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자녀 살해 후 부모 자살하는 사건 반복
대구 장애계 “이것은 사회적 참사다”
대구시와 정부에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 대책 마련 촉구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26일 오전 10시 30분, 대구시청 앞에서 대구 달서구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대구장차연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26일 오전 10시 30분, 대구시청 앞에서 대구 달서구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대구장차연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들과 장애인 활동가들이 상복을 입고 검은 현수막을 들었다. 새카만 현수막에는 하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기대고 의지할 지자체와 정부는 존재하는 겁니까?”

지난 23일, 대구 달서구에서 한 어머니가 35개월 된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24일 MBC 보도에 따르면, 사건 몇 시간 전 부모는 아들을 데리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자폐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부모가 발달장애자녀를 살해하고 그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올해만 해도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로 인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 6~7월, 전국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49재를 지내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 7월 6일에는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마련 결의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응답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또다시 대구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의 부고가 전해졌다.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 등은 26일 오전 10시 30분, 대구시청 앞에서 대구 달서구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람들의 가슴 왼편에는 ‘근조(謹弔)’라고 적힌 까만 리본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 66년 전에도 장애자녀 둔 부모는 ‘함께 죽자’고 말했다

올해 예순여덟의 박명애 대구장차연 상임공동대표 또한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함께 죽자’는 이야길 들었다. 박 대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저는 54년도에 소아마비로 태어났습니다. 두 살이던 56년에 엄마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면서 진주 남강, 흘러가는 그 강물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고 합니다. 그때 내 어머니 나이가 스물일곱쯤 됐을 거예요. 그런데 등 뒤에서 까만 눈으로 깜빡깜빡하는 나를 보고는 못 하겠더라, 했습니다. 그 이야길 제가 성인이 되어 들었습니다. 56년에도 죽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그걸 실현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고, 어떻게 그런 개소리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어머니가 강물에 안 뛰어들어서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살아서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왜 장애에 대한 책임을 우리 엄마가 지어야 한단 말입니까. 왜 내가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가족의 책임은 어디까지여야 합니까. 국가는 대체 뭣 때문에 있는 겁니까. 대한민국이 OECD 국가고 잘 나간다고 하는 이 나라, 거짓말만 해재끼는 정부 관료들. 정말 치가 떨리고 살이 떨립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 손에는 요구안이 적힌 A4용지를 들고 있고 가슴 왼편에는 ‘근조(謹弔)’라고 적힌 까만 리본을 달았다. 사진 대구장차연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 손에는 요구안이 적힌 A4용지를 들고 있고 가슴 왼편에는 ‘근조(謹弔)’라고 적힌 까만 리본을 달았다. 사진 대구장차연 

이번 소식에 누구보다 마음이 무너졌던 것은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이었다. 서영화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부회장은 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심리적 고립감에 대해 말했다.

서 부회장은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고립된다”면서 “아이가 어릴 때는 장애를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수많은 일상이 전쟁 같고, 학교 보내는 것도, 병원 가는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장애 판정 받으면 부모들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심리적 지원도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서 부회장은 “몇 명이 더 죽어야 정부는 우리 이야기를 들어줄지 이야기해달라. 윤석열 정부는 집무실에 발달장애인 화가의 그림은 걸어놓지만 제대로 된 발달장애인 정책은 내놓지 않는다”면서 “대구시는 지역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유순영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성인부위원장 또한 “25년 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27살의 발달장애자녀와 32살의 비장애인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 자살한 어머니의 나이가 그의 딸과 같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참했다.

유 성인부위원장은 “아들의 장애를 알고 절망에 빠져 모든 걸 놓고 싶었던 25년 전의 제 심정을 알기에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저렸다”면서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라고 규탄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는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는 장애자녀를 숨기거나 받아들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애등록이 되지 않으면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이니 장애자녀를 돌보는 것은 엄마의 책임이 된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분노했다.

- “우리가 사치를 바랐나, 그냥 평범하게 살게 해달라는 건데…”

노금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은 발언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의 두 손에는 “국회는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마련 결의안을 즉시 채택하라”고 쓰인 A4용지가 쥐어져 있었다.

노금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구장차연
노금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구장차연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듭니다. 치사하고 더럽습니다. 우리가 외제차를 끈다고 했습니까? 아니면 사치하겠다고 했습니까? 그냥 좀 살게 해달라는 것 아닙니까.

2006년도에 이곳 대구시청 앞에서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천막 치고 싸웠습니다. 벌써 16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16년 동안 부르짖었던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살려달라는 겁니다. 함께 살자는 겁니다. 까짓거 안 되면 16년 전에 했던 투쟁을 다시 합시다. 그때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어차피 집구석에서 죽으나 나와서 죽으나 똑같다.’ 집구석에서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시 나와서 투쟁했으면 좋겠습니다.”

조민제 대구장차연 집행위원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관계 당국과 소통한 이야길 전했다. 조 집행위원장은 “대구시는 ‘장애로 등록은 되지 않았으니 장애인복지과 소관인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너무 기가 찼다”면서 “정부는 이번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정부보고서 심사에서 ‘발달장애인 관련 예산을 세 배 늘렸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복지예산은 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도 안 된다. 24시간 지원이 안 되는 것은 다른 나라 예산의 3분의 1밖에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구시에 발달·중증장애인 24시간 공공책임돌봄을 즉각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후 이뤄진 면담에서 대구장차연 등은 대구시에 “내년도 예산 수립 과정에서 중증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체계를 각별히 신경 써달라”는 입장을 재차 전했다. 이와 함께 △국회는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즉시 채택할 것 △정부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선언하고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할 것 등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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