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2·3차 한국 심의 ④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 연달아… 대책 없는 정부
치료감호 대상서 발달장애인 제외하라는 요구도 사실상 거절

[편집자 주] 지난달 24일과 25일, 한국 정부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로부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다. 협약은 국제인권조약으로, 장애인이 보장받아야 할 주요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08년에 협약을 비준했으며, 헌법에 따라 이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진다.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는 2014년 이후 두 번째다. 장애계는 5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협약 한국 정부 심의 대응 장애계 연대(아래 장애계연대)’를 꾸려 정부의 이행 상황을 감시해왔다. 비마이너는 이틀간 진행된 현장 심의 속기록을 입수해 다섯 차례에 걸쳐 이를 보도한다.

① 유엔 “현행 종합조사는 협약에 부합하지 않아”

② 이동권·접근권 처참… 정부는 유엔서 “성과 있다”

③ 유엔 “코로나19 장애인 사망률 왜 높나” 정부 “한국 특성상…”

④ 잇따른 발달장애인 참사, 유엔도 주목

⑤ 유엔 “성년후견제도 폐지하라” 권고에도 정부, 수용 거부

지난달 25일 오후 2시(스위스 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소에 열린 기자회견. 현수막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심의 대응 보고 및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있는 권고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장애계연대
지난달 25일 오후 2시(스위스 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소에 열린 기자회견. 현수막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심의 대응 보고 및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있는 권고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장애계연대

- 발달장애인 계속 죽어가도 대책 없어

지난달 23일, 대구시 달서구에서 한 어머니가 35개월 된 아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8월 24일 MBC 보도에 따르면, 사건 몇 시간 전 부모는 아들을 데리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자폐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부모가 발달장애자녀를 살해하고 그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올해만 해도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로 인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는 지난 6~7월, 전국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49재를 지내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러한 소식은 유엔에도 전해져 이번 심의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다.

아말리아 가미오 위원은 “한국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죽음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게렐 돈도브드로이 위원은 “부모가 장애아동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라고 질의했다.

지난 5월,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근처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의 모습. 사진 하민지
지난 5월,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근처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의 모습. 사진 하민지

염민섭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잇따라 발생한 일에 대해 정부 책임자로서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2018년부터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해 활동지원서비스를 늘리고 주간활동서비스, 방과후활동서비스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삭감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 같은 피해를 겪은 장애인은 올해 3월 기준 134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장혜영 정의당 의원실, 복지부). 1345명은 차감 전엔 월평균 115.3시간의 활동지원시간을 받았다. 주간활동서비스 이용 후엔 평균 34.5시간이 차감된 월 80.8시간만 이용할 수 있었다. 하루 두세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그간 많은 발달장애인이 사망했지만 정부가 애도를 표한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러나 정부 답변을 듣고 절망했다. 정부는 발달장애인 가정에 많은 서비스를 지원해 엄청나게 살기 좋은 것처럼 표현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발달장애인 24시간 국가책임제를 도입하라는 외침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문제제기에도 발달장애인 치료감호 지속하겠다는 법무부

단라미 바슈라 의원은 한국의 치료감호제도를 지적하며 “발달장애인의 경우 장기적 치료를 위한 감호가 필요 없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라고 질의했다.

치료감호는 범죄자에 대한 보호처분 중 하나다. 치료감호법에 따라 ‘심신장애 상태, 마약류·알코올이나 그 밖의 약물중독 상태, 정신성적(精神性的) 장애가 있는 상태 등에서 범죄행위를 한 자로서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는 교도소가 아닌 충청남도 공주시 국립법무병원(구 치료감호소)에 수감된다.

시민사회는 발달장애인을 국립법무병원에 수감하는 게 반인권적이라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지난해 3월, 지적장애인 황아무개 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국립법무병원에 11년이나 수감된 것이 알려져 시민사회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지난해 3월, 서울지방법원최갑인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변호사는 ‘치료 대상이 아닌 발달장애인을 감금 및 강제치료한 대한민국은 각성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사진 하민지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현장. 최갑인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변호사는 ‘치료 대상이 아닌 발달장애인을 감금 및 강제치료한 대한민국은 각성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사진 하민지

치료감호 계속 여부는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아래 심의위)에서 6개월마다 심사한다. 심의위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데 단 하루 동안 180여 건을 심사한다(2020년 기준). 양이 많다 보니 제대로 된 심사가 어렵다. 황 씨 또한 꾸준히 치료감호 종료신청서를 제출했으나 11년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문의료진 수 자체도 턱없이 적어 제대로 된 진료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립법무병원에 수감하는 이유는 교도소와 달리 이곳에서 ‘교육’과 ‘치료’를 통해 이른바 ‘문제적 상태’를 바꾸기 위함이다. 그러나 국립법무병원의 억압적인 감금 환경이 발달장애인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시민사회계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치료 필요성을 판단하고, 발달장애인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장애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이라며 발달장애인 치료감호를 강력히 규탄해왔다.

하지만 정소연 법무부 인권정책과장은 여전히 시민사회계의 문제제기를 수용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정 과장은 “발달장애인을 치료감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좀 더 신중히 해야 한다”면서 “치료감호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의 감정을 참고한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비약물적 치료를 확대하기 위해 전문의료인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법무부는 ‘국립법무병원은 가둬두는 곳이 아니라 치료하는 곳이다’라고 답변했는데, 너무나 분노스럽다”고 규탄했다.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도 “치료감호법은 악법이다. 이 법에 의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장애인이 장기간 구금돼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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