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일 274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들이 혜화역 승강장에 서 있다. 사진 하민지

오전 8시, 혜화역 승강장 5-4칸 앞. 티포(T4) 노래가 울려 퍼진다. 활동가들은 승강장 벽면에 티포 스티커를 붙인다. 만원 열차가 쉴 새 없이 지나다닌다. 열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바쁘게 5-4칸 앞을 지나쳐 간다. 서울교통공사 직원과 경찰 50여 명도 삼삼오오 담소를 나눈다. 지하철 선전전도, 이곳을 지나가는 시민도, 이곳으로 출근하는 서울교통공사 직원도 모두 일상이 됐다.

8시 8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퀴즈를 낸다. “우리의 투쟁을 기록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1번, 밥을 먹는다. 2번, 시를 쓴다. 3번, 영상을 찍는다.” 수리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대답한다. “3번!” 오늘(2일) 선전전 주제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아래 영화제)라는 걸 알고 하는 말이다. 박경석이 말한다. “수리야 정답! 다 맞지만, 오늘은 저항의 스크린을 켜는 영화제 활동가들 이야기를 좀 들어볼게요.”

김혜인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도착하는 그곳!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11분, 김혜인 영화제 활동가가 말한다. “지금 카메라 들고 있는 동지들 보이시죠? 영화제는 이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21회를 맞았습니다. 21회 영화제 슬로건은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입니다.” 박경석이 노래한다. 일본 만화영화 ‘은하철도999’의 한국어 주제가를 부른다.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김혜인이 발언을 이어간다. “지난 1년간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고 연결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열차를 함께 타고 가면 좋겠습니다.” 박경석이 묻는다.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도착하는 곳은 어디예요?” 김혜인이 대답한다. “모두가 다를 것 같아요. 자신이 타고 있는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제가 탄 열차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로 갑니다.”

8시 17분, 박경석이 말한다. “오늘 오후 3시 30분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면담합니다. 원래는 1시간이었는데 30분만 할 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어요. 오세훈 시장이 우리와 만나는 것에 관해 다른 장애인단체들이 항의했다 하더라고요. 다른 단체 면담시간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 단체당 면담시간을 30분으로 공평하게 나눴다고 합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열린 지하철 문 안으로 승강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열린 지하철 문 안으로 승강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이 이어 발언한다. “오세훈 시장이 우리더러 사회적 강자래요. (지난달 3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그랬다 하더라고요. 강자는 자신의 권리가 이미 보장된 사람이 강자예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은) 강자와 약자를 또 갈라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걸 잘 설명하려면 30분으론 매우 부족할 것 같은데, 잘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응원해 주실 거죠, 사회적 강자 여러분?”

8시 21분, 박김영희 영화제 운영위원이 발언한다. 선전전에 참석하지 못해 전화통화로 말한다. “영화제가 올해로 21년째 됐습니다. 우리는 20년 넘게 투쟁하면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살아가고 있단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탄 열차는 더는 어둠 속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과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올해 영화제 오셔서 이런 것들을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중년 여성의 시민이 박경석에게 다가와 말한다. “아우 시끄러워요. 아저씨, 아저씨가 지금 하는 거, 아무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 안 하는 거 아시죠? 출퇴근 시간은 피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가 나에게 오더니 자신의 발을 발차기하듯 쭉 뻗는다. 그가 말한다. “나도 장애인이에요. 몸 성한 데 있는 줄 알아요? 당신들 이러는 거 아니에요.”

미국에서 온 로리 씨가 목발을 짚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미국에서 온 로리 씨가 목발을 짚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28분, 미국에서 온 로리 씨가 목발을 짚고 발언하러 나온다. 박경석이 인사를 건넨다. “하와유? 컴히어. 인트로, 인스트로, 인스트로듀스? (잘 지내요? 이리 오세요. 저, 자, 자기소개?)” 로리가 대답한다. “저 한국말 할 수 있어요.” 박경석과 로리가 마주 보며 활짝 웃는다. 로리가 말한다. “ 장애인 지하철 투쟁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이 배우려고 왔습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8시 31분, 다른 사람의 발언을 경청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김솔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인천장차연) 대표가 마이크를 잡는다. “5시에 일어나서 혜화역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인천장차연도 정기적으로 오전 선전전에 결합하기로 했습니다. 자주 만납시다.” 조은소리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는 선전전 현장 이곳저곳을 오가며 오늘의 풍경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는다.

