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야협, 온라인 장애인평생교육 ‘이탈’ 발표
기존 교육과정을 ‘권리중심’으로 변형
“장애인은 교육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
온오프라인 수업의 접점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모든 것이 멈췄던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장애인야학도 위기를 맞았다. 천성호 노들장애인야학 공동교장은 “휴교와 줌 수업을 반복하며 우리의 교육과 서로의 생존을 지켜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가 장애인평생교육 온라인 과정을 만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전장야협은 지난해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장애인평생교육 온라인 플랫폼 ‘이탈(E-Tal)’ 개발에 착수했다.
이탈은 23일 오후 2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교육과정은 현행 장애인평생교육 체계를 준용하되, ‘권리중심’ 체계로 바꿨다. 전장야협은 발표회에서 “권리중심 장애인평생교육 온라인 교육과정을 새롭게 제안한다. 장애인야학 등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의 현장에서 널리 쓰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탈’ 누리집 바로가기)
- 장애인평생교육 참여 저조한 이유 “원하는 프로그램 없어서”
2020년 장애인평생교육 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체 성인 등록장애인 중 장애인평생교육에 참여하는 사람은 약 12만 명으로 6.1%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전체 국민 중 평생교육에 참여하는 사람은 약 1700만 명으로 35.8%나 된다.
저조한 참여율과는 반대로, 장애인평생교육 프로그램 수는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2020년, 전국 897개 기관에서 5042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기관 수와 프로그램 수는 급증해 지난해에는 1296개 기관에서 2만 198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프로그램 수의 경우 1년 사이 4배가 증가한 것이다.
기관 수와 프로그램 수는 계속 늘어가는데 장애인평생교육 참여율은 왜 이렇게 저조할까.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없는 교육현장, 장애인평생교육 지원인력 부재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프로그램의 질’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조사 결과, 장애인은 ‘마음에 드는 장애인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없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장애인평생교육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올해 교육부가 발표한 ‘장애인평생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장애인은 ‘장애인평생교육 참여 시 어려운 점’으로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다’는 응답을 가장 높은 빈도(36.9%)로 선택했다.
김기룡 중부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 교수는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서는 장애인이 원하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의 선호도와 욕구를 충분히 파악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해야 비로소 장애인 학습자의 장애인평생교육 참여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장애인은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할까. 앞서 인용한 교육부 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학습자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프로그램 △자신감을 획득하고 활력을 추구하는 등 삶의 질을 향상하는 프로그램 △생활불편 해소, 자립생활 증진 등 실생활에 필요한 프로그램 △인간관계 확장 등 지역사회 교류 증진 프로그램 등이다.
김 교수는 “그간 장애인평생교육 프로그램은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과제를 해당 분야 전문가가 수행하며 학술대회 같은 데서 발표한 게 전부였다”며 “장애인이 원하는 장애인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국가가 만들지 않으니, 민간기관인 전장야협에서 만들었다. 이렇게 별도의 교육과정을 만들어 공표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 교육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장애인
전장야협은 국가가 만든 현행 장애인평생교육 체계를 준용하되 ‘권리중심’ 체계로 바꿨다. 현행 체계는 △기초문해교육 △직업능력향상교육 △문화예술교육 △인문교양교육 △학력보완교육 △시민참여교육 등 총 6가지다. 전장야협은 직업능력향상교육은 ‘노동교육’으로, 시민참여교육은 ‘민주시민교육’으로 변형했다.
이학인 전장야협 상임활동가는 “노동교육의 경우 장애인을 차별하는 능력주의 용어를 삭제하고 노동교육으로 변경했다. 또한 ‘시민참여’보다는 장애인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민주시민’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노동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제외한 나머지 4개는 현행 체계를 준용했다. 전장야협은 6가지 체계에 ‘자립생활교육’을 추가했다. 자립생활교육은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전장야협은 이로써 △기초문해교육 △노동교육 △문화예술교육 △인문교양교육 △학력보완교육 △민주시민교육 △자립생활교육 등 총 7개의 권리중심 장애인평생교육 온라인 교육과정 분류체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탈 누리집에는 7개 분류체계에 기반한 다양한 강의가 공개돼 있다. 춤·노래 교실, 음악·영상 만들기, 만화 그리기, 장애학, 권리옹호 교육 등의 프로그램과 강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학인 활동가는 “장애인이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임을 확인하고자 권리중심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장애인평생교육을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로만 인식하면 안 된다. 성인기 학습 욕구를 기반으로 배움을 구체화해 장애인을 교육에 참여하는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또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이로 인해 교육의 효과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장애인권리보장 정책의 부재 때문”이라며 “권리기반의 평생교육은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막아온 장벽을 확인하고, 비장애인 중심의 능력주의 교육을 비판하며, 장애인이 교육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와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바로 서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천성호 교장은 “온라인 교육은 기본적으로 혼자서 학습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중증장애 학습자, 발달장애 학생은 혼자 수업을 듣는 게 어려울 수 있다”며 “현재 감염병의 위기 속에서도 안전하게 오프라인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 이탈의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의 접점을 찾고, 이를 통해 학생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 이탈(E-Tal) 누리집 바로가기 https://etal.ncpspd.or.kr/fro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