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홈리스의 보편적 의료서비스 접근권 침해했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지난달 19일,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고 10일 밝혔다. 홈리스가 노숙인 시설에 3개월 이상 머물러야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도 개선해 홈리스 의료급여 적용을 확대할 것 또한 권고했다.

2020년 12월 8일 열린 기자회견 현장.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이 '의료 공백 초래하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 제도 폐지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2020년 12월 8일 열린 기자회견 현장.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이 '의료 공백 초래하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 제도 폐지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정부는 의료급여법과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노숙인복지법)에 따라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라 홈리스는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병원만 이용할 수 있고, 그래야만 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해 ‘홈리스는 정해준 병원에만 가라’는 취지다.

이는 홈리스를 차별하는 대표적 제도로, 시민사회단체에서 지속해서 문제제기해 왔다.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병원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진료과목이 한정돼 있어 홈리스가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노숙인 진료시설인 대부분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홈리스가 병원에서 강제로 퇴원당하거나 진료를 거부당하는 등의 인권침해가 일어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의료급여 수급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진료시설 지정제도가 홈리스 의료급여 대상자에게만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게 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인권위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가 코로나19 재난상황에서 제도적 순기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한된 의료기관만을 이용해야 하는 차별적 조건으로 인해 노숙인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결국 노숙인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가 코로나19 재난상황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회보장제도 운영 취지에 부합하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의료서비스 접근권을 침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 증진에 노력할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홈리스가 의료급여를 받으려면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병원만 이용하는 것에 더해,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이나 자활시설에 3개월 이상 거주한 것이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설이 없는 지역의 홈리스는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홈리스 당사자가 노숙인 의료급여 선정 기준을 충족했더라도 국가 의료급여 제도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홈리스 의료급여 제도가 시설 입소를 전제로 하고 있어 거리홈리스는 공공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인권위는 “이는 사회보장급여 신청권을 차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국민이 급여대상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지원대상자를 적극 발굴해야 하는 국가의 노력 의무에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노숙인복지법 12조 2항 및 5항,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3조 2항을 개정해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다만 관련 규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홈리스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숙인 진료시설을 지속해서 확대하라고 했다.

또한 노숙인 시설이 없는 지역의 홈리스가 의료급여 신청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노숙인 등의 복지사업 안내’ 제도를 보완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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