수리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유언을 만난 세계』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수리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유언을 만난 세계』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33분, 박경석이 말한다. “경기도에 사는 수리야가 오늘 선전전에 안 늦으려고 어젯밤에 서울에 왔대요. 오늘 『유언을 만난 세계』 읽어 준대요.” 수리야가 말한다. “‘유언을 읽은 사람들’ 중에서 이덕인 열사 부분 읽을게요. 오늘 인천(장차연) 동지들도 오셔 가지고.”

김솔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솔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낭독을 들은 김필순 전장연 탈시설위원회 간사가 말한다. “이덕인 열사의 의문사를 조사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와의 면담 자리에 배석하고 있습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보수적 성향이어서 걱정되지만 잘해 보겠습니다.” 김솔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8시 45분, 박세영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사무국장, 김현아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료지원가가 연달아 발언한다. 정이음 영화제 활동가는 이들의 모습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송출한다. 영화제 집행위원인 은석 영상활동가가 선전전의 모든 장면을 촬영 중이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대표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추운지 외투 모자를 푹 뒤집어썼다. 배재현 서울장차연 개인대의원은 자꾸 눈이 감기는 모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장연과의 면담을 하루 앞둔 1일 낮, 장애인거주시설을 방문하고 탈시설에 반대하는 장애인 부모를 만났다. 8시 53분, 박경석이 말한다. “시설에서는 한 방에 평균 4.7명이서 지내고요, 평균 거주기간은 18년입니다(2020, 보건복지부 장애인거주시설 전수조사). 오세훈 시장, 당신이 시설에 가서 그렇게 사세요. 그걸 선택권이란 이름으로 얘기하는 건 명백하게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입니다. 시장님께 이렇게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활동가들이 박경석에게 환호를 보낸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수동휠체어 바퀴가 노란 선 안에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수동휠체어 바퀴가 노란 선 안에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이 발언을 이어간다.

“오세훈 시장이 갑자기 이러더라고요. 전장연이 초점을 바꾼다, 장애인권리예산이라 이름 붙이면서 사실은 탈시설 예산이 70~80%라더라. 여러분, 탈시설 예산이 이것밖에 안 되나요? 장애인권리예산의 100%가 탈시설 예산입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탈시설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 안 필요한가요? 저상버스는 안 필요한가요? 장애인콜택시는요? 고속버스는요? 고속버스도 당연히 필요한데 한 대도 없네. 교육권, 노동권, 건강권은 안 필요한가요? 탈시설하고 나면 학교도 가고 일도 하고 건강관리도 해야 되잖아요?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는 지역사회의 모든 기반이 탈시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세훈 시장, 15년 전에 그랬습니다. 아직 저상버스도 없고, 장애인이 살 집도 없고 해서 탈시설은 안 된다고요. 그래서 15년 동안 죽어라 저상버스 만들어라, 지원주택 제공해라 하면서 투쟁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세훈 시장님, 거짓말하지 마세요. 장애인권리예산 중 탈시설 예산은 100%예요. 지역사회에 있는 모든 장애인을 위한 것이 바로, 감옥 같은 거주시설을 박차고 나온 모든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갈라치고 억압해도 우린 모든 장애인이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쟁취할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왜 자신 있는 줄 아세요? 살아있으니까요. 살아있는 동안에 싸울 거니까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인 은석 영상활동가가 벽면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인 은석 영상활동가가 벽면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9시 4분, 이상엽 영화제 대표가 마지막으로 발언한다. 휴대전화 너머로 제주도에 사는 이상엽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타는 열차는 차별과 배제 없는 세상으로 가는 열차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으로 갑시다. 좌절이 아니라 희망이 이길 것입니다.”

9시 7분, 선전전이 끝나자마자 박경석이 제일 먼저 혜화역을 빠져나간다. 평소 같으면 이 사람, 저 사람과 인사하느라 늦게 나갔을 텐데 오늘은 아주 빠르게 나갔다. 그는 전장연 대표단 중 유일하게 오 시장과의 면담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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