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없애면 재난 불평등 사라질까?
사회 소수자에 대한 정책 부재가 희생을 만든다

- 재난은 불평등하다 : 부수적 피해자들

“재난은 불평등하다.” 이 키워드를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논문을 쓸 때마다 반복한다. 상당수의 장애인들이 2017년 경주 지진 때도, 2018년 포항 지진 때도, 2019년 고성 산불 때도 대피를 못 하거나 혹은 포기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집단 수용시설에 거주 중인 장애인들이 집단 감염되고 사망했다. 올해 8월 불평등의 서사가 또다시 반복됐다.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서 반지하에 살던 40대 여성 가장, 성인 발달장애인, 그리고 10대 여성이 사망했다.

사회학자 지그만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재난으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입은 자들”을 부수적 피해자(collateral victim)라고 명명한다(Bauman, 2011). 바우만은 2005년 미국 남부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가 유독 가난한 흑인들에게 가중된 것을 일컬어 그들이 부수적 피해자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부수적 피해라는 뜻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태도와 정책이 그들을 불필요한 희생으로 이끌었다는 뜻이다(Bauman, 2011).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하천 홍수 및 도심 침수 관련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제20대 대통령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하천 홍수 및 도심 침수 관련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제20대 대통령실 

- 반지하를 없애면 재난 불평등이 사라집니까?

그런데 서울시의 대처가 기가 막히다. 문제의 본질은 언급도 없이 반지하 방을 없앤다는 것이다. 서울 인구의 약 5%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반지하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지만 반지하 생활은 즐겁지 않다. 습하고, 벌레가 많고 어둡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하에 사는 이유는 세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지하를 없앤다고 주거 불평등이 사라질까? 재난으로 사망하는 취약계층이 줄어들까?

서울시의 이런 엉뚱하고 단순한 처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이자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OB베어가 만선호프에 의해 내쫓겼다. 시민들이 을지OB와 만선호프 측이 상생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노력해달라 했더니, 서울시는 서울미래유산제도를 없앤다고 한다. 시민들이 을지로 일대 세운 도시재생이 피상적으로 운영되었다고 문제제기를 했더니 세운상가를 없앤다고 한다.

재난에 대한 대응 역시 마찬가지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도시문제인 불평등과 다양성 부재, 환경 정의에 대한 근원적 치료는 하지 않고, 문제가 되면 그 부분을 도려내는 식으로 도시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도시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 부동산 사회에서 ‘강남 침수’는 해결될 수 없다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린 것은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이고, 반지하 주택에서 여성 셋이 익사한 이유는 재난 취약계층인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재난 대비를 소홀하고 공공주택 보급을 게을리한 탓이다.

강남의 침수가 잦은 이유는 간단하다. 빗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수관거가 커야 하고, 땅과 나무가 물을 흡수해야 한다. 토양과 가로수의 뿌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을 흡수한다. 그러나 땅이 곧 부동산인 사회에서, 더군다나 강남의 건물주가 물의 순환이나 도시 공공성을 고려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지하 공간을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상가와 오피스로 개발하고자 하고 지자체는 이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준다. 그 때문에 토지가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총량은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며 강남 침수는 해결되기 힘들 것이다.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진 것에 대해 개인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 피해의 정도를 줄일 수 있으며, 국가 제도를 통해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재난 관리는 “예방, 준비, 대응, 복구”라는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때 예방단계에서는 재난 이후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재난 회복력이란 재난의 충격을 흡수하고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재조직하는 능력이자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서울시 차원에서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에 대비하려는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3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 지속가능의 가치가 실종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지난 3월 서울시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서울의 20년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상위 계획으로 도시의 가치와 행정적 방향을 결정한다. 그러나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는 부동산 규제를 풀겠다는 말만 나올 뿐, 젠더 평등, 빈부격차 해소, 장애 접근성 확보, 환경의 질 개선 등 UN 회원국이 함께 설정한 지속가능성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심각한 기후 위기와 그로 인한 재난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성장 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2015년 유엔총회에서 합의한 17개 정책 목표로서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2030년까지 공동으로 달성하기로 한 약속이다. 17개의 목표는 빈곤층 감소와 사회안전망 강화, 성평등 보장, 건강하고 안전한 물관리, 에너지의 친환경적 생산과 소비, 좋은 일자리 확대와 경제성장, 산업의 성장과 혁신 활성화 및 사회기반시설 구축, 모든 종류의 불평등 해소, 포용적이고 안전하며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도시와 주거지 조성,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기후변화와 대응, 육상생태계 보전, 평화·정의·포용, 글로벌 파트너쉽이다.

공교롭게도 목표 달성의 핵심은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Leaving No One Behind)’ 이다. 장애해방 운동가들이 핵심 가치로 늘 이야기하는 슬로건이 UN에서 정한 목표이다. 하지만 국가도 서울시도 지속가능성에 큰 관심이 없다.

- 재난은 우리사회가 버린 가치들을 조명한다 

필자는 일본의 취약계층 재난 대비에 대해 연구하기 위하여 2019년과 2020년 일본 구마모토와 도쿄에 가서 장애인, 활동가, 공무원, 사회복지사 등을 만났다. 구마모토 장애인 상담센터에서 근무하는 히라타 씨는 구마모토 지진이 특별한 새로운 문제를 보여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구마모토 지진이 우리가 모르던 새로운 문제를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늘 가지고 있던 장애인 접근성의 문제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을 뿐이에요. 재난은 그저 우리 사회의 약자가 누구인지를 강조해 보여줄 뿐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폭우는 우리 사회가 등한시하는 것들을 보여 주었으며 지속가능성의 가치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단 하나의 방법과 새로운 첨단 기술만으로 도시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이 지속가능성 논리의 핵심이다. 젠더 평등, 빈부격차 해소, 환경의 질 개선, 장애차별철폐가 모두 맞물려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둔 상황에서 행정 방책을 짜야만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번 폭우로 국가와 서울시는 “우리 사회가 버린 가치가 무엇인지”를 복기하고, 기능적 행정주의가 아니라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 반지하를 없앤다고 재난 취약계층이 사라질 리 없다.

필자 소개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도시 공학을 전공하고, 취약계층의 재난관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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