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연대, 10일 국회서 장애인 이동권 실태조사 발표
장콜 대기시간, 운전원 수… 이동권 막는 구조적 문제 분석
“이동할 권리는 서비스 아닌 권리” 교통약자법 개정 요구

10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위한 장애인 이동권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10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위한 장애인 이동권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11개월 이상 지속되는 가운데, 장애계가 장애인 이동권 실태조사를 자체적으로 발표하며 교통약자법 개정을 촉구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아래 이동권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 개정을 위한 장애인 이동권 실태조사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보고회에는 권달주 이동권연대 대표가 좌장을 맡고,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교통약자법 개정 필요성을 발제했다. 이재민 이동권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 이동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진 토론에는 정기열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조연희 충북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기획실장, 홍성민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위원, 최정민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장이 토론자로 참석해 1시간가량 논의를 벌였다.

- 장애인 이동권 실태조사 결과 “대기시간 길고, 운전원 부족하다”

국토교통부는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법에 따라 매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5년 간격으로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세워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의 도입 목표율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이동권에 제약을 받고 있다. 교통약자법이 제정된 지 17년이 흘렀지만 전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도입률은 2020년 기준 27.8%에 불과하며, 장애인콜택시의 법정 대수(중증장애인 150명당 1대) 충족률도 83.4%에 그친다. 장애인들은 계단이 있는 버스를 눈앞에서 떠나보내거나, 장애인콜택시를 무한정 기다리는 등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와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실태조사’ 문항을 비교 정리한 표.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와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실태조사’ 문항을 비교 정리한 표.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이동권의 핵심은 ‘정시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이동 도중 한 구간이라도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할 권리는 결과적으로 침해된다. 따라서 정해진 시간에 출발해 몇 시에 도착할지 가늠할 수 있는 안정적인 대중교통 체계는 장애인 이동권을 갖춰 나가는 기반이 된다.

이동권연대는 이날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토부의 기존 조사에 담기지 않은 항목들을 분석해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본 것이다. 장애계는 현행 법률 아래에서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알리고, 국토부가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이동권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권 침해 문제는 실태조사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이동권연대가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는 161개 지자체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받은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조사 결과 장애인콜택시 한 대당 운전원 수는 한 명 안팎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시간 운행 3교대 근무를 감안하면, 출퇴근 시간 등 차량 운행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대에도 전체 차량의 3분의 1 이상은 운전원이 없어 차고지에 세워져 있는 셈이다. 

장애인콜택시 한 대당 운전원 수가 1.06명인 광주에서 발생한 대기시간 사례. 콜 접수량이 많다는 문자와 함께 배차가 무한정 늦어지고 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장애인콜택시 한 대당 운전원 수가 1.06명인 광주에서 발생한 대기시간 사례. 콜 접수량이 많다는 문자와 함께 배차가 무한정 늦어지고 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장애인콜택시 대기시간도 세간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장애인콜택시 평균 배차시간은 30분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간대별 최대 대기시간은 평균 48.5분으로 확인됐다. 대기시간이 가장 높은 곳은 전라남도(67분), 경상북도(64분), 경상남도(62분) 순이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최대 300분까지 대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이동권연대는 밝혔다.

이렇듯 장애인콜택시는 운전원 수가 턱없이 부족해 법정 대수를 충족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운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장애계는 장애인콜택시 운영비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예산 반영을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각 지역에 필요한 교통수단과 인력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를 보완해야 한다는 제안을 덧붙였다. 실태조사를 발표한 이재민 사무국장은 “이동권연대의 자체 조사가 향후 국토부 자료와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기초자료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 경기 “차 한 대당 운전원 1명 간신히 넘겨”… 충북 “24시간 운행 지역 극히 일부”

이어진 토론에서 정기열 회장은 경기도의 사례를 들며 도내 장애인 이동권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경기도에는 우리나라 전체 등록장애인 264만 명 중 21.8%(58만 명)가 살고 있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장애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그중에는 지체장애인의 비율(46%)이 가장 높다.

경기도는 지난해 말까지 저상버스 도입 목표율을 32%로 잡았지만, 실제 도입률은 21%에 그쳤다. 그러나 이는 ‘시내버스’에만 한정된다. 경기도 31개 시군을 넘나드는 광역버스 중에 휠체어 탄 장애인이 탑승 가능한 버스는 거의 없다. 정 회장은 “경기도에서 운행하는 광역·시외버스는 3,000대가 넘지만, 저상버스를 도입하거나 휠체어 탑승장비를 설치하는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경기도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자체적으로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마련해 이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중증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광역·시외버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광역버스가 없는 상황에서 시군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이동수단은 장애인콜택시가 유일하다. 그러나 경기도는 법정 대수를 훌쩍 뛰어넘는 도입률(152%)에도 불구하고 차 한 대당 운전원 수는 대부분 시군에서 한 명을 간신히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양평군(0.92명), 고양시(0.9명), 남양주시(0.84명)의 경우 운전원 수는 한 명이 채 안 된다. 이는 장애인콜택시가 있어도 운전원이 없어 차량을 운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 회장은 “차 한 대당 운전원 수를 두 명까지 증원해 장애인콜택시 대기시간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충북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각 시군 이동지원센터의 운영 실태를 전화 조사한 뒤 그 결과를 정리한 표.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지난 9월 충북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각 시군 이동지원센터의 운영 실태를 전화 조사한 뒤 그 결과를 정리한 표.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조연희 실장은 장애인 이동권이 열악한 충청북도의 상황을 공유했다. 지난해 기준 충청북도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21.5%로, 전국 17개 시도 중 7번째로 낮다. 그마저도 95%가량이 청주시에 몰려 있어 도내 나머지 10개 시군에는 저상버스가 전혀 없거나 한두 대 운행하는 것이 전부다. 저상버스가 없으니 이곳에서도 휠체어 탄 장애인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장애인콜택시다.

