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3일 294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도끼와 칼 모양의 머리띠를 쓰고 좀비 흉내를 내는 활동가들. 사진 하민지
도끼와 칼 모양의 머리띠를 쓰고 좀비 흉내를 내는 활동가들. 사진 하민지

오전 8시 8분, 활동가들이 도끼와 칼 모양의 머리띠를 나눠 쓴다. 좀비 흉내를 내면서 구호를 외친다. “장애인에게~~ 권리를~~ 어어어~~” 이들을 촬영하다 웃겨서 잠시 주저앉았다.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과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나를 지목하며 말한다. “비마이너 기자님 웃겨서 쓰러졌어요!” 서울교통공사 직원과 경찰의 표정이 궁금했는데 웃느라 보지 못했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승강장 벽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스티커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진이 있고 “UN탈시설가이드라인 이행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승강장 벽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스티커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진이 있고 “UN탈시설가이드라인 이행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17분,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내게도 도끼 모양의 머리띠를 건넨다. “누구도 배제할 수 없는 선전전이라서요…” 좀비처럼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이들을 좀비 기자가 촬영하는 풍경이었다.

8시 21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전날(2일)에 있었던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과의 면담을 브리핑한다. 박경석이 말한다. “서울시가 유럽에 가서 잘된 시설을 견학하고 온대요. (탈시설에 반대하는) 서울시 뜻과 윤석열 정부의 방향을 명확하게 공개적으로 밝히는구나 싶었어요.”

8시 23분, 박경석이 계속 말한다. “2023년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 중에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증액을) 못하겠다 하더라고요. 돈이 많이 든대요. 우리가 기획재정부에 요구하는 예산 중에서도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반대한대요. 탈시설 예산이라 하면서 도매급으로 묶어서 공격하더라고요.” (관련 기사: [전장연-오세훈 팩트체크③] 장애인권리예산 중 탈시설 예산이 70~80%?)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26분, 문애린이 박경석의 브리핑을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끄덕하며 듣는다. 박경석이 말한다. “탈시설 ‘전수조사’의 문제점은 인정을 했고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의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을 조사하는) ‘권리조사’를 요구했더니, 권리조사에 전장연도 참여시키고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도 참여시킨대요. 갈라치기할 것이 우려되지만 기대해 보려 합니다.”

8시 31분, 이형숙이 앞으로 나온다. 박경석이 이형숙에게 좀비처럼 구호를 외칠 것을 제안한다. “좀비처럼 함 해보세… 푸흡” 이형숙은 두 팔을 앞으로 뻗어 열 손가락을 늘어뜨리고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어어어~~~”라며 좀비 흉내를 낸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좀비 흉내를 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좀비 흉내를 내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34분, 이형숙이 말한다. “어제 서울시가 저희 쪽에 메일을 보냈어요. 3년 치 회계자료를 30분 만에 내놓으래요. 서울시가 우리를 탄압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어요.” 문애린도 말을 보탠다. “(오후) 5시 30분에 메일 보내더니 퇴근 전까지 내놓으라 한 거예요. 6시 퇴근이니까 30분 만에 달라고 한 거죠.”

박경석이 이어 말한다. “노들장애인야학(아래 노들야학)에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3년 치 사업실적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다음 주) 월요일에 방문할 거라 하대요. 종도 그렇게 안 부려 먹을 거예요. 서울시는 왜 조사하는지, 목적이 뭔지 밝히지도 않고 표적수사를 하겠답니다. 장애인 권리 보장하면서 사업 잘했다고 표창 주려는 모양이에요.”

8시 39분, 조아라가 질문한다. “김상한 실장이 협약 다 지키면 나라 망한다고 했다면서요? 협약 지키면 정말 나라 망하나요?” 박경석이 대답한다. “(협약이 아니라) 지독한 차별 사회인 대한민국이 망해야 됩니다. (농담조로) 아마 그런 뜻에서 이야기한 거 아닐까요?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증액에 반대하면서 그런(나라 망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김상한은 티포(T4, 독일 나치의 장애인 학살 프로그램) 실장이에요. 티포 서울시, 티포 (오세훈 서울) 시장.”

한명희 전장연 조직실장이 홍은전 작가의 책 『노란들판의 꿈』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명희 전장연 조직실장이 홍은전 작가의 책 『노란들판의 꿈』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43분, 한명희 전장연 조직실장이 홍은전 작가의 책 『노란들판의 꿈』을 낭독하러 앞으로 나온다. 한명희가 말한다. “오랜만에 표지를 자세히 보니까 교장샘(박경석)과 제가 있네요. 10년 세월이 스쳐 지나갑니다.” 한명희가 지하철 리프트 참사에 관한 부분을 낭독한다. 박경석이 말한다. “벌써 12년 전 일이네요. 저 때는 어떻게 살았지 싶은데, 그래도 견뎠네요.”

8시 51분, 책 내용에 관한 소감을 주고받는 사이, 지팡이 짚는 노인이 천천히 선전전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문이 열린 열차에 천천히 타려는데 열차 문이 닫힌다. 노인의 몸이 열차 문 사이에 끼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 여러 명이 급하게 경광봉을 흔들며 열차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낸다.

비장애인만 태우는 열차는 장애인을 기다리지 않고, 지팡이 짚고 다리를 절룩이는 노인도 기다리지 않는다. 약하고 느리다 여겨지는 이들은 좀비처럼 배제된다. 그러나 이 좀비들에겐 세상을 뒤집을 힘이 있다.

박명훈 다큐인 감독이 촬영 중이다. 사진 하민지
박명훈 다큐인 감독이 촬영 중이다. 사진 하민지

8시 54분, 박경석이 새로운 제안을 한다. “우리 탈시설 운동을 확장해서 요양원 폐쇄 운동을 하면 어떨까요? 여기 늙어서 요양원 가고 싶은 분 있으세요? 정 형사님, 가고 싶으세요?” 형사가 대답한다. “그렇진 않죠.”

박경석이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 진지하게 요양원 폐쇄 투쟁을 제안한다. “여기 있는 분들은 한 표 주신 거예요. 맞죠?” 탈시설 운동과 요양원 폐쇄 투쟁이 연결된다면 열차 문 사이에 몸이 끼인 지팡이 노인도 요양원에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원하는 지원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59분,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마무리 발언을 한다. “엄혹한 시기를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420(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슬로건은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입니다. 누구는 두고 떠나는 열차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타는 열차를 의미합니다.”

9시 1분, 박경석이 깜빡 잊고 못 전한 소식을 덧붙인다. “3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27일에 잡혔대요. 그날 (한덕수 국무) 총리와의 면담을 추진할 거라고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말했어요. 그리고 어제 여의도에서 목사님들 만났는데요. ‘예수님께서 우리만 꾸짖는 게 아니라 윤석열(대통령)도 꾸짖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했어요.” (관련 기사: 전장연 만난 이영훈 목사 “이동권, 종교계 머리 맞대겠다”)

강희석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선전전 현장을 생중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강희석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선전전 현장을 생중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임지영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 선전전 현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임지영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 선전전 현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수미 노들야학 학생이 칼 모양의 머리띠를 쓰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수미 노들야학 학생이 칼 모양의 머리띠를 쓰고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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