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1일 287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7시 57분, 이미 승강장에는 몇몇 사람들이 와있다. 전동휠체어의 큰 부피로 인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네 사람(이수미, 이규식, 박종희, 유진우)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8시, 비장애인들이 후다닥 달려와서 옆에 선다. 그러나 아직 앰프, 피켓 등이 오지 않았다.

8시 4분, 사람들이 계속 기다리며 서 있다. 조금 늦는 걸까. 아무 안내가 없어서 기자는 초조한 마음에 김필순 전장연 활동가에게 전화한다. 긴 통화연결음 끝에 김필순이 숨이 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지금 카트 내려가고 있어요.”

잠시 후, 김필순이 엘리베이터 쪽에서 카트를 끌며 다급하게 온다. 카트가 오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카트에 실린 피켓을 나눠 가진다. 이날 피켓은 장애인평생교육권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으로 가득했다.

김필순 전장연 활동가가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그 옆에서 한 활동가가 “국회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지금 당장 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필순 전장연 활동가가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그 옆에서 한 활동가가 “국회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지금 당장 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지난 16일,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이번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21~22일 진행)에는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으나,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교육위원회 간사)으로부터 공청회 날짜를 빨리 잡아서 다음 회기 법안소위에선 1호 안건으로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현재 전장야협, 전장연 등은 올해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전까지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집중 투쟁하자고 결의한 상태다.

김필순이 앰프를 켜고 이규식에게 마이크를 잠시 넘긴 뒤, 전장연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준비한다. 도와줄 손이 없어 그는 정신없어 바빠 보인다. 이규식은 사람들에게 뒤쪽으로 피켓을 들고 서달라고 요청한다. 잠시 대열 정비를 하느라 승강장은 어수선하다.

8시 7분,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온다. 오자마자 이형숙에게 마이크가 다시 넘어간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혜화역 선전전 287일 차입니다. 화요일 담당인 노들센터 오셨고요, 성동센터 오셨습니다. 또 연대 단위 어디서 오셨죠?”

이형숙이 숨 고를 틈조차 없이 출석 체크를 한다.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송파솔루션센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시민 박지원 등이 참석했다. 말을 하는 이형숙의 목소리는 낮게 갈라져 있다.

현장을 살피던 이형숙이 반대쪽으로 건너가 김민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에게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맡긴다.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하는 김민재의 눈은 핸드폰 화면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첫 생중계에 대한 긴장이 느껴진다.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 김민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전장연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 김민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전장연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20분, 정지원 송파솔루션센터 활동가가 말한다. “투쟁 현장에 나오면 자립생활센터에서 왜 자립생활사업을 하고 활동지원서비스를 계속 늘려가야 하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몇 번 나온 적은 없지만 항상 이 자리를 채우는 활동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의 옆에 선 고예지 활동가가 이어 말한다. “이곳에 온 지 7년이 됐는데 7년째 변한 게 없습니다. 그 사이 저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되는데 가까운 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남편과 유아차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아직도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가 너무 개탄스럽습니다.”

8시 23분, 김필순이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꺼내달라고 요청한다. 사람들에게 전장연이 하고 있는 달보기운동을 소개한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전장연 운동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달보기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달보기운동이란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자’면서 전장연이 지하철행동을 하는 이유를 시민들에게 잘 알리는 운동이다. 구체적으로는 전장연 유튜브 구독자 수를 늘리는 게 목표다. 현재 전장연은 유튜브를 통해 장애인권리예산을 설명하고 각종 사안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김필순이 “유튜브 구독 누르셨죠?”라고 묻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김필순 전장연 활동가의 안내에 따라 전장연 유튜브 ‘구독’을 누르고 있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김필순 전장연 활동가의 안내에 따라 핸드폰을 보며 전장연 유튜브 ‘구독’을 누르고 있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시민 박지원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시민 박지원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26분, 연대하러 온 시민 박지원이 나온다. 그는 쑥스러운 듯 말한다. “지난달에 부지런히 나오다가 준비하는 자격증 시험이 있어서 공부하느라 잠시 못 나왔어요. 최근에 1차 시험에 합격했습니다(사람들이 환호한다). 이 자리에 와야지만 느낄 수 있는 현장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계속 연대하며 종종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8시 30분, 어느덧 박경석 대표가 와 있다.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라옥란 사무장, 박나래·유지원 조직부장이 발언한다. 유지원 조직부장은 “오늘 지하철에서 비마이너를 읽으면서 왔다. 박경석 대표님이 안 계셔서 혹시나 (잡혀갔나)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다행이다”라면서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에게도 달보기운동을 알려서 전장연 유튜브 구독자 수를 많이 확보하겠다”고 약속한다. 이형숙과 박경석이 크게 환호한다.

