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2일 288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일찍 도착한 혜화역 선전전 삼인방. 왼쪽에서부터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지호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사진 양유진
일찍 도착한 혜화역 선전전 삼인방. 왼쪽에서부터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지호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사진 양유진

아직 아침 공기가 차갑다. 버스에서 내려 혜화역 1번 출구 안으로 들어서면서 움츠러든 어깨를 펴본다. 오늘은 경찰들이 개찰구 앞에서부터 줄지어 서 있다. 이것은 매일 열리는 경찰과 장애인의 공동행사가 된 것일까?

7시 53분, 혜화역 승강장에는 이미 휠체어를 탄 세 명의 활동가가 경찰들 사이 고정석에 있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대표, 박지호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이들은 도대체 몇 시부터 있었던 것일까? 집에서는 몇 시에 출발한 것일까? 도대체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난 것일까? 이형숙은 이규식과 박지호를 자신의 핸드폰으로 찍는다. 어딘가에 사진을 올리는 듯하다. 7시 55분 저 멀리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보인다. 경찰들은 박경석 옆에 붙어 따라오며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지만, 박경석은 줄기차게 대답한다. 경찰도 박경석도 성실하게 임무를 다한다.

저 멀리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고 있다. 그의 옆에서 경찰이 따라붙으며 계속 질문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저 멀리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고 있다. 그의 옆에서 경찰이 따라붙으며 계속 질문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곧이어 서재현 전장연 활동가가 앰프를 끌고 온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탁영희와 권순성은 선전전 용품이 잔뜩 담긴 캠핑용 수레를 끌고 온다. 서재현이 앰프를 켜니 스피커 부분에서 번쩍 화려한 불빛이 나온다. 탁영희와 권순성이 일사불란하게 피켓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어디선가 “평생교육 피켓~” 이라고 한다. 박경석은 앰프로 음악을 틀려면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 서재현이 옆에서 블루투스 연결을 돕는다. 박경석이 말을 하는데 갑자기 음악이 나온다. 은하철도 999의 반주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박경석이 눈을 찌푸리며 핸드폰 속 가사를 본다. 조명을 쏟아내는 앰프가 곁에 있으니, 마치 노래방에 온 것 같다. 노래하던 박경석은 박수를 유도하고,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하다가 다음 가사 박자를 놓친다. “끝없는 욕설 위에~ (잠시 머뭇) 차별받는 장애인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네~ 무정차 멈춰라! 장애인에게 권리를~” 열창을 한다. 다 함께 부르자며 가사를 카톡방에 올린다. 권순성에게 앞에서 같이 부르자고 권유한다.

권순성은 “제가 음치여서… 잘 따라 해보세요~” 라고 하며, 함께 열창한다. “다 같이 목소리 내면서 잠을 깨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소리 작아요~” 그는 안경을 벗고 가사를 본다. 다 같이 노래하고, 박수와 함성으로 마무리 짓는다.

권순성 노들야학 교사가 핸드폰을 보며 노래 부르고 있다. 그의 옆에서 박경석도 핸드폰을 보며 따라 부른다. 사진 양유진
권순성 노들야학 교사가 핸드폰을 보며 노래 부르고 있다. 그의 옆에서 박경석도 핸드폰을 보며 따라 부른다. 사진 양유진

8시 4분, 노래를 마치고 박경석은 권순성에게 발언을 요청한다. 권순성은 생애주기에 맞는 교육 제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의무교육을 넘어선 개념이었다. 인생 전체를 보고 교육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다. 박경석은 왜 노들야학 교사를 하냐고 묻는다.

“28살에 특교과(특수교육학과)에 들어갔어요. 들어간 첫해, 김광석이라는 동갑 친구 집에 갔는데 28년 동안 집에만 있었던 거예요. 그 친구를 만나면서 (제가 갖고 있던) 특수교육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제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그 친구와 노들야학을 만나면서 이동권 투쟁도 같이하고, 활동 지원도 없었을 때라 도와주면서 많이 배웠고, 중요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저에게 중요한 선생님 역할을 해줘서 잊을 수가 없어요. 광석이의 삶이 저의 삶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박경석은 ‘김광석’이 아니라 ‘이광섭’일 거라고 이야기하며, 어디선가 잘살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과거 광화문역 선로에 내려갔던 사람 중 한 명이고, 그 사람을 같이 내려주다가 감옥 간 사람이 김도현이라는 기억도 함께 꺼낸다.

