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7일 285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오전 8시 5분, 오늘(17일)은 사람이 적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은 합쳐서 30여 명, 활동가는 10여 명 남짓 있다. 형광색 정복을 입은 경찰이 고단하다는 듯 한숨을 쉰다.

8시 9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말한다. “평상시엔 20~30명 있었는데 오늘은 적네요. 그래도 든든합니다. 우리는 1명이 남더라도 내일 다시 지하철에 나와서 선전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장애인의 시민권을 쟁취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경석이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이음센터) 소장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건다. “우리 문애린 대표님, ‘버스를 타자(2002, 박종필)’ 영상(영화) 보면 막 고개 숙이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왜 고개 숙이고 계셨어요?” 문애린이 성가시다는 듯 답변한다. “생각이 안 나요. 20년 전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삽니까?” 마침 마이크에서 울리는 ‘삐’ 소리가 박경석을 꾸중하고 문애린을 편드는 것 같다. (관련 영상: 영화 ‘버스를 타자’)

박경석과 문애린의 핑퐁대화가 이어진다. “저도 기억합니다. 2001년도죠. 그때 버스 점거했는데요. 문애린 대표님이 그 당시 버스 맨 앞에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 막 (허공을 응시하고 힘차게 팔뚝을 흔들며) 이러고 있는데 문애린 대표님은 고개를 숙이고,” 문애린이 박경석의 말을 자른다. “예, 예, 예. 아이고, 눈도 좋으시네요.”

‘버스를 타자’를 만든 고 박종필 감독의 동료, 안창규 다큐인 감독이 선전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버스를 타자’를 만든 고 박종필 감독의 동료, 안창규 다큐인 감독이 선전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11분, 박경석이 안미향 이음센터 활동가에게 말을 건넨다. “처음 뵙는 분인가요?” 문애린이 또 다그친다. “아니에요!” 박경석이 머쓱해하며 해명한다. “그쵸. 알고 있어요. 소개는 처음이잖아요. 그쵸? 이음(센터) 활동가 맞죠? 그쵸? 나 진짜 알고 있었어요. 그쵸?” 문애린이 “으이구” 하는 소리가 들린다.

8시 12분, 안미향이 말한다. “반갑습니다. 오늘 열 분이지만 정말 인원수와 상관없이 오늘도 투쟁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짧고 힘찬 발언에 활동가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8시 13분, 박경석이 이옥선 활동가에게도 괜히 모르는 척 인사한다. “저기도 어디서 많이 본 분 같은데? 우리 언제 많이 봤죠?” 갑자기 빨간 외투를 입은 할머니가 지나가며 말한다. “아유, 그만 좀 해요. 그만 좀!” 박경석이 멀어져 가는 할머니를 향해 말한다. “그렇게 안 하셔도 돼요. 에레베이터(엘리베이터) 잘 이용하세요.”

8시 14분, 이옥선이 말한다. “1년 전에 전장연에서 활동한 이옥선입니다. 제가 여기 투쟁에 참여 못 한 지가 1년 정도 되는데 반갑구요. 앞으로도 쭉 계속 참여할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현장에 온 이옥선에게 박경석이 활동가들을 소개한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를 가리키며) 요 앞에 잘 아세요? 마스크 쓴 사람. 정다운 활동가. 그쵸? 여기는 성가연, 저기는 이학인…” 관계를 맺고 함께 투쟁하려면 얼굴과 이름을 알아야 한다.

벽에 스티커를 붙이는 성가연 전장연 활동가. 사진 하민지
벽에 스티커를 붙이는 성가연 전장연 활동가. 사진 하민지

8시 15분, 최근에 수원으로 이사한 성가연 전장연 활동가가 말한다. “수원에서 서울로 오니까 한 세월이 걸리네요. 경기도처럼 멀리서 오는 동지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자주 만납시다. 반갑습니다.” 성가연은 발언이 끝나자마자 벽에 스티커를 붙였다. 선전전 현장을 촬영하며 기록하기도 했다.

