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0일 299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청량리 방면 승강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의 뒷모습. 그가 참여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청량리 방면 승강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의 뒷모습. 그가 참여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오전 8시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 4-4와 5-1 사이. 복작복작 휠체어 사이로 출근길 시민들이 지나간다. 지하철 보안관과 경찰 등 익숙한 얼굴들도 보인다. 매일 아침 선전전을 진행하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보안관을 등지고 선다. 그의 형형한 눈빛이 참여자들을 향해 쏘아져 나온다. 손에 든 마이크를 움직일 때마다 길게 늘어뜨린 흰 머리가 조금씩 흔들린다.

“이음센터(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셨습니다. 노들센터(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셨습니다. 피플센터(피플퍼스트서울센터) 오셨습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오셨습니다.”

박경석이 단체명을 호명하자 참여자들이 와와 웃는다. 문애린 이음센터 소장은 눈꼬리를 올리며 활짝 웃어 보인다. 프랑스에서 온 박채달 씨는 휠체어 사이에 서서 피켓을 들었다.

“남대문경찰서도 오셨습니다.”

경찰 한 명이 두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인사한다. 아직 앰프와 마이크가 도착하지 않았다. 선전전 참여자를 한 명씩 소개하는 박경석이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면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한다. 승강장에 들어오는 전동차가 덜컹거리는 소리, 역사 내 안내방송 소리, 경찰 무전기를 뚫고 나오는 다급한 목소리, 그리고 박경석의 발언이 한데 뒤섞인다.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시민의 짐, 혐오정치 청폐! 장애인도 시민입니다!’라고 적힌 빨간 리본을 목에 단 채 웃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시민의 짐, 혐오정치 청폐! 장애인도 시민입니다!’라고 적힌 빨간 리본을 목에 단 채 웃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8시 15분, 박경석이 선전전 시작을 알린다.

“권리조사라는 게 뭔지 아시나요.”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짧고 굵게 답한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지원서비스가 무엇인지 조사하는 거죠.”

이어서 박경석이 2009년 마로니에 투쟁을 설명한다.

“시설에 가서 조사한다고 하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시설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자립생활을 하고 싶은지 꼭 물어봐요. 처음에는 장애 유형별로 시설이 굉장히 다양했어요. 그러다 2009년부터 시설에서 나가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이 사람들이 당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라는 시설 내 비리를 고발했는데, 여전히 지역에서 살아갈 환경은 갖추어져 있지 않았죠. 그곳에서 나온 장애인들은 마로니에공원에 이삿짐을 풀고 노숙하며 탈시설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탈시설운동의 첫 번째 역사입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지역사회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시설에서 나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나와야 해요. 이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정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보를 제공해야 해요. 나갈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묻는다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겁니다. 권리조사에 대해서 설명을 더 들어볼게요. 이정하 동지, 나와주세요.”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 바닥에 붙은 스티커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휠체어에 걸린 피켓들. 사진 복건우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 바닥에 붙은 스티커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휠체어에 걸린 피켓들. 사진 복건우

박경석이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를 옆자리로 불러낸다. 앰프와 마이크가 실린 짐수레도 연이어 도착한다. 초록색, 보라색 피켓을 든 참여자들의 환호가 승강장을 가득 채운다. 8시 22분, 이정하가 싱긋 웃으며 마이크를 잡는다.

“서울시는 2월 21일 탈시설 장애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조사팀을 꾸려 탈시설 과정의 적정성, 생활 만족도, 건강 상태 등을 살펴보겠다는 계획입니다.

이에 따르면 2009년부터 탈시설한 장애인 당사자가 조사 대상으로 참여합니다. 그동안 탈시설 당사자는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서울시는 탈시설 정책을 어떻게 이행했습니까. 여전히 지원주택, 활동지원조차 마련하지 못해 지역사회에 있는 장애인은 계속해서 시설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정하가 탈시설 자립생활의 ‘장벽’을 말한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탈시설가이드라인을 보면 모든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시설에 남아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규정합니다. 탈시설 과정은 장애인의 존엄성 회복 및 이들의 다양성 인식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서울시는 장애인이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개인별 요구와 지역사회 자립을 막는 장벽을 평가하십시오. 서울시는 탈시설 당사자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원칙을 준수하십시오. 기본적으로 조사 계획 및 평가, 결과 확인까지 탈시설 당사자가 접근가능한 참여 절차를 마련하십시오.”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스티커를 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발언 중인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에서 공동준비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복건우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스티커를 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발언 중인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에서 공동준비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복건우

8시 30분,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박경인이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박경석 옆에 선다. 그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에서 공동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탈시설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왜 조사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조사는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하는데, 서울시는 그런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사 기준이 무엇이고 조사를 왜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시는 발달장애인이고 중증장애인이면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 자립해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장애인을 어떻게 하면 시설에 보낼 수 있는지 찾아내기 위해 조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박경인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이어가는 동안 박경석은 바닥에 스티커를 붙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적힌 장애인 권리 스티커를 서울시와 보수 언론은 청소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좀비 스티커’라고 부른다.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책 《집으로 가는, 길》 한 꼭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책 《집으로 가는, 길》 한 꼭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8시 50분,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책 《집으로 가는, 길》을 앞뒤로 넘기며 미리 표시해 둔 구절을 찾는다.

“왜 탈시설 전수조사 기간을 2009년부터로 잡았을까. 이 책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어요.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반대했지만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2009년 그날의 이야기입니다.”

조아라가 76페이지를 펼쳐 한 꼭지를 낭독한다. 이정하가 동료 조아라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박미주 활동가는 녹화 중인 스마트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조아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국 사회 최초의 탈시설 정책이 마련된 것이죠”라는 구절에서 문애린은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9시가 다가오자 이형숙이 마무리 발언을 한다.

“탈시설장애인을 전수조사한다면서 그렇게 적다니요. 서울시만 해도 아직 2,300명 가까운 장애인이 감옥 같은 거주시설에 있습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에 대한 권리조사를 제대로 하라고 다 같이 구호를 외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참여자들이 손을 번쩍 들어 외친다.

“장애인에게 권리를!”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에 참여한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복건우
10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에 참여한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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