권순성 노들야학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권순성 노들야학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사람들이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탈시설 이행을 촉구하는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양유진
사람들이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탈시설 이행을 촉구하는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양유진

8시 20분, 한 시민이 ‘쌍따봉’을 보여주며 지나간다. 모인 사람들은 고마움의 눈빛과 마음을 전한다. 박경석이 권순성에게 질문한다. “중증장애인이 지역에 나오면 1억 5천이 든다는데, 예산 낭비하는 것보다 장애인들이 시설에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서울시가 하는 말이에요~” 권순성이 답한다. “같이 사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1+1=2를 증명할 수 있나요? 이것은 당연한 거잖아요. 공리라고 해요. 수학은 이것으로부터 시작하거든요. 공리를 저버린다는 것은, 인권을 저버리고 가겠다는 말인데. 당연한 걸 자꾸 증명하라니까 짜증이 나잖아요! 모르는 걸 가르쳐야죠. 어쩌겠습니까. 감사하다는 말을 못 듣더라도 1+1을 가르쳐야 합니다. 경찰분들도 이것을 알아야 해요. 공권력이잖아요.” 그의 목소리가 커진다. 곧이어 “아, 갑자기 흥분을 했네요”라고 하며, 발언을 마친다.

탁영희 노들야학 교사와 박미주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있다. 박미주 활동가는 피곤한 듯 벽에 기대어 있다. 사진 양유진
탁영희 노들야학 교사와 박미주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있다. 박미주 활동가는 피곤한 듯 벽에 기대어 있다. 사진 양유진

8시 29분, 박경석은 전날(21일) 서울시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전수조사’에 대해 말을 꺼낸다. 서울시는 탈시설 정책의 성과와 문제점을 살펴보겠다며, 거주시설에서 나온 장애인 1천 명을 대상으로 탈시설의 적정성과 만족도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탈시설에 대한 서울시의 태도를 고려했을 때 이는 탈시설을 공격하고 왜곡하는 설문조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박경석은 감금과 격리, 그리고 배제를 정당화하는 식의 설문조사 질문에 항의할 계획이다 “‘나올래? 안 나올래?’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나와 살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물으십시오! 웃기는 짬뽕 아니, 짜장면이에요. 서울시의 웃기는 짬뽕, 짜장면 같은 전수조사! 4호선에만 있을라고 그랬는데 (서울시청이 있는) 1호선, 2호선 확대해서 투쟁하겠습니다. 근데 우리가 천천히 할수록 시설에 계신 분들은 안전하게 계시면 되니까…” 이학인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빨리해야겠네”라고 읊조린다.

한문호 장애인배움터너른마당 활동가, 박종양 포천함께여는새날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양유진
한문호 장애인배움터너른마당 활동가, 박종양 포천함께여는새날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양유진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워크숍을 마친 후, 1박을 하고 혜화역 승강장에 나온 이들이 있다. 안산 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에서 활동하는 김선영 교장이 말한다. “아침 투쟁할 때, 멀어서 아이 때문에 못 온 게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서 1박을 하고 오게 되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계속 투쟁하지 않으면 우리의 권리를 무시당하고, 우리의 불편함이 잊히기 때문에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소통하고 권리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박종양 포천함께여는새날 활동가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꼭 하겠다고 결의를 밝힌다. 한문호 장애인배움터너른마당 활동가도 장애인평생교육법이 연내 제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8시 51분, 이형숙이 앰프 옆으로 나온다. 스크린도어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내린다. 이형숙은 휠체어를 후진으로 작동하며 조심스레 자리를 잡는다. 그 뒤로 한 시민이 지나가며 이형숙을 끝까지 쳐다본다. “3년 전부터 관공서의 정당한 편의시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작년은 노들 권익옹호 활동가들이 주민센터를 조사 했어요. 이번에는 경찰서를 해보려고 합니다. 2월 28일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을 하려고 합니다. 혜화경찰서 앞에서 정식으로 발표하고 모든 경찰서에 공문을 보낼 겁니다.” 이형숙이 경험을 덧붙인다. “보통 지하철, 관공서, 소방서, 행복복지센터로 화장실을 가는데, 거의 없거나 좁아서 문을 열어놓고… 어디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보래요. 자기가 봐주겠대요. 허허허”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도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노들야학 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재현 전장연 활동가가 『노란들판의 꿈』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노들야학 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재현 전장연 활동가가 『노란들판의 꿈』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양유진