권순성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제일 왼쪽)가 발언 중이다. 가운대에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제일 오른쪽에 박명훈 다큐인 감독이 있다. 사진 하민지
권순성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제일 왼쪽)가 발언 중이다. 가운대에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제일 오른쪽에 박명훈 다큐인 감독이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16분, 권순성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발언한다. “저는 안산에서 왔구요, 2시간 걸렸습니다. 음악감상반 선생님이구요, 2001년에 여의도 아니 오이도 참사 이후에 이동권 투쟁하고 열심히 참여하다가 한 15년 만에 다시 50살이 돼서 야학에 다시 왔는데” 권순성을 향한 환영과 환호가 쏟아진다. “야학 일도 열심히 못 하고, 이동권 투쟁도 열심히 못 하고 있어요. 요즘 활동지원사 교육받고 있거든요. 자주 뵐 수 있도록 하고, 20년 전 마음을 아직 갖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은 아직도 2000년도 그때니까 열심히 투쟁하도록 하겠습니다.”

권순성이 이어 발언한다. “저희 아버님이 연세가 드셔서 청각장애인이 되셨어요. 아버지가 저한테 ‘나 청각장애 5급 땄어’ 이러시더라고요.” 문애린이 깔깔 웃는다. “보수적이셨던 저희 아버님이 달라지셨어요. ‘너 데모하러 다닌다고 혼냈는데 내가 장애인이 돼 보니 네가 왜 데모했는지 알겠다’ 하시더라고요.” 정다운도 깔깔 웃는다.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아이구, 떨려.” 문애린이 “와, 멋있다!”라며 큰 손뼉을 친다.

이학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발언 중이다. 열차 문이 열려 있고 안에 승객이 가득 차 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열차 문을 닫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학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발언 중이다. 열차 문이 열려 있고 안에 승객이 가득 차 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열차 문을 닫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32분, 이학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말한다. “어제(16일)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농성을 시작하고 여야 교육위원회 의원들과 면담했습니다. 공청회를 먼저 해야 법안심사소위를 열 수 있대요. 공청회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2월은 꽉 찼어요. 아쉽지만 우리는 더불어민주당에 공청회를 빨리 잡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은 뒷짐 지고 멍하니 있다. 박경석은 다리를 주무른다. (관련 기사: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촉구하며 국회 앞 긴급 농성 돌입)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눈을 찡긋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눈을 찡긋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학인이 계속 말한다. “민주당 측에서는 ‘당에서 강하게 밀어붙여서 추진할 수 있는 법은 아니고,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을 줬어요. 우선은 공청회를 꼭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공청회가 언제 열릴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우리 농성투쟁 열심히 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문애린이 이학인에게 눈을 찡긋하며 미소를 보낸다.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휠체어 뒷모습. 가방 세 개가 걸려 있다. 사진 하민지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휠체어 뒷모습. 가방 세 개가 걸려 있다. 사진 하민지

이학인이 길게 설명하는 동안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있으니 휠체어 이용자를 정면에서 보게 된다. 박경석은 앞바퀴가 작고 뒷바퀴가 큰 수동휠체어를 탄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문애린, 손영은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전동휠체어를 탄다. 이들의 전동휠체어 뒷면에는 똑같은 로고가 쓰여 있다. 생김새는 세 휠체어 모두 조금씩 다르다.

이형숙·문애린·손영은의 휠체어에는 가방 두세 개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이형숙은 언젠가 내게 ‘가방이 무거우면 내 휠체어에 걸어도 된다’며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자신의 가방 두세 개에 내 가방까지 들 수 있다니, 휠체어 이용자는 세다. 박경석의 휠체어는 비교적 가벼워 보인다. 그는 다른 세 사람처럼 뭔가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진 않는다.

