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4일 282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 모여 ‘장애인 권리’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 모여 ‘장애인 권리’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오전 7시 50분, 가벼운 아침 인사가 오간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이 서로 고개를 숙이며 안부를 묻는다. 오늘자 경력 운용계획이 적힌 보드판을 든 경찰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멀리서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짐수레를 끌고 들어온다. 유금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 활동가는 긴 갈색 머리를 쓸어올리며 사람들에게 피켓을 나눠준다.

7시 55분, 벽과 의자와 바닥에 ‘장애인 권리’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이정표에 스티커를 붙이자 보안관 네다섯 명이 달라붙어 곧바로 떼어낸다. “이정표랑 안내판에는 붙이시면 안 돼요.” 구겨진 스티커 뭉치가 바닥에 이리저리 나뒹군다. ‘UN 탈시설 가이드라인 준수’, ‘감옥 같은 거주시설 OUT’, ‘지역사회 함께 살자’ 같은 말들이 승강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사라진다.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8시 5분, 박경석이 지하철을 타겠다고 깜짝 발표를 한다.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에 이정표가 있었나요. 휠체어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죽어도 사과 한 번 안 했으면서 불법 부착물이라니요. 이건 장애인 권리 스티커입니다. 22년간 외쳐도 지켜지지 않는 장애인의 권리를 이제 스티커로 붙여가며 아침저녁으로 알리겠습니다. 전장연은 지하철을 타지 않습니다. 대신 전장야협이 장애인평생교육법을 외치며 지하철을 타겠습니다.”

8시 8분, 유금문이 마이크를 잡는다. 오는 23일까지 혜화역에서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이어간다고 밝힌 뒤 구체적인 일정을 설명한다.

“16일부터 일주일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전체회의(16일)와 법안심사소위원회(22일·23일)가 열립니다. 그런데 장애인평생교육법이 통과되기에는 전망이 썩 밝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16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일주일간 긴급 농성을 진행하면서 국회의원들을 만나 장애인평생교육법을 논의해달라고 압박할 예정입니다.”

8시 19분, 박경석이 장애인평생교육법에 대한 설명을 보탠다.

“2021년에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장애인평생교육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여야가 합의하고 교육부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는데, 2년째 법안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령기 중심 교육체계에서 장애인을 배제해 온 역사에 대해, 시설과 집구석을 나와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차별의 문제에 대해 왜 논의조차 하지 않습니까. 더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쇠사슬을 들고, 온몸에 락카를 칠해서 지하철을 타겠습니다.”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선전전에 참여한 박지성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왼쪽)가 박지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에게 마이크를 대고 있다. 사진 복건우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선전전에 참여한 박지성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왼쪽)가 박지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에게 마이크를 대고 있다. 사진 복건우

8시 25분, 박미주가 승강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한다. 박지성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박경석 옆에 서서 마이크를 들고 말한다.

“지난번에 삼각지역에서 선전전을 하는 활동가들을 봤는데, 그땐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지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회사 때려치고 신입 활동가가 되었으니, 앞으로 더 밝은 미래를 위한 긴 싸움에 함께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어 박지성이 박지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노들센터) 권익옹호활동가에게 “30년 만에 꽃구경을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어떠셨어요”라고 묻는다. 박지호가 “좋았어요”라고 짧고 굵게 대답한다.

8시 43분, 박철균 전장연 조직국장이 느지막하게 승강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에서 온 로리와 앨리스가 웃으며 그를 반긴다. 유금문은 전장연 유튜브 채널 유입 현황을 발표한다. “달 보기 운동 시작하고 신규 구독자가 192명 늘었습니다.” 박경석이 “192명이 늘었습니다”라고 되뇌며 환호를 유도한다.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왼쪽)가 장애인 활동가들을 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왼쪽)가 장애인 활동가들을 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왜 유튜브 채널을 활성화하려는 것인지 박경석이 직접 설명한다. “세상은 우리가 지하철을 탔는지, 락카를 칠했는지, 스티커를 붙였는지에만 관심을 가져요. 이제 그걸 넘어서 왜 이렇게까지 장애인 권리를 이야기하는지 유튜브를 통해서 알리려고 해요. 저보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도 유튜브를 많이 보더라고요(웃음). 시민들이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통로를 잘 만들어보자는 취지입니다.”

박경석이 한 명씩 콕 집어서 물어본다. “경찰서장님 구독하셨어요? (아직 못 했습니다) 경비과장님은 구독하셨어요? (오늘 와서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사람들도 전장연 유튜브 구독 좀 해주세요.”

8시 50분, 이수미 노들센터 권익옹호활동가가 장애인평생교육법을 다시 말한다.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 다니면서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자격증 취득 단계를 밟고 있는데 올해 안에는 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중증장애인은 시설과 집 안에 갇혀 살았습니다. 초중고 의무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장애인평생교육법이라는) 든든한 기반이 갖추어져야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선전전이 끝난 뒤 박경석 대표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고 있다. 사진 복건우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선전전이 끝난 뒤 박경석 대표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고 있다. 사진 복건우

9시 5분, 선전전이 끝나고 박경석이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1인 시위에 나선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 7명이 그의 수동휠체어를 둘러싼다.

“지하철 탑승하실 수 없습니다.”

9시 12분,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열차에 타기 위해 박경석이 보안관들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는다. 나무 판재로 만든 피켓이 보안관들의 허벅지와 종아리에 부딪히며 우그러진다. 혜화역장이 멀찍이 떨어져 경고 방송을 한다.

“역사에서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 연설 행위,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는 행위 등은 철도안전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즉시 시위를 중단하고 역사 밖으로 퇴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퇴거 불응 시 열차 탑승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지하철을 타려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막아서자 박 대표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복건우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지하철을 타려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막아서자 박 대표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복건우

박경석이 5-4 승강장에서 4-4 승강장으로, 3-4 승강장으로 이동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보안관 10여 명이 그의 휠체어를 앞질러 출입문을 막아선다. 박경석은 손에 든 마이크와 피켓과 스티커를 모두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제야 한 보안관이 이동식 안전발판을 가져온다.

9시 21분, 박경석이 열차에 몸을 싣고 승강장을 빠져나간다. 모두가 떠난 자리를 경찰 열댓 명이 꼿꼿하게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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