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7일 296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박채달 씨가 혜화역 벽면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채달 씨가 혜화역 벽면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4분,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말한다. “아직 오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8시 10분에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스티커 붙일 수 있는 분들은 뒤에 스티커를 같이 붙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곧이어 장애해방가 노래가 나온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시민 박채달, 김원우가 벽면에 스티커를 붙인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서울시협의회) 회장은 목에 커다란 빨간 리본을 걸고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빨간 리본을 하나씩 건넨다. 사람들 목에 차례로 빨간 리본이 걸린다.

8시 10분, 연윤실 전장연 활동가가 “투하” 외치며 경쾌하게 인사한다. “유튜브 보면 유명한 분들이 제각각 인사하잖아요. 펭수는 ‘펭하’ 하면서. 우리 투쟁하는 사람들은 ‘투하’하면서 인사해보면 어때요. 노들센터, 투하! 광진센터 투하!” 연윤실이 사람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출석 체크한다.

연윤실 전장연 활동가가 아침 선전전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강혜민
연윤실 전장연 활동가가 아침 선전전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강혜민

혜화역 선전전 사회를 보던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지 않아 연윤실이 사회를 보게 됐다. 연윤실이 말한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저도 생각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프리스타일로 이야기 나눠볼게요. 오늘도 너무 사랑스러운 규블리 규식 대표님 오셨고, 프랑스에서 시민분들도 오셨습니다. 와아~”

8시 15분, 연윤실이 최근 서울시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며 박미주 사무국장에게 경과보고를 요청한다. 연윤실이 “커몬, 커모온~” 장난스레 손짓하자 바닥에 앉아 전장연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하던 박미주가 무겁게 몸을 일으킨다.

그는 지난 2월 2일 있었던 전장연과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들이 왜 지하철을 타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말하기보다, 시민불편 초래하지 말라는 이야기만을 반복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시민 안에 장애인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박미주가 발언하는 동안 앰프가 뚝뚝 끊기자 그는 앰프를 매만지며 발언한다. 그 모습을 본 연윤실이 유선마이크를 주섬주섬 꺼낸다.

박미주의 이야기는 그사이 한 달을 훌쩍 넘어 3월 2일 이야기에 도착해 있다. 그날 전장연은 김상한 복지정책실장과 실무 면담을 했다. 그런데 그 면담이 있기 직전, 서울시는 탈시설장애인 1천 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한다며 프리웰 산하 향유의집에서 탈시설한 장애인들을 찾아가 그들 집을 들쑤시고 다녔다. 시설에서 나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탈시설을 반대하는 이들 편에 서서 탈시설을 왜곡하고 공격하기 위한 조사였다는 것이 조사 과정에서 속속히 드러났다. 전장연은 면담에서 표적수사 같은 방식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지원을 조사하는 권리조사를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상한 복지실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상한 복지실장 답변은…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난감하듯 웃는다) 기획재정부에 활동지원예산을 요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굉장히 큰 비용이 들거든요. 정부가 활동지원예산을 책정하면 서울시는 예산을 5:5 지방 매칭 해야 해요. 중앙정부 활동지원예산이 올라가면 그만큼 서울시도 부담해야 하는 거죠. 서울시는 ‘활동지원 24시간 필요한 사람이 자립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 사람은 의료서비스 받으면서 시설에서 살아야 하지 않냐’면서 권리를 계속 예산과 비용의 문제로 이야기했습니다. 장애인 한 명 살아가는 데 그만큼 쓸 수 없다는 겁니다. 이번 주에 서울시 고위공무원들이 덴마크 등 유럽에 선진화된 시설을 보러 간다고 합니다. 탈시설에 대한 이견이 많으니 유럽 가서 보고 오겠다는 건데요, 그러면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초청해서 이야기 들어보자는 저희의 제안은 거절했습니다.”

박미주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난 2일,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전장연은 160여 개 회원단체 정보를 내놓으라는 연락을 받고, 자립생활주택을 운영하는 운영기관 중 서울시협의회 소속 11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오후 5시 30분에 ‘2011년부터 올해까지 13년 치 회계 자료를 당일 퇴근 전까지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박미주는 “지금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 좀만 더 이야기할게요”하며 커닝 한 번 하지 않고 머릿속에 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줄줄 풀어낸다. 같은 날, 탈시설한 중증장애인의 일자리인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수행하는 기관들도 연락을 받았다. 서울시가 6일 월요일부터 기관 실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운영기관에서 ‘기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답했더니 서울시가 ‘보조금 다 지원받으면서 왜 못한다는 거냐’면서 매우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이미 작년에 방문조사도 이뤄진 상황인데 서울시가 전장연을 표적 삼아 문제를 찾아내고 공격하려는 의도로밖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해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법적 기반을 갖고 나아갈 수 있도록 제도화 투쟁을 하려고 합니다. 서울시가 탈시설을 왜곡하고 공격해도, 우리 안에서 단결해서 싸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발언은 20분간 이어졌다. 그가 드디어 마이크를 내려놓으니 사람들이 “와아”하며 박수치고 함성을 보낸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연윤실도 “모닝 필리버스터인 줄 알았어요”하며 장난스레 말한다. 박미주는 다시 전장연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하는 핸드폰 앞으로 가서 바닥에 주저앉는다.

