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로 발의된 ‘장애인평생교육법’ 2년째 표류 중
다음 주 국회 교육위원회 열리지만 안건으로 상정조차 못 돼

국회 앞에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며 긴급 농성에 들어가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습. 사람들 뒤로 노란 농성 천막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
국회 앞에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며 긴급 농성에 들어가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습. 사람들 뒤로 노란 농성 천막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가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오는 21~22일로 예정된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이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을 비판하며 2월 내 교육위원회에서 법안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헌법 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은 이러한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022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장애인 평생교육 현황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25세 이상 전체 장애인 중 55.7%가 중졸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성인 이후에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9년 ‘장애인평생교육 중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33.5%인데 반해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프로그램에 따라 0.2~1.6%(2017년 기준)로 나타났다.

농성 선포를 알리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야학 학생들. 사진 강혜민
농성 선포를 알리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야학 학생들. 사진 강혜민

2019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작성한 ‘장애인 평생교육 활성화 방안’(2020~2022)에서는 장애인 평생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 평생교육은 비장애인에 비해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으며 장애유형과 장애정도 등을 고려한 프로그램도 부족하다. 한글을 알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문해교육에 대한 지원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가 단위의 장애인 평생교육 전담 조직은 있으나 지역에선 기존의 평생교육 부서나 장애인 업무 부서에서 이를 담당하고 있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체계가 미비하다. 또한, 특수교육실태조사는 주로 학령기 학생 대상으로만 이뤄질 뿐 장애인 평생교육에 대해서는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2021년 4월 20일에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2022년 2월 4일에는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발의로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장애인의 평생교육을 권리로 보장 △장애인평생교육에 대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명시 △장애인평생교육 전달체계 구축 △교육-고용-서비스 연계 등 장애인의 평생교육과 지역사회 자립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의원은 당시 국회 교육위원장이었다. 장애인의 평생교육을 권리로써 보장하는 것에 여야 교육위원장이 이견 없이 뜻을 함께한 것이다. 그러나 법안은 발의된 지 2년이 다 돼가도록 단 한 번도 교육위원회에서 논의되지 못했다.

장애경 노들장애인야학 학생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경 노들장애인야학 학생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탈시설해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경 노들장애인야학 학생회장은 이러한 현실에 갑갑함을 표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학교에 다니지 못해서 지금이라도 열심히 배우고 싶다는데 국가가 왜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 공부해야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열심히 투쟁해서 꼭 법을 제정하자”고 외쳤다.

김선영 안산 나무를 심는 장애인야학 교장은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해 열악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는 장애인야학의 현실을 토로했다.

김 교장은 “야학에 중증장애인이 왔는데 공간이 협소하니 휠체어 타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이분이 학교 오자마자 숨 막혀 죽을 것 같다며 야학에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마음이 아팠지만 공간 확장에는 돈이 들어가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학령기에 장애인이 돼서 더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왜 장애인만 권리를 누릴 수 없나. 너무 불합리하다”면서 “안산에 다른 평생교육기관이 많은데 왜 거기로 안 가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은 공간이 넓어도 비장애인과 비교당하고 차별당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장애인야학에서 마음 편히 공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전장야협 이사장은 “이제까지 국회 상임위 중 교육위원회만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김건희 씨 국민대 논문 표절이 안건으로 올라올까 봐 그랬다고 한다. 이것이 지난 2년간,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라며 민생을 제쳐두는 정치권을 질타했다.

박 이사장은 이제 장애인권리예산의 첫 출발을 교육에 놓자고 말했다. 그는 “이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도 못 받고 교육받지 못해서 자본주의 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해 중증장애인은 시설과 집구석에 처박혀 살아야 했다. 지난 22년간 이동권만 외친 게 아니라 장애인이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 권리를 외쳐왔는데, 사람들은 이동권만 이야기한다”면서 “시설과 집에서 나온 중증장애인이 삶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이 사회에 어디 있나. 어디에도 없다. 교육을 통해 인간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공간을 우리가 만들자”고 외쳤다.

기자회견 후, 전장야협은 교육위원회 간사인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면담을 했다. 간사는 위원회 안건 상정에 관한 권한을 가진다. 면담에 참여한 이학인 전장야협 활동가는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2월 법안소위에는 올릴 수 없으나 최대한 공청회 날짜를 빨리 잡아서 다음 회기 법안소위 때 안건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을 들었다”면서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을 민주당 당론으로 가져가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전장야협은 교육위원회 법안소위가 끝나는 23일까지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새로운 전달체계 구축에 예산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평생교육법에 대한 교육위원회의 심의를 촉구하는 농성장이 국회 앞에 세워졌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평생교육법에 대한 교육위원회의 심의를 촉구하는 농성장이 국회 앞에 세워졌다. 사진 강혜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