 법안 통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권리 4대 법안은 장애인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법안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장애인평생교육법의 제정과 장애인특수교육법 개정이다.  

또한 전장연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의 갈라치기 정치와 혐오선동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사과를 재차 요구했다. 이 대표의 발언 이후, 현장에서 장애인 시위에 대한 비난과 혐오의 강도는 높아지고, 장애인활동가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도 일어나고 있다. 

한편, 오늘도 경찰과 지하철보안관은 느린 몸짓으로 기어가는 장애인활동가들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형숙 회장의 휠체어를 밀고 있던 비장애인 활동가를 밀치며 지하철에 빨리 타라고 재촉했고 그 과정에서 지하철보안관이 해당 활동가의 목을 짓누르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민푸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장애인이 기어서 이동하는 것 자체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보안관은 폭력으로 진압했고, 진압에 대응했던 활동가에게 오히려 폭력을 행사했다고 뒤집어 씌었다”라고 비판했다.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힘겹게 지하철에서 내리고 있다. 앞에는 '국회는 응답하라'라는 글이 쓰인 깡통이 놓여 있다. 사진 허현덕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힘겹게 지하철에서 내리고 있다. 앞에는 '국회는 응답하라'라는 글이 쓰인 깡통이 놓여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지하철 바닥에 '기획재정부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책임'이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그 옆에는 '장애인교육권 보장하라'라고 쓰인 깡통이 놓여 있다. 뒤로는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보인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지하철 바닥에 '기획재정부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책임'이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그 옆에는 '장애인교육권 보장하라'라고 쓰인 깡통이 놓여 있다. 뒤로는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보인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체투지 후 탈진한 모습. 주위에는 취재진들의 다리가 보인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체투지 후 탈진한 모습. 주위에는 취재진들의 다리가 보인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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