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만나지도 않고 활동지원 조사, 61시간 하락
대리 조사 피해자 최윤선 씨 “죽으라는 건가”
오창근 지사장 어정쩡한 사과, 최 씨 거절
종합조사 세부점수 공개 요구에는 “논의 필요”
국민연금공단 은평지사(아래 공단 은평지사)가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아래 종합조사) 시, 당사자를 만나지 않고 타인을 대리 조사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은평지사의 이 같은 부실조사 이후 최중증 독거 장애인인 당사자는 활동지원 시간이 391시간에서 330시간으로 61시간 하락했다.
이에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은평센터) 등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은 15일 오후 2시, 은평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와 재조사,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 당사자 안 만나고 활동지원사 통해 대리조사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동자인 최윤선 씨는 서울시 은평구에 거주하는 최중증 독거 장애인이다. 최 씨는 지난 4월, 종합조사를 통해 수급자격을 갱신했다. 종합조사 결과를 받아본 최 씨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인정조사 시 1등급(약 391시간)이었는데 종합조사에서 6구간(약 330시간)으로 하락한 것이다.
이에 최 씨는 지난 5일, 최용기 은평센터 소장과 함께 이의신청하러 은평지사에 방문했다. 이때 애초부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담당 조사관인 이승재 은평지사 장애인지원센터 과장은 최 씨의 자택에 방문하지 않고 최 씨의 활동지원사를 통해 대리조사를 했던 것이다. 최 씨는 현재 아파트 고층에 거주 중인데 활동지원사만 1층으로 불러서 조사했다.
최 씨는 기자회견에서 “당시 이승재 과장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내가 언어장애가 있더라도 얼굴 확인을 하는 건 기본이다. 왜 내 일을 타인을 통해 조사하는 것인가?”라고 성토했다. 그는 “내 생명이 깎여 나갔다. 혼자 있다 죽으라는 얘기다. 피가 바짝 마른다. 살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기자회견에서는 서울 각 지역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이끄는 소장들의 규탄 발언이 이어졌다. 최용기 은평센터 소장은 “내 삶이 조사관의 잘못된 조사로 지옥에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이승재 과장은 장애인에게 횡포를 부렸다. 오창근 은평지사 지사장은 최윤선 씨에게 당장 사죄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경찰의 과잉진압과 불법 채증을 비판하며 “장애인들 다 잡아가시고 비장애인끼리만 어울려 살아라. 장애인은 어차피 활동지원 시간 깎여서 제대로 살지도 못 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죽을 수도 없다. 우리는 은평지사를 시작으로 각 지방자치단체 국민연금공단을 다 돌며 투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최 씨, 오창근 지사장 사과 거절… 세부점수 공개 요구엔 “논의 필요”
1시간가량 기자회견이 진행된 후 오후 3시부터 오창근 지사장과의 면담이 진행됐다. 면담에는 최윤선 씨와 3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등이 참여했다.
면담에서 장애계 측은 △최윤선 씨에 대한 사과 △최윤선 씨 이의신청에 대한 재조사 및 수급자격심의위원회 참여 제공 △방문조사 시 활동지원기관 담당자 동행 및 당사자 입장에서 지원 필요도 반영 △급여통지서 발급 외 별도의 종합점수 세부내역 고지 △은평지사 전 직원 장애인권 교육 등을 요구했다.
오 지사장은 비대면 대리 조사가 이뤄진 경위에 대해서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데다가 이용자가 당일 형편이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조사가 어려우실 수 있고 말씀을 잘 못 하시는(언어장애가 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럴 땐 가족이나 활동지원사 등 ‘케어’를 담당하는 분께 질의하기도 한다”고 변명했다.
이형숙 소장은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당사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최윤선 씨 동의 없이 비대면 대리 조사를 했으니까 이 지경이 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오 지사장은 “당사자 입장에서 우리 직원이 소홀하게 했다고 느꼈다면 지사장으로서 사과드린다.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저도 장애인권에 관심이 많고 교육도 했었다. 재발하지 않도록 직원교육 잘하겠다. 믿고 맡겨 달라”며 최윤선 씨를 향해 자신의 사과를 받을 건지 물었다.
최 씨는 “사과 안 받겠다. 사과는 됐고, 내 활동지원 시간을 원래대로 되돌려 놔라”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오 지사장은 종합점수 세부내역을 고지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선 “지자체 업무”라며 사실상 거절했다. 이에 면담에 참여한 장애인 당사자들은 동시에 탄식했다.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세부점수를 지자체에 물어보면 공단에 전화하라 하고, 공단은 지자체 업무라고 한다. 최근 지자체와 공단이 세부점수를 공개해야 한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에 따라 은평지사부터 의지를 가지고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다. 오 지사장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짧게 답했다.
은평지사는 오는 18일 월요일에 이의신청에 따른 재조사를 진행한다. 이르면 22일 금요일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한편, 은평지사는 활동지원제도와 활동지원 인력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면담 참여자들이 활동지원사와 함께 면담 장소로 향하자, 은평지사 직원은 “‘보호사’분들은 대기 장소에서 따로 모시겠다”고 말했다.
이에 최용기 소장이 “활동지원사는 보호자가 아니다. 그리고 당사자 동의 없이 활동지원사를 그렇게 분리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은평지사 직원은 계속 활동지원사들에게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라고 안내했다. 거듭된 항의 끝에 활동지원사가 면담 장소에 있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