너른마당의 한문호 활동가(왼쪽)와 안정희 활동가(오른쪽). 사진 하민지
너른마당의 한문호 활동가(왼쪽)와 안정희 활동가(오른쪽). 사진 하민지

8시 39분, 박경석이 말한다. “활동가들이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위해) 의원님들 방문 두드리면서 ‘보좌관님, 만나주세요’ 하고 있어요. 우리는 언제까지 만나 달라고 해야 하는지. 힘이 센 단체는 안 그래도 되는데.” 이후 장애인평생교육기관 너른마당의 활동가 한문호, 안정희가 짧게 인사한다.

8시 46분, 박경석이 이형숙을 불러 말한다. “(우리 둘 중) 누가 진짜 장애인 같아요?” 이형숙은 “진짜, 가짜가 어딨어?”, 문애린은 “도토리 키 재긴데?”라고 대답한다. 박경석이 이어 말한다. “저는 ‘전통’ 후천적 장애인이에요. 근데 이분(이형숙)은 조금 아리까리 해.”

이형숙이 말한다. “저는 걸어본 기억이 없어요. 엄마한테 들었는데 ‘네가 세 살 때까진 걸어 다녔다. 세 살 때 열이 나서 병원에서 해열제 맞았는데 갑자기 몸이 축 쳐지면서 못 걸어 다녔다’고 했어요. 저도 선천적 장애인인 줄 알았어요.”

박경석이 다시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비장애인인 줄 알겠죠? 핸썸하고(잘생기고) 키도 크잖아요. 다치기 전에 175였어요.” 문애린이 묻는다. “누가 핸썸하다고 그래요?” “나한테 텔레그램 주시는 분 중에서 ‘잘생겼다’ 그러는 분 많아요.” “아침부터 느끼하게 하시네.” 박경석이 멋쩍게 웃으며 사과한다. “미안합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의 앞모습. 사진 하민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의 앞모습. 사진 하민지

8시 50분, 박경석이 후천적 장애인에 관한 설명을 이어간다. “장애 인구 중에 65세 이상의 후천적 장애인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박경석의 말은 대체로 사실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등록장애인 중 장애발생 원인이 선천적 원인인 사람은 8.51%뿐이다. 질환에 의한 후천적 원인이 46.16%, 사고에 의한 후천적 원인이 34.87%로 매우 높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장애인 인구수도 많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통계를 보면 등록장애인 약 264만 명 중 65세 이상 장애인은 약 127만 명, 48.25%로 절반에 가깝다. (관련 통계: 장애 발생 원인 및 시기전국 연령별,장애유형별,성별 등록장애인수)

박경석이 말한다. “아마 선천적 장애인은 더, 더 줄어들지 않을까요. 소아마비도 이제 ‘단종’됐지요?” 이형숙이 “‘멸종’이죠, ‘멸종’. 예방주사 다 맞으니까”라고 한다. 문애린은 “와, 개부럽네!”라고 말한다.

박경석이 농담을 섞어 말한다. “엄마 말 안 들으면 저처럼 장애인 되고요. 우리의 투쟁은 모든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이기적인 투쟁이 아니다’라는 거고요.” 이형숙이 말한다. “작년에 증액된 눈물코딱지만 한 예산 106억 원, 이것밖에 증액되지 않았기 때문에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님 면담 꼭 진행해야 될 것 같습니다.”

9시, 선전전이 끝났다. 오전 10시부터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한 피케팅이 예정돼 있다. 활동가들이 짐을 챙긴다. 이학인과 박철균 전장연 활동가가 피켓들을 모아 묶는다. 정다운은 성가연에게 고생하라고 안부를 전한다. 경찰도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한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왼쪽)과 이학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마로니에공원을 지나가고 있다. 아침해가 반짝거린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왼쪽)과 이학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마로니에공원을 지나가고 있다. 아침해가 반짝거린다. 사진 하민지

9시 5분, 마로니에공원에서 이형숙이 이학인에게 말을 건다. “아니 그래서, (장애인)평생교육법 진짜 어떡해?” 이형숙의 전동휠체어 속도에 맞추느라 이학인의 걸음이 빨라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