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탈시설조례안 입법예고
시설협회 측 “결사반대, 조례안 폐기하라”
경기도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들 200명, 도청 앞 집결
“힘들어도 행복해도 내 삶, 탈시설조례 반드시 제정하라”

한 활동가가 “경기도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높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경기도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높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주권자로서 경기도의회에 명령합니다. 탈시설조례를 제정하십시오. 탈시설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하십시오. 나는 발달장애인인 내 아이를 절대 장애인거주시설에 보낼 수 없습니다. 내가 죽고 세상에 없더라도 아이가 경기도 지역사회에서 잘 살 수 있게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아이가 나랑 같은 권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권리는 내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것입니다. 권리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기도의회는 반드시 탈시설조례를 제정해야 합니다.” (김미범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회장)

김미범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김미범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11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청 광교 신청사 앞. 김미범 회장은 마이크를 잡고 “발달장애아이의 엄마입니다”라고 하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김 회장에게는 올해 스무 살 된 발달장애자녀가 있다. 자녀가 어렸을 땐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자녀를 업고 안고, 전국의 재활시설과 병원에 다녔다. 김 회장은 “장애는 치료하고 극복해야 하는 게 아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엄마라는 이유로 모든 걸 감수하고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또한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며 연신 울먹였다.

김 회장은 자녀의 존엄한 삶을 위해 탈시설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설사회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는 없고, 부모는 힘이 없고, 국가는 무책임하기만 하다. 그러나 내 아이는 존엄한 한 명의 인간”이라며 “내 아이를 비롯한 장애인의 존엄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탈시설을 지지한다. 경기도의회는 탈시설조례를 제정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강조했다.

이날 경기도청 앞에는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경기420공투단) 소속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 탈시설운동 활동가 200여 명이 집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의회를 향해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를 제정하라”라고 요구했다.

경기420공투단 활동가 200여 명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경기420공투단 활동가 200여 명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탈시설 반대 측, 1천 명 규모의 조례안 폐기 집회 예고

유호준 경기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지난달 20일,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조례안에는 탈시설에 관한 경기도지사의 책무가 명시돼 있다. 또한 경기도가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지원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으며 민관협의체 구성, 지원주택 운영, 활동지원서비스 추가 제공,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등 탈시설 장애인 지원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해당 조례안에는 시설 폐쇄, 신규 입소 금지, 시설 신규 설치 금지 등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탈시설가이드라인의 권고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댓글이 5천 개가 넘게 달리며 탈시설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이에 유 의원은 일부 조항을 수정해, 지난달 28일 다시 입법예고했다. (관련 자료: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안)

수정 전 조례안에는 민관협의체 구성원을 △담당 공무원 △장애인 관련 단체 대표자 △관련 분야 전문가로 명시했는데, 수정 조례안에는 ‘탈시설 당사자’가 추가되고 ‘관련 분야 전문가’가 ‘장애유형 등을 고려한 관련 분야 전문가’로 변경됐다. ‘내 아이는 자기표현을 못 하는 중증발달장애인’이라고 하는 일부 부모들의 주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수정된 조례안에도 2천 개 넘는 댓글이 달려 있다. “탈시설 결사반대”,  “유호준 의원님, 부모님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등 탈시설 반대 댓글이 대부분이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경기도장애인복지시설협회 등 탈시설 반대 측은 조례안 수정이 아니라 ‘즉각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오는 16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청 앞에서 1천 명 규모의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집회 및 행진 계획서’에는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해당 집회에 참석해 ‘자유(지지)발언’을 할 예정이라고 명시돼 있다.

한 활동가가 “경기도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경기도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시설 수 1위 경기도, 탈시설 장애인 “힘들어도 행복해도 내 삶”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들은 장애인거주시설이 인권침해적 공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시설은 차별과 배제의 공간이다. 국가는 시설에 예산을 뿌리며 책임을 방기했다. 우리는 시설에서 이름과 개인별 역사를 상실한 채 살아왔다”고 증언했다.

청소년 시절, 삼육재활학교에서 생활한 박환수 정의당 경기도당 장애인위원회 부위원장은 “시설에서 수많은 우주가 사라졌다. 아름답고 소중한 우주들이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생활이란 꿈을 경기도에서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게 탈시설조례”라고 말했다.

5살 때부터 23년간 시설에 갇혀 산 이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 인천지부 대표도 “힘들어도, 행복해도 내 삶이다. 지역사회에도 차별이 있지만 차별은 감당하는 게 아니라 맞서 싸우는 것”이라며 “탈시설조례가 꼭 제정돼, 경기도 장애인들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경기도에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1,539개소 시설 중 316개소(20.5%)가 경기도에 있다. 시설 수가 많으니 시설거주장애인 수도 가장 많다. 전국 시설거주장애인 2만 9,086명 중 5,876명(20.2%)이 경기도 시설에 거주한다.

조아라 탈시설연대 간사가 발언 중이다. 옆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조아라 탈시설연대 간사가 발언 중이다. 옆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조아라 탈시설연대 간사는 “경기도에 시설 수가 많은 만큼 조례안에 관한 저항도 크다. 강제 퇴소 조항이 없는데도 시설협회 측은 ‘이 조례안이 장애인을 지역사회에 혼자 고립시켜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며 “많은 장애인 가족이 (가짜뉴스를 기반으로) 돌봄 부담을 느끼며 탈시설을 반대한다. (장애인이 탈시설했을 때) 가족이 개개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을까 봐 걱정한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탈시설은 시설에서 퇴소한 장애인이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적인 지원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조례안에는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지원책을 명시하고 있다. 경기도지사가 탈시설 장애인의 주거, 소득, 건강 등을 의무적으로 책임져야 하며, 경기도가 관련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 간사는 “경기도는 그간 수많은 시설에 장애인을 방치한 채 아무런 대안도 만들지 않았다. 비록 조례안에 시설폐쇄 등에 관한 내용은 없지만, 이것이라도 제정돼야 (중증장애인 권리 보장에 대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탈시설을 반대하는 많은 부모가 지역사회가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이영봉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이에 관해 “모두 탈시설해서 필요한 것을 요구하고 함께 싸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저상버스,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만들었다”며 “언제 인프라 구축해서 3만 명(전국 시설거주장애인 수)이 다 탈시설하나. 지금 당장 나와서 요구해야 이 사회가 변한다. 탈시설하고 자립해야 지역사회 준비가 완료된다”며 탈시설조례 제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편 경기도는 이날 기자회견 전에 경기420공투단과 면담했으나 ‘조례안에 관해 찬반양론이 극심하니 양측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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