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6일 284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이 발언 중이다. 그의 뒤로 열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이 발언 중이다. 그의 뒤로 열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하민지

오전 8시 10분, 오늘(16일) 유달리 경찰의 경계가 삼엄하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선전전이 끝나면 국회의사당 앞으로 이동할 예정인데, 서울교통공사는 ‘피켓을 목에 걸고 열차에 탈 경우 탑승을 거부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이 말한다. “저희 소지품 중에 인화성 물질이 있어서 탑승이 안 된다고 하는데, 인화성 물질의 기준이 뭔가요? 그렇게 따지면 라이터는요?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울 시민도 인화성 물질 하나씩 다 소지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왼쪽)이 “전장연과 함께 달을 보아요” 피켓을 들고 있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오른쪽)는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왼쪽)이 “전장연과 함께 달을 보아요” 피켓을 들고 있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오른쪽)는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8시 17분,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상임대표가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를 비판한다. 이규식도 엄포를 놓는다. “불법 채증도 하지 마세요. 자꾸 불법 채증하시면 오늘 지하철 막겠습니다.” 배재현 혜화역장과 경찰들이 이규식과 대화를 나눈다.

8시 18분, 김필순이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투쟁에 관해 설명하며 노들장애인야학(아래 노들야학)을 소개한다. “전국에서 제일 큰 장애인 야학이에요. 노들야학 20주년 기념으로 ‘노란들판의 꿈(홍은전, 2014, 봄날의책)’이라는 책이 나왔어요.”

강희석 나야장애인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탈시설장애인당 점퍼를 입고 ‘노란들판의 꿈’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강희석 나야장애인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탈시설장애인당 점퍼를 입고 ‘노란들판의 꿈’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21분, 강희석 나야장애인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노란들판의 꿈’의 한 부분을 낭독하러 나온다. “낭독할 부분에 스티커를 붙여놨는데. 잃어버렸어요. 당황스럽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연윤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간사가 환호를 보낸다. 강희석이 민망할까 봐 보내는 환호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는 강희석을 쳐다보며 “헤헤” 하고 웃는다.

서재현 노들야학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재현 노들야학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24분, 서재현 노들야학 교사가 등장한다. 정다운은 “우와! 무슨 수업 하세요?”라며 일부러 말을 붙인다. 서재현이 말한다. “지금까지 두 번 수업했는데 노들야학이란 이름의 무게를 많이 느낍니다. 기분 좋은 일은, ‘노들야학’하면 아는 얼굴이 많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서재현이 쑥스러워하며 발언을 이어간다. “노들야학은 교육공간이기도 하지만 관계를 만드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야학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고, 관계를 만들고, 아는 얼굴이 많아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게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쟁취하겠습니다.”

김포 시민 장세현 씨가 발언 중이다. 장 씨는 “장애인교육권 완전보장을 위한 장애인들의 행진”이라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포 시민 장세현 씨가 발언 중이다. 장 씨는 “장애인교육권 완전보장을 위한 장애인들의 행진”이라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29분, 김필순이 수원 시민에게 발언을 요청한다. 피켓을 들고 있던 수원 시민은 미소로 부드럽게 거절한다. 수줍은 모양이다. 김필순은 이번엔 김포 시민 장세현 씨에게 발언을 부탁한다. 장세현이 말한다. “친구가 ‘불의에 저항하여 촬영하는 자’를 모집한다는 (창작 그룹 ‘우프’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링크를 보내줘서 (혜화역 선전전을) 알게 됐습니다. 시간 될 때마다 자주 나오려고 합니다.”

장세현이 활동가들의 환호 속에서 마저 말한다. “매일 이 자리를 지키고, 가끔 오셔도 자리를 빛내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노들야학 건물 근처를 산책할 때 선전전에서 뵌 분을 만났어요. 그분이 제게 (선전전에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반갑다는 말로 함께해요.”

연윤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간사가 “장애인평생교육 지원강화를 위한 법을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웃으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연윤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간사가 “장애인평생교육 지원강화를 위한 법을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웃으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33분, 연윤실이 장애인 교육권에 관한 삭발투쟁결의문을 낭독한다. 노들야학의 이수미 학생과 김명학 공동교장의 투쟁결의문이다. 연윤실이 말한다. “비마이너에서 삭발투쟁결의문을 읽을 때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투쟁이 다 우리에게 왔구나’ 생각합니다. 가끔 한 번씩 보세요. 좋더라구요. 작년 글이지만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날은 올 거예요.” (관련 기사: 삭발투쟁결의문)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왼쪽)가 휴대전화에 마이크를 대고 김기룡 중부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의 발언을 들려 주고 있다.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오른쪽)는 “장애인에게 교육은 권리이다!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왼쪽)가 휴대전화에 마이크를 대고 김기룡 중부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의 발언을 들려 주고 있다.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오른쪽)는 “장애인에게 교육은 권리이다!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43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앞으로 나온다. 박경석이 “창조, 창조” 하며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를 부른다. 박경석은 정창조를 자신의 옆에 서게 하더니 피켓을 들라고 한다. 정창조가 웃으며 피켓을 들자 활동가들도 따라 웃는다.