박경미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AAC를 통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미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AAC를 통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36분,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오신 분 중 발언하실 분”을 찾는 연윤실의 말에 박경미 활동가가 손을 번쩍 든다. 그는 의사소통보조기기(AAC)로 미리 발언을 준비해왔다. “(300일 가까이 이어 온) 기나긴 선전전을 이젠 마치고 싶습니다”로 마무리되는 발언이 끝나자 이형숙은 두 눈이 휘어지게 웃는다.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눈은 피곤한 듯 자꾸 감긴다.

8시 41분, 노들센터 ‘새싹’ 활동가 성지민이 나온다. 그는 지난 2월 1일 첫 출근을 한 신입활동가로 센터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어제 한 노동자분이 자기 일자리 이제 없어지는 거냐고 물어보셨어요. 중증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는 이 현실 속에서 권리를 생산하며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 일자리는 꼭 필요합니다.”

성지민은 4일 별세한 미국장애인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 『나는, 휴먼』을 낭독한다. 쥬디스 휴먼은 국제장애옹호단체를 설립해 장애인권 신장을 위해 활동하고, 미국장애인법(ADA)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성지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책 『나는, 휴먼』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성지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책 『나는, 휴먼』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현상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다. (…) 변화에 반대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주장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거나, 안전하지 않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비용이 많이 들고, 안전하지 않고, 불가능하다는 말은 사람들을 논쟁의 좁은 미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 장애인들은 동등한 기회를 요구하면서 혹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닌가 부담을 느끼는 마음도 극복해야 한다.” (『나는, 휴먼』, 219~221쪽)

낭독이 끝나자 연윤실이 놀란 듯 묻는다. “와, 이거 미국 이야기죠? 2023년 3월 서울 이야기 아니죠? 우리 정부 입장이랑 똑같아서 놀랐어요. 사실 저는 티포(T4) 이야기할 때도 약간 아리까리했거든요. 그런데 장애인에 대한 핍박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네요.”

박채달, 김원우 씨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채달, 김원우 씨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53분, 프랑스 파리에서 온 시민 박채달, 김원우가 나온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다. 서울에 공연 전시를 위해 한 달 정도 체류하고 있는데, 혜화역 선전전에 오는 것도 한국 방문 목적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다음 주 화요일에 출국하는 박채달은 “매일 오겠다”고 약속한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진다.

그때 이형숙이 “질문! 왜 여기 오고 싶었는지 궁금해요”라며 손들고 묻는다.

박채달이 답한다. “지난 1월에 비마이너를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매일 비마이너 기사를 읽으며 공부하게 됐는데요, 분노하고 마음이 힘들었어요. 사실 저희 엄마도 장애인인데요,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저에 대해 각성하게 되면서 한국 오면 가능한 여기 많이 나오고 싶었습니다.”

김원우가 말한다. “저도 무지했던 사람인데 옆에 친구(박채달)가 알려주면서 시민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배우고 참여하고 싶어서 오게 됐습니다. 이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혐오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그게 왜 가장 소외된 사람에게 쏠리는가 물음이 있었어요. 추상적으로만 생각하기보다 직접 거리에 나와서 미약하지만 소리도 지르고 자리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많은 용기를 줬던 것은 이런 훌륭한 행동이 300일 동안 지속된 게 유쾌함이었다는 데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휠체어 앞에 “기획재정부는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예산 보장하라”는 피켓이 헤진 채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휠체어 앞에 “기획재정부는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예산 보장하라”는 피켓이 헤진 채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피로에 눈이 감겼던 사람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비마이너를 읽고 오게 됐다는 인사에 취재하던 비마이너 기자도 얼떨결에 잠시 마이크를 잡는다.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은 ‘프랑스 독자’와 서로 허리 숙여 공손히 인사한다. 강혜민이 말한다. “생각지도 못한 큰 인사를 들으니 너무 힘이 납니다. 한국에 오면 이곳에 가장 오고 싶었다는 그 말이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을 주네요.”

사람들이 박채달과 함께 프랑스어로 ‘투쟁’을 외친다. 뤼트 혹은 루트, 그 어느 사이에 있는 발음이었다.

이제 선전전을 마칠 시간이다. 9시 3분, 이형숙이 말한다. “과거 서울시는 중증뇌병변장애인은 시설에서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2010년이었어요. 이제 더는 어떤 누구도 중증뇌병변장애인이 지역에서 살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중증발달장애인은 시설에서 나올 수 없다고 하는데요, 이것도 분명 바뀔 것입니다. 누구도 시설에 있어선 안 됩니다.”

9시 5분, 구호를 외치며 선전전이 끝난다. 몇몇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온 시민들에게 다가간다. 이규식 서울장차연 대표는 3월 27일에 자신의 책이 나오는데 꼭 보내주고 싶다며 프랑스 시민들에게 주소를 물어본다.

이형숙은 자기 목에 매고 있던 빨간왕리본을 박채달에게 건네며 같이 사진 찍자고 제안한다. 리본에는 “장애인도 시민입니다! 시민의 짐. 혐오정치 철폐!”라고 적혀 있다. 박채달이 리본을 목에 건다. 혜화역 벽면을 배경으로 박채달, 김원우, 연윤실, 이규식, 이형숙이 “투쟁”을 외치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왼쪽 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연윤실, 박채달, 김원우, 이형숙, 이규식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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