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3일 275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휠체어 11대 포함 30여 명, 경찰들이랑 기자들 모여서 승강장이 많이 혼잡한 상태입니다. 출입문 여유 가지고 취급 바랍니다.”
오전 7시 50분께 서울교통공사 보안관이 혜화역 승강장 출입문 이곳저곳을 오가며 무전기에다 대고 말한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보안관과 경찰들. KBS, SBS, JTBC 로고가 적힌 삼각대를 치켜든 기자들. 8시가 되자 카메라 서너 대가 출입문 건너편 활동가들을 비춘다. 줄지어 늘어선 휠체어 탄 활동가 옆에서 대학생 서너 명이 검은 매직펜을 들고 종이박스에 쓴다.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 비장애인도 살기 좋습니다.’ ‘장애인도 시민이다.’ ‘정말 모두가 함께 살고 있나.’ 지하철이라는 한 공간에서 ‘장애인 기본권’이 다르게 적힌다.
8시 10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승강장에 들어서며 275일 차 선전전 시작을 알린다. 어제 오세훈 서울시장과 나눈 공개 면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자, 박경석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어제 면담은 달이 아니라 손가락만 보게 만드는 대화였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장연이 ‘사회적 강자’라고 합니다. 철도안전법을 위반한 ‘중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강자는 권력을 쥐고 있는 서울시장과 기획재정부가 아닙니까. 서울시는 전장연의 시위를 극단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기획재정부가 장애인의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지 않는 것에는 침묵합니다.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지하철행동이 중죄라면,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가치는 누가 지킬 수 있습니까.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요구합니다. 오는 3월 23일까지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을 검토하고 반영해주십시오. 어제 면담 말미에 ‘진심이다’라고 두 번 언급하셨는데요, 우리가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할 때마다 모든 정치인이 진심이라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도 왜 장애인은 지금까지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진심이라는 말 대신 예산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주십시오.
그리고 시민 여러분, 정치권력과 일부 언론의 갈라치기에 흔들리지 말아주십시오. 저희는 100명 중 99명의 시민이 우리를 욕하고 혐오해도, 1명의 시민 곁에서 지하철행동을 포기하지 않고 외치겠습니다. 전장연과 함께하는 1명의 시민이 되어주십시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함께 살고 싶습니다.”
한 기자가 지하철을 탈 계획이 있는지 묻자 박경석이 답한다. “오는 13일까지 지하철 탑승 시도 없이 선전전을 진행합니다. 더 책임 있는 사회적 강자인 서울시와 기획재정부의 답변을 시민 여러분이 함께 요구해주십시오.” 경기도 파주에서 온 정윤상 씨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외친다. 환호성이 담긴 마이크가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에게 넘어간다.
“안녕하세요, 저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탈시설 운동을 하고 있는 김정하입니다. 어제 면담을 보니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상한 복지정책실장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있더라고요.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2014년 탈시설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로부터 권고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처럼 탈시설 정책을 이행하지 않는 나라를 위해 일반논평 5호를 발표해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 학대이자 차별 행위라고 다시 한번 밝혔습니다. 작년 9월에는 탈시설 가이드라인 143개 항을 발표해 국가가 시설을 폐쇄하고 탈시설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시설이 하나의 선택지’라고 합니다. 시설은 선택지가 아니다, 시설은 인권침해와 학대의 공간이다, 모든 사람은 자립할 수 있다는 인권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복지정책실장은 자립할 수 있는 사람, 탈시설의 대상을 선별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금 국가 정책이 부재해 가족의 부양 부담이 커지는 현실에서 장애인 부모가 느끼는 아픔과 두려움 뒤에 숨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는 책임입니다. 그 책임은 장애인, 가난한 사람, 노숙인,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2013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캐슬린 윈 총리는 그동안 발달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한 것에 대해 이렇게 공식 사과합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훼손되었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분리되어 잠재력, 안락함, 안전 및 존엄성을 강탈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와 같이 희망과 꿈을 가진 소년과 소녀, 남성과 여성입니다. 온타리오 주의 모든 개인은 우리의 지원과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같은 정치인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시와 정부는 장애인의 시설 수용 정책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보상하십시오. 그들이 지역사회에 나와 살 수 있도록 예산을 배정하고 정책을 만드십시오. 그리고 탈시설 가이드라인, 제발 좀 읽으십시오. 서울시와 정부가 그 자리에 걸맞은 책임을 다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8시 42분, 카메라 셔터 소리도, 고함소리도, 안내 방송도 들리지 않는다. 활동가도, 보안관도, 기자도 김정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이어서 연대의 목소리를 보태는 시민들의 발언이 쏟아진다. 크고 작은 피켓을 몸에 걸친 사람들의 눈동자와 미소가 박경득 서울대병원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안녕하세요, 서울대병원 노동자로 17년째 일하고 있는 박경덕입니다. 시민이면 누구나 배제와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건강할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하며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지하철 역사에서 수많은 장애인이 다치고 희생되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음을 압니다. 그 엘리베이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와 노인들입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권리를 외치는 우리가 장애인들의 투쟁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겠지요. 전장연이 오는 13일까지 지하철 탑승 시도를 중단한다는데, 이제 시민들이 이 투쟁에 탑승해주시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8시 52분, 선전전을 찾은 대학생들도 발언으로 힘을 보탠다. 남나경(고려대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신영미(고려대 여학생위원회), 이혜나(고려대 소수자인권위원회)의 눈길이 각자 준비해 온 스마트폰 화면 속 문장에 머문다.
“영상으로 투쟁을 접한 뒤 서럽고 야속한 마음에 나왔습니다. 비장애인이 아닌 여러분의 동료라는 마음으로 오늘 배운 것들을 주변에 나누며 함께하겠습니다.” “질병과 장애가 없고, 젊고 건강하고, 표준이자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신체만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육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가 아닙니다.” “소수자로서 예민하다, 불편하다, 시끄럽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9시 7분,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마무리 발언을 한다. “어제 서울시 면담을 보니, 서울에 사는 장애인은 언젠가 시설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2021년에는 ‘20년 동안 외친다’, 2022년에는 ‘21년 동안 외친다’는 구호가 이제 ‘22년 동안 외친다’가 되었습니다. 서울시는 장애인이 서울시민이 아니라면서 우리의 기본권을 박탈했지만, 우리는 해마다 하나씩 올라가는 이 연도를 멈추고 싶습니다. 시민 여러분, 국가가 장애인의 시민권을 보장해 저희가 지하철행동을 멈출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