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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가 되니 색색의 피켓을 든 피플퍼스트성북센터 사람들이 한 줄로 쫙 선다. 아직 앰프는 오지 않았다. 박경석이 오늘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을 소개하며 시작을 알린다.

“피플퍼스트성북센터 오셨습니다! 와~ 노들센터 왔구요! 와아~ 노들장애인야학, 들다방에서도 오셨습니다! 와~ 그리고 리슨…시티! (옆에 있던 김유미 노들야학 교사가 박경석에게 속삭인다) 리슨투더시티!”

영상 촬영을 하고 있던 리슨투더시티 박은선이 손을 흔든다.

8시 4분, 천성호 노들야학 교장이 피켓을 잔뜩 들고 나타난다. 앰프는 보이지 않는다. 박경석이 “앰프는?” 묻자 탁영희 노들야학 교사가 답한다. “엘리베이터 타고 있어요.”

8시 7분, 앰프가 왔다. 탁영희가 박경석에게 마이크를 건네준다. 드디어 마이크를 손에 쥔 박경석. 사람들에게 묻는다. “혹시 오늘 내가 발언하겠다! 싶은 사람 손 들어 보세요.”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 임성재, 남태준 등이 번쩍 손을 든다. 발언에 적극적이다.

8시 9분, 이승준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 차별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발언이 끝난 후 노들야학 교사이자 들다방 사장인 박준호가 나온다. 박경석이 호명했기 때문이다. 박준호는 “하하하” 소리는 내지만 얼굴에는 웃음보다 쑥스러움과 이름이 불린 것에 대한 민망함이 옅게 띄워져 있다.

“안녕하세요.” 그의 안경에 뽀얀 김이 서린다. “제가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하하… 지금 머리가 하얀데… 하하하….” 그가 바닥을 보며 다시 하하하 소리로만 웃는다.

그는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과 함께 일하는 들다방의 사장이다. 박준호는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들은 노동할 기회가 너무 적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가 발언을 마치자 박경석이 개구쟁이처럼 묻는다. “머리가 하얗다고 했는데 제 머리가 하얄까요, 준호쌤 머리가 하얄까요?” “고장쌤 머리는… (박경석의 하얀 머리카락을 보고는) 아, 하야시군요 하하하…” 박준호는 선전전을 하는 동안 박경석의 곁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피켓을 들고 함께 서 있다.

8시 15분, 박경석이 내일 있을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에 관해 이야기한다.

“오세훈 시장이 우리가 ‘서울시에 논리적으로 밀리니깐 갑자기 탈시설 예산을 요구하며 기조를 바꿨다’고 왜곡하더라고요. 엘리베이터 100% 설치 요구에 서울시가 2024년까지 하겠다고 하니깐 우리가 탈시설 예산을 요구한데요. 이건 사실과 다릅니다. 우리는 2021년 12월 3일 출근길에 지하철 타면서부터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탈시설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라고 계속해서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요구했어요.

우리는 기조를 바꾼 적이 없는데,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말하니 공식적으로 바꿔볼까 합니다. 이제까지는 기재부 장관에게만 요구했는데 이제부터는 서울시장에게도 요구할게요. 기존 요구(2022년까지 지하철 100% 설치하겠다고 했는데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 휠체어리프트 타다가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사과)에 더해서, 서울시에도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는 걸로 바꾸려고 하는데 어떠신가요? 좋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 보세요.”

사람들이 손을 든다. 노들야학 교사 박누리, 탁영희는 혜화역 벽면에 티포(T4) 스티커를 붙인다. 박경석이 이어 말한다.

“엘리베이터 이용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죠. 노인도, 교통약자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1역사 1동선에 엘리베이터 ‘2대 이상’ 5년 이내 설치를 요구하고 싶은데 동의하십니까? (네!) 서울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작년에 300개, 올해 400개 하는데요, 서울보다 더 늦게 시작한 경기도는 올해 500개 해요. 앞으로 3년 후엔 천 개를 하겠데요.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가 경기도보다 밀리면 안 되죠. 내년에는 서울에서 천 명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습니까? (네!)”

8시 29분, 리슨투더시티에서 활동하는 박은선이 말한다. 그는 재난과 장애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면서 노들야학에 와서 재난대피훈련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코로나 때 ‘장애인과 우울’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장애인 500명, 비장애인 500명을 설문조사 했어요.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두 배 정도 더 우울하다고 나왔는데 눈여겨본 부분은 ‘직업이 없는’ 장애인이 직업이 있는 장애인보다 더 우울하다는 점입니다. 일할 수 있는데 일자리가 없으니 더 우울한 거예요. 그리고 재난 연구를 했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아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다 죽어요. 불이 났을 때 누가 얘기해줘요? 내 옆에 있는 사람, 이웃 사람이 얘기해주잖아요. 지진 나면 동네 사람들이 구해줘요. 사고 나면 직장 동료들이 그 사실을 알려주는데 장애인들은 고립돼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이런 걸 ‘사회적 자본’이라고 하는데, 장애인은 사회적 자본이 너무 없어요. 이걸 개선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가고 직장이 있어야 해요.”