어느덧 승강장은 사람들로 빼곡하게 찼다. 김필순이 성동센터에 발언을 요청하니 참가자의 4분의 1이 앞으로 나선다. 모두 성동센터 사람들이다. 대규모의 사람이 이동하니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이 빠르게 달려 나와 자리를 정돈한다. 시민들이 이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통로 확보를 위해 노란 선은 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성동센터에서 명근철, 이미정 활동가가 발언한다. 이미정은 언어장애가 있다. 그의 말에서 “엘리베이터”라는 단어, 맨 마지막에 외친 “투쟁”이라는 단어 외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이미정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미정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44분, 김필순이 “늦게 오셨지만 마이크를 좋아하는 분께 마이크를 넘기겠다”라며 박경석에게 사회자의 자리를 넘긴다. 사람들이 깔깔 웃는다.

박경석이 민망한 듯 웃으며 “오늘은 진짜 피곤하더라고요” 하면서 지각한 이유를 밝힌다. “저는 마이크도 좋아하고 매일 아침 유튜브 구독자 수 확인하는 게 삶의 기쁨입니다” 하면서 달보기운동을 한 번 더 소개한다.

박명훈 다큐인 영상활동가가 박경석을 촬영한다. 강희석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활동가는 뒤에서 오늘 낭독할 『노란들판의 꿈』 책 페이지를 확인한다. 박경석이 계속 말한다.

“제가 옛날에 다쳐서 5년 동안 골방에 있을 때 저희 어머니가 ‘죽어도 천당은 가야 한다’ 해가 지고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니까 한 달에 네다섯 번 외출한 거죠. 그때 저는 내 스스로 갇혀서 안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2001년도에 이동권 투쟁할 때 ‘장애인의 70.5%가 한 달에 다섯 번도 외출하지 못한다’는 보건복지부 통계를 알게 됐어요. 그걸 피부로 느꼈을 때, 비장애인으로 살아갈 때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무감각했던 이 문제가 뼈를 찌르는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고통으로 지하철로까지 내려가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 힘은 우리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데요,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게 전도예요. 그래서 저도 유튜브 구독을 전도하는 마음으로 (사람들 폭소) 의료연대에서 잘 전도해주시면 곧 오천 명 될 것 같아요.”

박경석이 의료연대 사람들을 보며 말하자 의료연대 사람들이 힘찬 목소리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화답한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47분, 박경석이 계속 말한다. “오늘 아침에도 기자들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그러다가 경찰서 장애인편의시설에 관해 알아봤더니 ‘이제까지 요구하는 경찰서만 했다’고 해요. 지금까지 어떤 경찰서가 스스로 요구해서 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제안을 좀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준비해서 경찰서에 조사하러 가면 어떨까요? ‘정당한 편의시설’ 목록이 있지 않습니까. 노들센터는 혜화경찰서, 성동센터는 성동경찰서, 이렇게 맡아서 우리가 직접 찾아가면 어떨까요?”

