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0일 280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선전전 참가자들에게 연신 인사를 건넨다.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사람들 더 올 거라서요.” 혜화역 승강장 5-3과 5-4 사이, 박경석의 휠체어가 우두커니 멈춰 선다. 왼쪽에는 휴대용 마이크 앰프와 토끼 인형 두 개가, 오른쪽에는 ‘전장연과 함께 달을 보아요’라고 적힌 문구와 함께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는 그림이 놓여 있다. 오전 8시께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입꼬리를 힘껏 끌어올리며 반짝이는 눈으로 그가 웃어 보인다.
8시 7분, 박경석이 280일 차 선전전을 시작하며 혜화역 엘리베이터의 유래를 설명한다. “1999년 어느 날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혜화역에서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사망… 아니 크게 다쳤습니다. 아직 살아계시고요, 그때 전치 4주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 추락사고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촉발했습니다. 혜화역 2번 출구로 나가면 ‘혜화역 장애인 휠체어 추락사고 이후, 여기서 이동권을 외치다’라고 적힌 동판이 있습니다. 서울지하철 역사 가운데 가장 먼저 엘리베이터가 생긴 곳이 바로 혜화역입니다.”
8시 10분, 박경석이 좌중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는다. 연윤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간사다. “오늘도 멋진 분이 많이 오셨는데, 먼저 우리 연윤실 동지를 인터뷰하겠습니다. 나와주세요.” “안녕하세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에서 활동하는 연윤실입니다.” 박경석(아래 박)과 연윤실(아래 연)의 일문일답이 이어진다.
박: 인터뷰 전에 잠깐 광고 하나 보고 가겠습니다. ‘전장연과 함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아요.’ 전장연 유튜브 구독자 수가 3,180명인데 오늘 목표는 3,190명입니다. ‘구독’과 ‘좋아요’ 많이 눌러주세요. 자,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탈시설연대가 왜 만들어졌나요. 그냥 장애인이라고 안 하고 왜 탈시설 장애인이라고 하나요.
연: 독일에 ‘T4 프로그램’이라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라고 많이들 들어보셨죠. 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말합니다. 그런데 홀로코스트에 앞서 나치는 장애인 수십만 명을 생체 실험하고 집단 학살했어요. 비용을 이유로 장애인을 (시설에) 가둬서 죽인 겁니다.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우리나라도 독일의 T4 프로그램과 비슷하죠. 그래서 우리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우리나라 정부를 ‘한국판 T4’라고 부릅니다. 탈시설연대, 탈시설 장애인이라고 이름을 붙인 건 이렇게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조직적으로 알리기 위함입니다.
박: 이야. 탈시설연대 소개해달라니까 생체 실험의 역사부터 말해주네요. 이제 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여전히 ‘아이들이 시설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누구죠.
연: (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풀네임은 잘 모르겠어요.
박: 맞아요. 시설을 늘려달라고 이야기하는 부모들인데, 미국의 한 종단 연구를 보면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90%가 처음에는 탈시설에 반대했다고 해요. 그런데 국가가 책임지기 시작하니까, 지원주택 만들고 활동지원서비스 제공하면서 삶의 변화를 끌어내니까 전부 찬성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그 흐름을 겪고 있습니다. 부모가 반대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설을 늘려야 한다는데, 이거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것 아닙니까. 자료가 있을까요.
연: 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를 보면 장애인의 지역사회 완전 통합과 참여를 규정하는 조항이 있어요. 단순히 시설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저희가 구호 외치는 것처럼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 제반 서비스가 다 갖춰져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구호인 거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7년에 ‘일반논평 5호’, 2019년에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이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시설 수용이 얼마나 많은 조항을 위반하고 있는지 밝히고 있어요.
박: 하나하나 콕콕 집어줘야지, 그렇게 말하니까 모르겠어요.
연: 구체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당사국은 모든 형태의 시설 수용을 폐지하고, 시설 신규입소를 금지해야 하며, 시설에 대한 투자를 막아야 한다’, ‘시설 수용이 장애인의 보호 조치 혹은 선택으로 고려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박: 아 왜요, 시설 들어가고 싶어요, 시설 들어갈래요, 라고 선택할 수 있잖아요.
연: 평균 거주기간이 18년, 한 방에 4.7명이 생활해야 하는데도요(2020, 보건복지부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 장애인의 현실을 모르고, 탈시설 가이드라인도 마음대로 위반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직접 알려주려고 합니다. 오늘 오후 2시 서울시청 앞에서 오세훈 고발대회가 있어요. 함께 가시죠.
8시 35분, 종합예술단 ‘봄날’이 박경석과 자리를 바꾼다.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고, 꿈이 꿈으로 그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말한 뒤 노래 세 곡을 잇달아 부른다. 미국에서 온 로리 씨가 목발을 짚은 채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 흔든다. 고음의 소프라노가 승강장에 울려 퍼지자,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의 눈동자가 함께 커진다.
“고운 꿈 깨어나면 아쉬운 마음뿐 / 하지만 이제 깨어요 / 온 세상이 파도와 같이 / 큰 물결 몰아쳐 온다 / 너무도 가련한 우리 / 손에 손 놓치지 말고 / 파도와 맞서 보아요” (<이 세상 어딘가에> 가사 중 일부, 김민기)
“우리가 원하는 건 선심이 아냐 / 헛된 동정과 작은 배려도 아냐 / 끝없는 폭력과 편견에 맞서 / 노동의 존엄을 되찾는 것” (<우리가 원하는 건> 가사 중 일부, 꽃다지)
박경석이 가슴 가득 무언가 차오르는 듯 말을 이어간다. “한 곡 더 듣고 싶은데, 벌써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렇게 가까이서 노래를 들으니 무척 행복합니다. 이야기와 노래와 선전전이라는 현장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막 납니다.” 8시 50분께 봄날의 공연은 변진섭의 노래로 막을 내린다.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서 오는 사람들 / 모두 다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가사 중 일부, 변진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