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차별과 불평등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소수자들
차별 사례 심각한데 주요 후보 ‘공공의료 공약’은 부실
“공공병원 확대” 공약은 환영
의료차별 해소 방안 공약은 無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현수막에는 ‘차별 없는 의료 실현을 위한 6·1 지방선거 대응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현수막에는 ‘차별 없는 의료 실현을 위한 6·1 지방선거 대응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6개 시민사회단체가 ‘차별 없는 의료 실현을 위한 6·1 지방선거 대응 연대’를 구성했다.

이들은 25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후보들을 향해 “의료 공공성을 확충하고 의료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김보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SHARE 사무국장이 ‘건강보험 적용으로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보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SHARE 사무국장이 ‘건강보험 적용으로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의료차별로 건강권 침해당해온 소수자들

여성·성소수자, 이주민·난민, 장애인, 홈리스, HIV감염인 등 소수자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차별 때문에 의료체계에서 배제돼 왔다.

지난해,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임신중지 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김보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SHARE 사무국장은 “현재 병원마다 요구하는 임신중지 비용은 제각각이다. 비용을 마련하느라 임신중지 시기가 늦어질 경우, 그로 인한 고통을 임신중지 당사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 국가는 ‘인구위기’라는 말로 출산을 종용한다”며, 관련 보건의료 체계 구축과 실태조사를 통해 의료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HIV감염인 또한 심각한 의료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9월, 한 HIV감염인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다. 그는 HIV 감염 상태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수술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봤지만 알아본 곳은 모두 수술을 거절했다. 12시간이 지나 어렵게 찾은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응급처치 시간을 놓쳐 결국 엄지손가락을 쓸 수 없게 됐다.

상훈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는 “HIV감염인은 격리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HIV감염인 수술 시 반드시 일회용 의료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병원은 HIV감염인 진료를 기피하기 위해 갖은 핑계를 댄다”며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HIV감염인의 건강 불평등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공공의료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훈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가 ‘되돌림은 없다 진료시설 확대 유지하여 홈리스 건강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상훈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가 ‘되돌림은 없다 진료시설 확대 유지하여 홈리스 건강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전 국민이 겪은 코로나19 재난시기에도 소수자를 향한 의료차별은 여전했다. ‘홈리스는 정해준 병원에만 가라’는 취지의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로 인해 홈리스는 갈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 공공병원이 홈리스가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병원인데, 공공병원마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홈리스는 병원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했다.

주장욱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은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는 행정편의를 위해 마련된 제도일 뿐, 홈리스의 건강권을 침해한 제도다.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또한 퇴원 후 건강을 회복하는 시기에 적절한 주거공간이 제공돼야 한다. 거리, 쪽방,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서는 건강이 회복되지 않는다”며 의료와 주거를 연계한 공공의료 서비스 제공을 요구했다.

장애인의 경우 거주시설에 살면 코로나19에 ‘집단감염’ 되고, 지역사회에 살면 집안에 격리돼 방치돼야 한다. 정부는 장애인거주시설 집단감염 대책으로 시설 문을 닫는 완전봉쇄(코호트격리) 조치만 취했다. 집안에 격리된 장애인을 위한 지원대책은 전무하다. 이 때문에 지난 3월에는 중증장애여성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는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알아봤지만 ‘병상이 꽉 찼다’, ‘우리 병원에는 휠체어 접근이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고 전해진다. 증세가 악화해 응급실에 실려 간 그는 결국 사망했다.

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는 “코로나19 장애인 치명률은 비장애인의 20배다. 그런데 정부는 ‘장애인이 원래 취약한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고 한다. 이 치명률은 공공의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사회지원체계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라며 “장애인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중증장애인에 대한 재난대책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영관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조영관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주민 차별도 심각하다. 조영관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는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민은 200만 명 정도다.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마스크를 구입하는 일부터 재난지원금 지급까지, 코로나19 전 과정에서 배제당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선제적 검사를 받으라는 일도 있었다”며 “그러나 바이러스는 국적과 체류자격을 가리지 않는다. 공공의료를 포함한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공공의료는 지금까지 민간의료의 빈 부분을 메우기만 했다. 이제는 공공의료가 지역보건과 필수의료를 선도하고 민간의료를 이끄는 공적기능을 담당해야 할 때다. 서울시장 후보들은 이런 내용이 담긴 공공의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가 ‘공공의료 확충하고 의료차별 해소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가 ‘공공의료 확충하고 의료차별 해소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주요 후보 공약 들여다보니 “공공병원 수는 늘리겠다”… 의료차별 해결 방안 부족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의 바람과 달리 주요 후보들이 내놓은 공공의료 공약은 처참한 수준이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자신의 공공의료 공약을 이미 정책화해 지난 6일, 서울시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2026년, 600병상 규모의 서울형 공공병원(가칭) 신설 △주요 시립병원의 특정 의료서비스 기능 특화 △민간병원이 공공의료서비스 제공 시 인센티브 지원 등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공공병원을 짓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지만 나머지 정책에 대해선 반대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공공병원을 특정 의료서비스에 특화된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이 사람들은 이 병원만 이용하라’는 차별적 방식이다. 민간병원에 인센티브를 줄 이유 또한 없다. 사회보장체계에 따라 의료기관이 공적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 또한 대동소이하다. △재난의료대응위원회 신설 △동남권서북권 시립종합병원 신설 △공공병원 인력기준 조례 신설 △치매전담 보호센터 확충 등의 공약을 발표했지만 오 후보와 마찬가지로 공공병원 수를 늘리겠다는 것일 뿐, 공공병원에서조차 배제당하는 소수자의 의료차별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건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권수정 정의당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연대발언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권수정 정의당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연대발언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권수정 정의당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연대발언을 하며 공공의료 공약을 직접 설명했다. 권 후보는 △서울시 공공의료체계 강화 △의료노동자 처우 개선 △공공의료에 예산 투자해 이주민·홈리스·HIV감염인 의료사각지대 해소 △아동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 도입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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