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불평등한 기후재난의 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①
지난 8월 이례적인 집중 호우는 수천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고 서울 신림동과 상도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4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발달장애인, 서비스노동자, 10대 청소년 그리고 여성이었던 가족의 삶을 집어삼킨 그 폭우의 이름은 기후재난이었다. 기후재난의 원인은 자명하다. 더 많은 생산과 이윤을 위한 효율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재난. 그리고 이 시스템과 재난은 불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북반구 부자나라에서 만들어낸 재난의 위기를 남반구 가난한 나라에서 감당한다. 이렇게 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8월 반지하에서 4명의 삶을 집어삼킨 폭우 참사는 재난의 위기가 한 국가 내에서도 불평등을 경로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8월 폭우 당시 언론에 보도되는 피해는 크게 두 종류였다. 외제차와 반지하 침수. 이 둘만으로도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를 감지할 수 있겠지만,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은 더 다양한 위협이 불평등한 일상에 존재했다. 거리에서 장사하던 노점상인들은 생계 수단인 마차가 물에 잠기고 집기가 거리에 뒹구는 위협을 마주했지만, 언론 어디에도 호명되지 않았다. 피해에 대한 대책이 없기는 당연했다.
언론에 보도되기는 했으나 근본적인 문제 지적보다는 기존 편견에 기댄, 그저 안타까운 사연쯤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8월 10일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장애인거주시설에 발생한 침수 피해가 보도됐다. 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구급차로 대피할 수 없었기에 침대째로 탑차에 실려 이동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그토록 지역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단 거주할 수밖에 없었는지(시설은 하남시항동공설묘지 옆에 있다), 그들이 왜 필요한 보장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열악한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지하 폭우 참사와 노점상, 장애인거주시설의 문제. 이 세 가지 현상은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나 그 기저에는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권침해와 지역사회에 사는 장애인이 지진이나 침수가 발생했을 때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은 사실 장애인의 일상에 잠재된 예견된 참사였다. 이는 장애인의 권리가 아니라 예산과 효율, 시설의 이윤 보존을 중심으로 한 시설 중심의 복지제도가 만들어낸 불평등한 사건이다.
더 화려하고 비싼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점상인들을 대책 없는 단속과 퇴거로 내몰아 온 폭력과 더 높고 비싼 건물을 짓기 위해 세입자를 비롯한 원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강제퇴거 해온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뿐만 아니라 겨울철 쪽방과 고시원에서 발생하는 화재와 그로 인한 죽음, 이주노동자가 컨테이너에서 동사하는 비극 또한 도시의 가격 자체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높이며 구매력 없는 이들을 안전하지 않은 공간으로 내몰아 온 시스템이 만들어 온 불평등, 사회문제이다.
코로나19와 경제위기 속에서 불평등 문제는 더욱 가시화되면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폭우 참사 이후에도 서울시는 반지하를 없애겠다며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정책을, 정부는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6천억 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발표했다. 언론은 폭우 참사나 화재 참사와 같이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불평등을 살아내는 이들을 피해자로 호명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해결을 촉구하지만, 정작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에 대해서는 적절히 다루지 않는다. 원활한 대화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항의, 기자회견, 집회 등의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지만,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인 양 왜곡하거나 예산과 생존을 저울질하며 중립적인 척, 객관적인 척 체면 차리기에 바쁘다.
기후재난의 원인과 불평등의 원인은 동일하다. 지구와 인간의 안전보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그러한 기업을 위한 정책 결정을 생명보다 우선시해온 국가. 반지하와 쪽방, 고시원, 시설처럼 안전하지 않은 공간을 용인해 온 국가.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하는 기업과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의 확대를 가능하게 해 온 국가. 탄소 배출 제로를 주창하면서도 이윤만을 위한 대규모 토건 사업을 지속하며 철거민을 만들어내는 국가. 즉, 시스템의 문제다.
10월 17일은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이다. 한국의 반빈곤, 노동, 사회단체는 이날을 ‘빈곤철폐의 날’이라 명명하여 투쟁하고 있다. 빈곤문제는 시혜적이고 일시적인 후원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하고, 그 변화는 빈곤문제에 저항하고 있는 노점상, 철거민, 홈리스, 쪽방주민, 장애인,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으로부터 가능하다. 올해는 “불평등이 재난”이라는 슬로건으로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부터 10월 1일 주거의날 주거권 대행진 그리고 10월 15일, 1017 빈곤철폐의날 퍼레이드로 이어지는 투쟁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불평등한 기후재난의 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연속 기고는 기후재난의 시대에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일상에서 마주하며 저항하고 있는 이들이 ‘피해자’로 호명되는 것이 아니라, 기후재난과 불평등을 만들어낸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만들고 행동하는 주체로 주목되길 바라며 기획했다. 1017 빈곤철폐의 날 주간을 맞이하여, 다섯 편에 걸쳐 노점상, 철거민, 거리 홈리스, 쪽방 주민, 장애인이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한 기후재난과 시스템에 저항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들과 함께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인터뷰하여 연재할 예정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는 현재 일상이 지속 가능해야 가능할 것이다. 먼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은 지금 당장의 불평등을 없애는 것에서부터 가능하다.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불평등과 기후재난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변화를 함께 상상하면서 연대로 화답해주길 바란다.
필자 소개
정성철.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연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