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21일 삼각지역서 농성 선포 결의대회 열어
경찰‧서울교통공사‧활동가들 승강장서 20분가량 충돌
예결위 기간, 장애인권리예산 촉구하며 무기한 천막 농성 돌입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21일 오후 2시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천막 농성 선포 결의대회’를 열고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고 정부‧여당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된 장애인권리예산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아래 예결위)로 넘어갔다. 상임위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이 일부 반영되는 성과가 있었지만, 예결위는 다시 정부안을 두고 감액·증액을 논의한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민의힘 의원들, 즉 정부·여당의 동의가 중요한 상황이다. 

이는 2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이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과 가장 가까운 삼각지역에서 농성에 돌입한 이유다. 이곳은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난 3월부터 매일 아침 삭발 투쟁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전장연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예결위 예산심사 기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책임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번 주부터 매일 오전 8시에 삭발결의식과 지하철 선전전을, 오후 2시에 삼각지역을 중심으로 지하철 선전전을 한 번 더 진행한다.

단, 예산심사가 끝날 때까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는 유보하기로 했다.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 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장애인권리예산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다음 달 2일 ‘제47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활동가들이 삼각지역 동대문방향 1-2 승강장으로 노란 천막을 들여오고 있다. 사진 복건우

이날 전장연 활동가들은 삭발결의식이 이뤄지는 동대문 방향 1-1 승강장에 농성장을 차리려고 했으나, 경찰이 오후 2시 전부터 안전 펜스를 설치해 진입로를 사전 차단했다. 2시 47분쯤 활동가들은 노란 천막을 들여와 농성장 설치를 시도했으나,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보안관의 무리한 진압에 가로막혔다. 일부 장애인 활동가들은 경찰 사이 틈새에 끼여 비명을 지르거나 휠체어를 탄 채로 넘어질 뻔 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박주석 전장연 건강권위원회 간사는 “휠체어 이용자를 태울 수 있는 응급차가 전국에 한 대도 없다. 여기 계신 장애인 중 한 분이라도 밀려서 쓰러지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무리하게 진압을) 하느냐”고 항의했다.

수십 명의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들은 이날 장애인 활동가들을 무리하게 진압하며 휴대폰과 카메라로 현장을 채증했다. 사진 복건우

고성과 충돌은 20분 넘게 이어졌다. 활동가들은 서울교통공사와 협상한 결과, 삼각지역 승강장이 아닌 지하 1층 개찰구 앞에 농성장을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 모두 같은 날 불과 90분 안에 벌어진 일이다.

박경석 대표는 “우리는 농성장이 설치된 삼각지역을 지키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정부에 촉구하는 동시에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장애인의 현실을 알리고자 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틈새에 끼여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진 복건우

-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 이제 예결위와 기재부에 달렸다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결의대회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책임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지난주까지 보건복지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교육위원회에서는 각각 장애인 탈시설 및 활동지원,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예산이 논의된 바 있다.

장애계가 요구한 보건복지부 예산안은 복지위에서 대부분 반영됐다.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는 정부안보다 2만 명 늘어난 13만 5,000명으로, 수가는 정부안보다 1,430원 늘어난 1만 7,000원으로 의결됐다. 탈시설 시범사업 예산은 정부안보다 179억 원 증액된 220억 원이 예결위로 넘어갔다.

국토위에는 장애인 이동권 예산이 일부만 반영됐다. 저상버스 도입 예산은 정부안 대비 289억 원 증액된 2,105억 원에 그쳤다. 장애계는 내년에 대폐차해야 할 차량들을 모두 저상버스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며 3,435억 원을 편성하라고 요구해 왔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의 경우 신규 도입 보조 예산은 모두 반영됐지만, 차량 한 대당 운전원 한 명의 인건비를 책정하는 데 그쳤다. 장애인콜택시를 원활히 이용하려면 현 수준의 인력을 두 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게 장애계의 요구다.

환노위에는 장애인 노동권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근로지원인 예산은 정부안보다 256억 원이 증액됐지만, 매년 예산 자연증가분을 감안하면 사실상 동결이나 다름없다는 게 장애계의 판단이다. 발달장애인 인턴제 사업, 동료지원가 사업의 경우 장애계 요구안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교욱위는 예결소위 회의가 파행하면서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운영비가 국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46차례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로 시민들에게 온갖 욕을 먹어가며 우리의 권리를 외쳐온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국회와 정부는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라는 우리의 목소리에 확실히 답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천막 반입을 막는 경찰들과 충돌하며 천막을 사수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장애인권리예산 반영까지 무기한 천막 농성… 안 되면 “지하철 탑승 시위 재개”

장애계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시민의 권리가 아닌 비용의 문제로 간주하는 예산안 처리 기조를 비판하며 정부‧여당에 적극적인 예산 편성을 거듭 촉구했다.

실제로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장애인 예산안은 전장연이 요구해 온 권리예산보다 1조 5천억 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장연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장애계와 면담하기로 약속했지만, 아직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해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결위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이 통과되려면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장연은 여야 예결위원들을 만나 권리예산 증액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를 찾아가 면담 약속 이행을 촉구할 예정이다.

오후 3시 30분경 전장연 활동가들은 삼각지역 승강장 앞이 아닌 지하 1층 개찰구 앞에 천막 농성장을 설치했다. 사진 복건우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우리의 21년 외침이 헛되지 않으려면 국회 예결위와 기획재정부가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내년도 예산으로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전장연은 이날 설치한 농성장에서 오후 7시부터 야간 영화제를 개최한다. 이곳에서 국회 예결위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이 반영될 때까지 무기한 천막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예결위 예산심사 결과에 장애인권리예산이 반영되지 않으면 세계 장애인의 날을 앞둔 내달 1일부터 1박 2일 노숙 투쟁을 전개한 뒤, 다음날인 2일 ‘제47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재개할 것이라 전장연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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