9시 1분, 서재현이 책을 들고나온다. “노들야학 신입 교사 서재현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니까 너른마당 배미영 활동가가 저에게 일하는 곳을 옮겼냐고 묻더라고요(웃음).” 그리고 홍은전 작가의 책 『노란들판의 꿈』 133쪽을 편다. “두 단락 읽겠습니다. ‘수업이 우리를 만나게 했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수업이 아니었다면 (…) 작은 집이 각자의 우주 전체였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명왕성만큼이나 멀리 있는 것으로 알았던 (…) 아차산 기슭 작은 교실에서 만난 우리는 아득하게 달랐고(…)’ 수업 세 번 나가고 이런 말 하는 게 그렇지만, 노들야학에서 수업을 통해서 우리가 만났고, 만남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아서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보낸다. 한쪽에서는 노들야학 학생이자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인 조상지가 박찬욱 노들야학 교사와 마지막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박경석이 묻는다. “세미나와 빡센 훈련, 교사회비 만원 결의, 그리고 격주 토요일마다 오후 5시부터 길게는 다섯 시간, 짧게는 두세 시간 회의를 합니다. 자기 시간을 다 버리고 왜 노들야학 교사를 하나요?” 서재현은 답한다. “노들야학에 왜 왔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쩌다 보니 왔고, 근처에서 보다가 끌리는 게 있어서 왔어요. 학생분들 만나면 언어가 명확해지지 않을까요?” 박경석이 말을 잇는다. “저도 6개월 동안 훈련받고 오만 설움 받으며, 95년도에 교사 활동을 했어요. 똑같아요. 저도 몰랐어요. 왜 왔는지. 나랑 술 먹어줄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서 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좁은 공간에서 만나며 이야기 걸어주고 하니까 따뜻하더라고요. 그러다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은전이가 ‘우주와 명왕성’이라고 하니 시적인데, 저는 생 날것이에요.”

의사소통보조기구(AAC)로 발언 중 조상지 노들야학 부학생회장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양유진
의사소통보조기구(AAC)로 발언 중 조상지 노들야학 부학생회장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양유진

조상지가 의사소통보조기구(AAC)로 발언을 한다. “안녕하세요. 노들장애인야학 부학생회장 조상지입니다. 장애인평생교육법이 올해는 제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선전전에 나왔습니다. 야학에서 많은 사람들과 밥도 먹고 같이 배우고 동아리도 하고, 모꼬지도 가며, 교육받고 노동하고 함께 살고 싶습니다. 투쟁!” 사람들이 다 함께 “투쟁”을 따라 외친다.

9시 13분, 이형숙이 “수고했어요”하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활동가들이 사람들로부터 피켓을 분주하게 걷는다. 서재현은 마이크 선을 곱게 정리해서 앰프 머리 틈에 끼워둔다. 탁영희의 “고생하셨어요”라는 말이 경쾌하게 들린다. 박누리 노들야학 교사는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던 삼각대를 정리한다. 박미주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한쪽에서 물품들을 수레에 정리한다. 승강장의 그 누구도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맡은 일들을 해낸다. 혜화경찰서 형사는 이형숙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도 편의시설 조사 이야기인 듯싶다. 경찰벽이 움직이며, 승강장을 줄지어 떠난다. 모두 아침 퇴근을 하는 모양새다. 박미주는 앰프를 끌고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향하고, 아직 승강장에 남은 사람들은 손뼉을 친다. 열차가 들어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9시 16분. 3분 동안 사람들은 묵묵히,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혜화역 승강장에 빼곡히 들어선 경찰들. 사진 양유진
혜화역 승강장에 빼곡히 들어선 경찰들. 사진 양유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