8시 35분, 박경석이 말한다. “이제 지하철에서 기재부에, 서울시에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합시다! 지하철에서 두 명의 책임자에게 요구하는 투쟁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일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박경석의 말에 임성재가 번쩍 손을 들고나온다.

“구청에 (장애인복지일자리) 전일제로 합격했습니다. 동사무소 쪽에 배치됐는데 거기서 저를 못 받겠다고 해서 지금 포기각서를 써놓은 상태입니다. 거기서 답변 온 게 제가 자진해서 썼으니 2월 17일까지 답변 주면 재배치할 곳을 마련해주시겠데요. 팀장과 주무관님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아주 폭력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저한테 ‘일도 못 하면서 돈 욕심은 많다’고 했어요. 다시 면담하는 자리에서 팀장이 자기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시네요.”

그 말을 골똘히 듣고 있던 박경석이 마이크를 받아 말한다. “혹시 또 구청이 그런 말을 하거나, 일할 수 있는 곳에 재배치하지 않으면 연락주세요. (장난스럽게) 그럼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대표님이 싸우러 쳐들어가실 겁니다. (사람들이 웃는다) 이형숙 대표님 결의 발언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하철 문이 열린다. 지하철 내부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지하철이 토하듯 사람들을 내보낸다. 박경석과 선전전 참여자들 사이에는 한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이 있다. 혜화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그곳을 바쁘게 채우며 지나간다. 어딘가로 출근하는 사람들. 이형숙이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박경석의 옆에 가 선다.

8시 42분, 이형숙이 말한다. “여전히 강동구청을 상대로 우리가 제대로 싸우지 못한 것 같아요.”

조금 전까지 감기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던 이형숙이었다. “일도 못 하면서 돈만 밝힌다는 말, 저는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시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 못하고, 잘하고의 기준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목소리가 강하고 또렷하다. 목소리에 빈틈이 없다. “임성재 동지가 강동구에서 잘 노동할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할 건데 함께하실 건가요? (네!) 2024년도에는 서울시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 천 명 반영할 수 있도록 힘차게 투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형숙이 동그란 오른손을 사선으로 들며 “투쟁” 외친다.

8시 44분, 탁영희가 책 『그냥, 사람』(홍은전, 봄날의책)을 낭독한다.

“그들은 불에 타 죽었고 호흡기가 떨어져 죽었고 맹장이 터져 죽었다. 맞아서 죽었고 분노해서 죽었고 절망해서 죽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복지는, 치사할 만큼, 높은 곳에 있거나, 턱없이 앙상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다. …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 (57~58쪽)

8시 51분, 탁영희가 운다. 옆에 있던 박경석에게 책을 쑥 들이민다. “여기 좀 읽어줄 수 있어요?” 박경석이 눈으로 ‘여기’를 찾자 탁영희가 손가락으로 짚는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소, 돼지에게 하듯 장애인의 몸에 1~6급의 등급을 매겨 각종 서비스를 제한하고, 생계 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양의무자를 규정하고 그 책임을 떠넘긴다.”

박경석이 책에 박힌 작은 글자를 떠듬떠듬 읽어 나간다. 그사이 숨을 고른 탁영희가 다시 책을 받아 읽는다. 탁영희는 이날 2012년부터 2017년까지 1,842일간 이어진 광화문농성과 그 농성장을 같이 지킨 영정 속 송국현, 차별받는 사람들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경이로움에 관해 쓴 홍은전의 글을 읽었다.

9시 6분, 탁영희의 낭독이 끝나고 박경석이 말한다.

“내일 오세훈 시장 면담이 있습니다. 힘을 모은다는 의미로 내일은 더 많은 사람이 오면 좋겠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오늘 장애인거주시설을 방문한데요. 거주시설 가서 탈시설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지 알리고 싶나 봐요. 오세훈 시장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 제1호로 기소할까 봐요. 탈시설은 전장연의 주장이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이라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철이 온다. 승강장에 옅은 바람이 불자, 박경석의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흔들린다. 탁영희가 읽은 홍은전의 글에서 박경석은 자신의 손목과 버스 안 운전대에 수갑을 채운 채 버스를 점거하고, 그 두툼한 손으로 홍은전의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이 사회에, 많은 사람에게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노들야학이 22년 전 지하철에도, 오늘 혜화역 승강장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