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0일 286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선전전에 참여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피켓을 목에 건 채 승강장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사진 복건우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선전전에 참여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피켓을 목에 건 채 승강장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사진 복건우

“어, 아무도 안 왔네… 안녕하세요, 새로 오셨죠?”

오전 8시가 되자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얼굴이 익은 사람을 찾다가 박경석과 대학생 장은아 씨의 눈이 마주친다. 이날 처음으로 선전전에 참여한다는 장 씨가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촉구’ 피켓을 들고 대열에 합류하자, 황나라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전장야협) 활동가가 두 사람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는다. 박경석이 싱긋 웃어 보인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싶다는 시민의 권리를 22년간 외쳤습니다. 2021년 12월부터 47차례에 걸쳐 출근길에 1시간씩 지하철을 탔고, 지난주부터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하철 선전전은 오늘 286일 차를 맞았습니다.”

박경석이 근 2년간 이어진 지하철 시위를 요약해 설명한다. 큰 키의 남성 기자들이 무릎을 구부렸다 펴면서 박경석을 찍는다. 선전전에 나선 활동가 9명은 박경석과 함께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친다.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하라!”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진행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286일 차 선전전이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그 뒤로 피켓을 목에 건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책을 든 한명희 전장연 조직실장이 흐릿하게 보인다. 사진 복건우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진행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286일 차 선전전이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그 뒤로 피켓을 목에 건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책을 든 한명희 전장연 조직실장이 흐릿하게 보인다. 사진 복건우

8시 10분, 조희은 전장야협 활동가가 장애인평생교육법 논의 상황을 설명한다. “지난주 수요일(15일)부터 국회 교육위원회에 장애인평생교육법 논의를 촉구하는 아침 선전전을 혜화역에서 진행하고 있는데요, 교육위 전체회의가 열린 목요일(16일) 국회 정문 앞에 농성장을 새로 설치했습니다. 오는 수요일(22일)과 목요일(23일) 열리는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국회의원들한테 엽서도 쓰고 피켓팅도 하면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필요성을 알릴 예정입니다.”

국회에 발의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장애인평생교육법은 안건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지난 16일 열린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유기홍 교육위원장은 이렇게 당부했다. “저와 조해진 전 교육위원장이 같이 발의한 장애인평생교육법이 있습니다. 제정법안이라 공청회가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꼭 공청회를 실시할 수 있도록 두 간사께서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8시 15분, 박경석과 조희은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공청회가 언제쯤 열릴지 물어보니까 2월에는 일정이 꽉 차서 3월은 돼야 시간이 날 것 같다고 하더군요. 빠르면 3월입니다. 공청회가 끝나야 법안소위에 올라가는데, 법안소위 논의 여부는 아직 모른다고 합니다. 희은, 생각하고 있는 해법이 있을까요.”

“음,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까지는 어렵겠지만 올 상반기에는 제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슨 소리예요. 지하철을 막든 기차를 막든 비행기를 막든 국회를 막든 420 전에는 반드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해야 합니다.” 참여자들이 두 사람에게 환호를 보낸다.

스무 돌을 맞은 노들장애인야학을 기념해 나온 책 '노란들판의 꿈(홍은전, 2014, 봄날의책)'의 한 대목을 한명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실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스무 돌을 맞은 노들장애인야학을 기념해 나온 책 '노란들판의 꿈(홍은전, 2014, 봄날의책)'의 한 대목을 한명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실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8시 18분, 한명희 전장연 조직실장이 책 《노란들판의 꿈》 두어 꼭지를 낭독한다. 스무 돌을 맞은 노들장애인야학을 기념해 당시 교사로 있던 홍은전 기록활동가가 보고 들은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장애인들의 삶과 투쟁을 다룬 꼭지 ‘인간답게 살고 싶다’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잠시 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열차는 점점 속도를 내더니 이내 플랫폼을 빠져나갔다. 그때였다. 박경석 교장과 몇 명의 장애인이 야학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선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 30년 동안 방구석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의 분노와 절망도 세상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마치 낮달 같은 존재들이었다. 존재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았던 삶. 뒷방에 밀쳐지고 산골짜기에 버려졌던 사람들.”

취재 기자 4명이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옆에 조르르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한 기자가 얼어붙은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박경석이 한명희의 낭독을 이어받아 장애인을 ‘2등 시민’으로 여겨 온 30년 세월을 증언한다.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선전전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한 손에 책 ‘노란 들판의 꿈’을 든 채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선전전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한 손에 책 ‘노란 들판의 꿈’을 든 채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우리는 병신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병신으로 살고 싶습니다. 30년 동안 집구석에서 갇혀 지냈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주더니, 자신들이 당장 30분 늦으니까 저렇게 욕을 하는군요. 이제 그 병신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시다. 당당한 병신으로 살아봅시다!”

8시 35분, 장은아가 말을 보탠다. “지난해 4월 지하철 탑승 시위에 함께한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모임인 평화나비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박경석 대표의 30년 외침이 지난 30년간 이어져 온 수요시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려면 장애인평생교육법과 장애인권리예산이 꼭 필요합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9시가 다가오자 박경석이 선전전 대열을 정리한다. 출입문 옆에 나란히 선 활동가들이 경찰을 등지고 카메라를 바라본다. “장애인에게 권리를!” 활동가들의 손짓과 표정을 담으려는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날카롭게 터져 나온다. 박경석이 마이크를 든다.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기자회견 현장. 휠체어 탄 장애인 활동가들을 찍는 사진 기자들, 활동가들의 말을 받아 적는 취재 기자들, 출입문 앞에 늘어선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승강장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다. 사진 복건우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기자회견 현장. 휠체어 탄 장애인 활동가들을 찍는 사진 기자들, 활동가들의 말을 받아 적는 취재 기자들, 출입문 앞에 늘어선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승강장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다. 사진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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