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명문화
시설 소규모화, 중증장애인 탈시설 권리 박탈 우려도
지난 21일 열린 제10대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안(아래 탈시설조례)’이 통과됐다. 재석의원 62명 중 54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2명, 기권은 7명이었다. 2009년부터 탈시설당사자들이 서울시를 향해 외쳤던 ‘탈시설 권리’가 드디어 명문화된 것이다.
서울시 탈시설조례 제정에 장애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장애계는 지난 2018년부터 서울시의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탈시설조례 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명문화
탈시설운동 단체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은 22일 성명을 통해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마련됐다”라며 “2009년부터 투쟁해온 탈시설당사자와 (제10대 서울시의회) 임기 마지막 본회의에서 책무를 다한 서울시의원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는 23일 논평을 통해 “모든 장애인에겐 시설 밖으로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회제도가 비롯될 때 비로소 온전한 탈시설 자립생활을 이룩할 수 있다”라며 “탈시설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시행규칙이 조속히 마련되고, 탈시설 정책과 이에 따른 예산 반영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아래 한뇌협)도 23일 성명을 통해 “서울시 탈시설조례는 부산시, 대전시 동구, 경기도 여주시, 서울시 강서구에 이어 다섯 번째로 제정됐다. 그러나 이전 4개의 조례는 탈시설 개념만 명시했을 뿐 일반적인 자립생활 지원에 방점을 두었다”라며 “반면 서울시 탈시설조례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에 관한 실질적인 내용을 담은 전국 최초의 자치법규”라고 의미를 짚었다.
- 시설 소규모화, 중증장애인 탈시설 권리 박탈 우려도
하지만 서울시 탈시설조례는 한계점도 분명하다. 이번 조례는 지난 5월 25일 서윤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대표발의한 탈시설조례가 일부 수정된 채 통과된 것이다.
수정안에서는 탈시설 대상이 되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공동생활가정(그룹홈), 단기거주시설, 영유아시설이 제외됐다. 거주시설 정의를 축소함으로써 대형거주시설이 운영형태만 소규모로 변하는 ‘시설 쪼개기’의 가속화가 우려된다.
한뇌협은 “공동생활가정이 거주시설에서 제외됨으로써 기존 시설이 규모를 줄여 여러개로 쪼개는 등의 방법으로 시설 운영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마련됐다”라고 비판했다.
발바닥행동은 “조례에 따르면 공동생활가정에서 생활하다가 자립한 장애인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단기거주시설에는 장기 거주인이 많음에도 제외됐다. (영유아시설이 제외되어서) 청소년과 청년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탈시설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에 대한 기본원칙도 축소됐다. 원안에서는 “장애인은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스스로 결정한다. 단,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하다고 판단될 경우, 서울특별시장·자치구청장이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했으나, 수정안에서는 단서 조항이 삭제됐다.
발바닥행동은 “탈시설욕구를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의사소통을 지원하고 적극적으로 탈시설권리를 보장해야 함에도 제정과정에서 삭제되어 상대적으로 중증장애인의 권리가 박탈될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한계점을 고려해 서울시는 ‘제2차 장애인 자립생활지원계획(2023~2027)’과 ‘제3차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2023~2027)’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새롭게 구성되는 11대 서울시의회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더욱 보장받을 수 있도록 탈시설조례의 개정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