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진성선 씨, 활동지원 440시간→219시간 삭감
강동하남지사, 이의신청 기각하고 통보조차 없어
‘조사원마다 활동지원 시간 달라질 수 있다’
장애계 “활동지원은 동정이나 배려 아닌, 권리” 규탄
중증장애인이 활동지원 종합조사를 받고, 활동지원 시간이 무려 221시간 삭감됐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 강동하남지사(아래 강동하남지사)는 이의신청 기각 후 통보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3일 오후 2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등 장애인단체는 이를 규탄하며 강동하남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의제기 기각 철회 및 재조사 △장애인 권리 침해하는 종합조사 진행 중단 및 책임 있는 조사과정 이행 △종합조사 결과에 대한 정보와 근거 공개를 요구했다.
- 조사 30분 동안 형식적인 질문만… 이의신청 결과조차 안 알려
중증장애인인 진성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지난 4월 26일 강동하남지사에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아래 종합조사)’를 받았다. 종합조사 결과, 그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아래 활동지원) 시간이 월 440시간에서 219시간으로, 무려 221시간 삭감됐다. 활동지원이 하루 7시간 이상 깎인 것이다.
진 활동가는 종합조사가 자체가 엉터리로 이뤄졌다고 규탄했다. 강동하남지사 조사원은 30분간 조사하면서 종합조사 항목에 따른 형식적인 질문만 했다. 진 활동가는 “장애 특성을 반영한 질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장애가 얼마나 심한지,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며 조사 당시 느낀 모욕감을 털어놨다.
조사원은 활동지원 시간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진 활동가는 “조사원은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는 잠을 자는 시간이니 활동지원 시간이 충분해 보인다’, ‘다른 사람에 비해 (활동지원 시간을) 많이 받고 있지 않냐’고 말했다”면서 “장애에 대해,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 활동가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강동하남지사에 항의했다. 그러자 강동하남지사는 ‘조사원마다 활동지원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진 활동가는 “공단 직원은 ‘조사관이 에프엠(FM)으로 한 것 같다. 자신이라면 시간을 더 받게 해준다’고 했다”면서 “공단 직원의 이 같은 발언은 조사원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200시간이 넘는 시간을 삭감한 조사가 객관적이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나에게 필요한 건 활동지원 시간을 권리로서 보장받는 것이지, 동정이나 배려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진 활동가는 지난 6월 18일 종합조사 결과에 대해 이의신청도 했다. 이후 진행 상황을 듣지 못하던 그는 주민센터에 직접 문의하고서야 18일 전에 기각 결정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강동하남지사는 5일 만에 이의신청을 기각해놓고 당사자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강동하남지사의 종합조사로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된 사람은 진 활동가뿐이 아니다. 안인선 장애여성공감 회원도 활동지원 시간이 월 158시간에서 110시간으로, 48시간 줄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안 회원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활동지원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인데, 오히려 시간이 더 줄게 생겼다”라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 산정특례는 ‘임시방편’… 종합조사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강동하남지사로부터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된 진성선 활동가와 안인선 회원은 산정특례를 받게 된다. 활동지원 산정특례는 종합조사로 갱신 후 활동지원 시간이 깎였을 때, 이전 활동지원 시간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장애계는 산정특례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서울장차연에 따르면, 2019년 7월 종합조사가 도입되고 수급 갱신자의 14.5%, 중증장애인의 17.2%가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됐다. 정부는 활동지원 시간 삭감자에 대해 3년 산정특례 제도를 시행했다. 3년 이후 대책이 없다는 장애계의 비판에 최근 정부는 산정특례 3년 기한을 없앴다. 그러나 이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활동지원 신규 수급자의 경우 필요한 만큼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탈락하더라도 이전에 인정조사로 활동지원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여 보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산정특례를 받더라도 국비 활동지원에 한해서만 서비스 시간이 유지된다. 종합조사 기능제한(X1) 점수는 지자체의 활동지원 추가지원과 24시간 지원대상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인정조사에서 400점이었던 장애인이 기능제한(X1) 점수를 충분히 받지 못하면, 지자체 추가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종합조사 결과가 활동지원 총량을 결정짓는다.
장애계는 종합조사 자체가 문제적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종합조사를 도입하며 ‘필요도에 따른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 홍보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종합조사는 의학적 손상 정도로만 판단하던 기존의 인정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애 특성이나 사회·환경적 요소 등은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
송파에서 활동하는 김준우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최근 종합조사를 처음으로 받아봤다. 그러나 조사관은 질문 하나 없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3분도 채 안 돼 조사를 끝냈다. ‘딱 봐도 알겠다’란다. 이게 종합조사의 실체다”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비대면 대리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은평에서 활동하는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지난 4월 국민연금공단 은평지사(아래 은평지사)에서 종합조사를 받은 최윤선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은평지사는 최중증 독거장애인인 최 씨를 직접 만나지도 않고 활동지원사만 불러 대리조사했다. 부실조사 후 인정조사 당시 1등급(월 약 391시간)이었던 최 씨의 활동지원 시간은 종합조사에서 6구간(월 약 330시간)으로 하락했다. 장애계는 오창근 은평지사 지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재조사를 요구했고, 재조사 결과 최 씨는 6구간에서 3구간으로 상승했다.
최용기 회장은 “활동지원 시간 삭감은 단순히 은평지사, 강동하남지사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에 있는 국민연금공단의 총체적인 문제다”라며 “활동지원은 개인의 욕구와 서비스 필요도, 사회·환경적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데, 현재 시행되는 종합조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누가 국민연금공단에 활동지원 시간을 마음대로 삭감할 권한을 줬나?”라고 탄식했다.
당사자에게 종합조사 결과 세부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일방적인 결과 통보로 점수가 하락해도 이의제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진은선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소장은 “종합조사가 단지 예산에 맞춰서 점수를 조작하는 게 아니라면 조사 기준과 근거를 공개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활동지원이 삭감된 활동가 4명은 강동하남지사에 종합조사 결과 세부내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했다.
한편 서울장차연 등 장애계 대표단은 정상훈 강동하남지사 장애인지원센터 센터장과 면담했다. 면담에서 정상훈 센터장은 직원을 대상으로 장애인권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장애계 대표단은 추후 강동하남지사 지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