박경석의 제안에 이형숙의 눈이 반짝인다. 여러 경찰서에 여러 차례 가본 이형숙이 할 말이 많은 듯 아예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들고 말한다. “조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화장실 구조가 완전 엉망이에요. 싹 다 조사해야 해요. 제가 여러 군데 가봤잖아요, 화장실이 좁아서 화장실 문 열고 일 봐야 해요.”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인다. 결론은 ‘서울시협의회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자치구마다 철저하게 조사하자’이다.

박경석이 말한다. “먼저 서울시협의회에서 경찰서에 공문을 보내요. 체크리스트 항목이랑 같이. 제가 체크리스트 항목 드릴게요. 그리고 경찰서에서 먼저 스스로 체크해서 보내라. 그다음에 그거 가지고 가서 경찰서가 거짓말했는지 안 했는지, 우리가 편의시설 체크하는 거예요. 예전에 한 구청에선 장애인화장실을 밖에서도 다 볼 수 있게 투명하게 해놨어요. 직원한테 왜 이렇게 해놨냐고 물어보니 ‘여러분들 보호하려고요’ 이렇게 답해요. 지난번엔 남부터미널에 갔는데 장애인화장실이 수동휠체어도 못 들어갈 만큼 좁았어요.”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 김민재 노들센터 활동가는 핸드폰으로 전장연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고 있고, 박명훈 다큐인 영상활동가는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 김민재 노들센터 활동가는 핸드폰으로 전장연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고 있고, 박명훈 다큐인 영상활동가는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어도 실제 휠체어 탄 장애인은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성토가 이어진다.

박경석이 말한다. “그래도 옛날보다 좋아졌죠. 저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투쟁으로 좋아졌어요. 그런데 이만큼 올라왔는데 툭 추락하는 절망감, 그게 지금의 시대 아닌가 싶어요. 우리 20년 전에는 굉장히 불쌍했잖아요.” 박경석의 말에 이형숙은 다소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지금도 (장애인) 불쌍하죠. 지하철도 못 타는데.”

8시 58분, 박경석이 선전전을 정리하려고 한다. “어젯밤에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고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제 나이가 되면 어떻게 살 것인가 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데 저는 동격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긴 삶을 걸어가면서 마지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해결해줄 글이 있어요. 우리 유명한 홍은전 칼럼니스트의 책! 강희석 활동가가 『노란들판의 꿈』을 읽습니다!”

강희석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노란들판의 꿈』을 읽고 있다. 사진 강혜민
강희석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노란들판의 꿈』을 읽고 있다. 사진 강혜민

명가수를 소개하듯 강희석이 앞으로 초대된다. 강희석은 예전 노들야학 활동가 밍구가 박경석에게 수여했다던 ‘언제나 그 자리에 상’ 상장에 적힌 내용을 읽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비록 발음이 부정확하고 사람 귀찮게 하길 밥 먹듯 하며 욕심이 지나치게 많은 등의 단점이 있지만 ‘박경석이 있어 노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가 앞으로도 우리 곁에 영원한 동지로 남아 있을 것을 알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박경석을 오래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법한 그의 정확한 특성에 사람들이 폭소한다.

어느덧 9시가 살짝 넘었다. 마지막으로 박경석이 말한다.

“이 투쟁은 저와 몇 명의 투쟁이 아니라 모두의 투쟁입니다. 우리가 다 잡혀가더라도 여기 있는 분 중 단 한 명이라도 와서 지하철 선전전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승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누구를 짓누르는 승리가 아니라, 불평등을 없애고 차별을 없애는 큰 사랑 같은 투쟁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죠? 그래서 ‘연행’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경찰을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무서워하지 마시고 빨리 오세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이들 곁으로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들이 일렬로 서 있다. 사진 강혜민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이들 곁으로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들이 일렬로 서 있다. 사진 강혜민

마지막은 늘 그렇듯 구호다. “장애인에게 권리를! 차별은 이제 그만! 동정은 집어치워! 이윤보다 생명을!”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승강장을 하나둘 떠난다. 성동센터 활동가들이 혜화역 5-4 벽면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