충북지역에서 장애인콜택시 24시간 운행이 가능한 지역은 청주시, 충주시, 옥천군 세 곳뿐이다. 대부분 오전 7시~오후 7시 사이에만 운행하며, 주로 예약제로 운영되다 보니 원하는 시간에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 실장은 “예약제로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는 경우 예약부터 차량 탑승까지 평균 3~4일의 시간이 걸린다”면서 “현실이 이런데 ‘분 단위의 대기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통계 수치가 오히려 장애인이 체감하는 이동권의 현실을 가린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책 중 하나가 바로 광역이동지원센터다. 광역이동지원센터는 지역 간 환승·연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마다 상이한 장애인콜택시 운영 기준을 광역 차원에서 통일하는 역할을 한다.

충청북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역이동지원센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지역이다. 현재 충북지역에 있는 각 이동지원센터의 운영은 기초자치단체마다 천차만별이다. 가령 충주시에 사는 장애인이 보은군을 방문한 경우, 오후 7시가 넘으면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충주시로 돌아올 수 없다. 보은군은 오후 7시 이후 장애인콜택시 운행이 중단되며, 타 지역 거주자가 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주말과 공휴일에는 장애인콜택시를 운행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조 실장은 “충북에는 장애인이 이동할 때 바로 전화를 걸어 이용할 수 있는 즉시콜도, 24시간 운행하는 장애인콜택시도 거의 없을뿐더러 대부분 병원 예약, 출퇴근, 등하교 등으로 이미 예약이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포화 상태를 해결하려면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조속히 설치하고 정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예산을 확대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차례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장애인콜택시 운영비 지원, 의무 아닌 임의 규정… 국고 보조율 명시도 없어

이처럼 지역 간 장애인 이동권 격차는 여전히 크다. 지난해 기준 저상버스 보급률을 살펴보면 서울의 경우 59.7%에 이르지만, 보급률이 가장 낮은 충청남도는 9.9%에 그친다. 특별교통수단의 경우, 중앙정부 차원의 통일된 기준이 없어 이용요금·시간·운행범위 등이 지자체마다 제각각이다. 인접한 시군간 환승‧연계가 원활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12월에는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내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장애인콜택시 운영비를 국비로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흐름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해 온 결과다.

그러나 개정안은 장애인콜택시 운영비에 대한 국가 지원을 의무가 아닌 임의 규정으로 두고 있다. 개정 과정에서 ‘해야 한다’는 원안이 ‘할 수 있다’로 수정된 것이다. 게다가 개정안은 기획재정부의 시행령에 가로막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장애인특별운송사업(장애인콜택시)은 정부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거듭된 장애계의 투쟁 끝에 지난달 5일 기재부가 보조금 지급 제외사업에서 이를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여전히 국고 기준보조율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기재부의 무성의한 태도는 내년도 국토부 예산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에는 장애인콜택시 한 대당 1,900만 원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 전장연은 차 한 대당 두 명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합산해 최소 1억 원 이상이 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경석 대표는 “1,900만 원과 1억 원의 차이는 우리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하는 이유이자 현실 속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격차를 잘 보여주는 숫자다. 국회 예결위는 장애계의 요구를 충실히 심의해달라”고 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정민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장(사진 오른쪽)이 참여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토론자로 참석한 최정민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장(사진 오른쪽)이 참여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장애계, 교통약자법 개정 촉구… 11월 내내 지하철 탄다

장애계는 이날 보고회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서비스가 아닌 권리로 보장하라”며 교통약자법 개정을 촉구했다. 장애인콜택시 광역 이동 및 운영비 국고 지원 의무화 조항을 담은 교통약자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장애계는 특별교통수단 운영 업무를 기초자치단체에서 광역이동지원센터로 이관하는 법안, 버스 연한이 지나 대·폐차하는 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 리프트 장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가로 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장애계의 촉구에도 최정민 국토부 생활교통복지과장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국비 지원의 경우 24시간 운행과 광역 이동에 관한 부분을 검토 중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동권연대 등 장애계 의견을 반영해 각 부처에 이관할 수 있도록 논의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보고회가 끝난 뒤 국회 본관 앞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이어 말하기 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국회 예산안 심사가 진행되는 11월 한 달간 장애인권리예산 및 정책 반영을 촉구하며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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