8시 44분, 박경석이 휴대전화에 대고 인사한다. 김기룡 중부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기룡은 장애인평생교육법 초안을 작성한 사람이다. 김기룡이 휴대전화 너머로 말한다. “2년 전, 두 분의 국회의원이 (장애인평생교육법을) 발의했습니다. 기존의 (평생교육)법이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장애인 교육권의) 심각한 한계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영욱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가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이 활동가 뒤로 혜화역 승강장 벽에 붙은 스티커 수십 장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이영욱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가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이 활동가 뒤로 혜화역 승강장 벽에 붙은 스티커 수십 장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장애인평생교육법에 관한 김기룡의 강의가 이어진다. 강희석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장세현도 집중해서 듣는다. 이들의 모습을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이 휴대전화로 촬영한다. 이영욱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 활동가는 영상 촬영을 한다. 박미주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페이스북 생중계를 한다.

김기룡이 강의를 정리한다. “장애인평생교육법은 장애인의 평생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과 프로그램을 늘리고 지원체계를 만들자는 내용입니다.” 박경석이 김기룡에게 말한다. “(국회 앞) 농성장에 지지방문 오세요. 고맙습니다.” (관련 기사: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촉구하며 국회 앞 긴급 농성 돌입)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선전전을 지켜 보고 있다. 그의 뒤로 “장애인에게 교육은 권리이다!”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선전전을 지켜 보고 있다. 그의 뒤로 “장애인에게 교육은 권리이다!”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8시 54분, 박경석이 말한다. “(장애인평생교육법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국회)의원들 관심이 적어요. 2년 전에 법안이 발의될 당시에는 평생교육계에서 ‘법을 왜 별도로 만드냐’고 반발도 많았어요. 전장야협이랑 같이 평생교육학회도 만나고, 평생교육원 원장도 만나고,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쪽을 계속 만나서 독자적인 장애인평생교육법이 왜 필요한지 설득한 게 2년 전입니다.”

9시 2분, 박경석이 자신에게 출석요구를 하러 온 경찰을 향해 말한다. “모든 경찰서에 엘리베이터 설치해야 출석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수사과장님, 이해하셨죠? 저 찾으시려면 매일 아침 여기(혜화역 승강장)로 오시면 돼요. 저 연행해 가셔도 됩니다. 아셨죠?” 경찰이 대답한다. “예예.”

혜화역 선전전이 생중계 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혜화역 선전전이 생중계 되고 있다. 사진 하민지

9시 5분, 선전전이 끝났다. 강희석은 수원 시민과 대화를 나눈다. “매주 목요일에 오실 거라고요? 우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이규식에게 타박을 놓는다. 이유는 못 들었다. “아이, 왜. 어디 가?” 박경석은 포카리스웨트를 건네는 윤태현 공연기획자와 셀카를 찍는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인사를 마친 이규식과 박경석이 열차에 타려 하자,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분주해진다.

9시 9분, 문화일보 기자가 박경석에게 일정을 묻는다. 그는 오른손에 석고붕대(깁스)를 했다. 박경석이 묻는다. “손은 왜 그래요?” 문화일보 기자가 대답한다. “넘어져서 6주 동안 깁스 하게 됐어요.” 박경석이 머리를 묶으며 말한다. “장애인 됐네.”

활동가들이 피케팅을 하고 있다.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이다!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하라!”, “장애인평생교육은 지역사회통합이다!”, “국회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지금 당장 제정하라”라고 적혀 있다. 그 앞을 휠체어 비이용자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피케팅을 하고 있다.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이다!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하라!”, “장애인평생교육은 지역사회통합이다!”, “국회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지금 당장 제정하라”라고 적혀 있다. 그 앞을 휠체어 비이용자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하민지

9시 12분, 배재현 혜화역장이 확성기를 들고 경고 방송할 준비를 한다. 이규식과 박경석은 오전 10시에 국회 앞에서 열리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투쟁 기자회견에 빨리 가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행동을 할 시간이 없다. 열차를 최대한 빠르게 타려고 하지만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이규식이 덜 탔는데 문이 닫힌다. 열차 문이 양쪽에서 이규식 휠체어를 꽉 문다. 서울교통공사 직원 두 명이 문을 열라는 듯 경광봉을 힘껏 흔들며 “아이씨. 휠체어 타야 되니까 자리 좀 비켜 주세요!” 하며 짜증을 낸다. 바쁘게 뛰어가는 시민이 직원의 어깨를 치는 바람에 직원의 손에서 경광봉이 떨어져 해체된다. 경광봉 조각을 줍는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다.

9시 15분, 열차 문이 열리고 이규식, 박경석, 경찰, 서울교통공사 직원 모두 열차에 낑낑대며 탔다. 열차가 멈춘 시간은 3분. 지하철행동을 안 해도 장애인이 지하철 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장애인 때문은 아니다. 열차가 출발하자, 열차에 타지 않은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서로 격려한다. “오늘도 끝났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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