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공사, 지하철 시위 막기 위해 거액의 손배 청구
손해배상 금액 3000만 원→5145만 원→6억 5290만 원
‘전장연 죽이기’ 소송 멈추고 장애인 시민권 보장부터 하라”
“비바람 피하려다가 태풍 맞게 생겼네.”
18일 오전 10시 20분, 서울중앙지법 동관 452호를 나오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날 법원에서는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가 지하철 시위를 벌인 전장연에 청구한 5145만 2145원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첫 기일이 열렸다. 그러나 판사는 다음 기일을 잡지 않았다. 원고(서울교통공사가)가 피고(전장연 등)에게 지난 1월, 6억 원가량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실을 확인하고는 “합의부 사건을 먼저 진행하자”고 한 것이다. 민사소송에선 소송액을 기준으로 5억 원이 넘으면 합의부(판사 세 명)가 진행하며, 그 이하는 단독재판부(판사 한 명)가 맡는다. 즉, ‘큰 사건’부터 먼저 진행하자는 의미다.
지난 1월 10일, 공사가 전장연에 6억 145만 3814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졌으나 전장연은 소장을 받지 못해 확인이 어려웠다. 그러나 이날 법정에서 사건번호를 알게 되어 조회해 본 결과, 지난 1월 6일 사건 접수된 것을 확인했다. 피고가 15명에 달해 소장 접수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로써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에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은 총 6억 5290만 5959원이 됐다.
- 시위 봉쇄 목표로 거액의 손배 제기, 3000만 원→6억 5290만 원 청구
이날 재판에 앞서 오전 9시 50분, 전장연은 서울중앙지법 동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가 청구한 거액의 손해배상은 “장애인 시민권을 봉쇄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비판했다.
공사는 2021년 11월 23일 전장연의 지하철 투쟁으로 정상적인 지하철 운행이 어렵다면서 3000만 10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있기 전인 2021년 1월 22일부터 11월 12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일어난 지하철 시위에 대한 청구였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재판 전 전장연과 공사 간의 이견을 좁히기 위한 조정심의를 열었다. 그 결과, 1년 후인 2022년 12월 9일 1차 조정결정문이 나왔다. ‘열차 운행을 5분 초과하여 지연시킬 경우, 500만 원의 벌금을 내라’는 내용의 조정이었다. 전장연은 수용했지만 공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시기, 오세훈 서울시장은 언론을 통해 “1분만 늦어도 큰일 난다”면서 법원의 1차 조정결정문을 공개 비판했다.
공사의 이의신청으로 2023년 1월 10일, 법원은 2차 조정결정문을 냈다. 여기에는 ‘5분을 초과하여’라는 내용이 삭제됐다. 전장연은 오세훈 시장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관치로 법치를 흔든 결과”라고 규탄했다. 다음 날인 11일, 공사는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를 통해 손해배상 금액을 3000만 100원에서 2145만 2045원을 추가한 5145만 2145원으로 증액했다.
당시 오세훈 시장이 전장연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드러내자마자, 공사와 경찰의 입장은 돌변했다. 1월 2~3일 양일간 삼각지역에서 전장연이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자, 공사와 서울시는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키고 물리적 폭력을 써서 이들의 탑승을 막아섰다. 전장연에 따르면, 공사는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1월 2일 하루에만 지하철을 13회 무정차 통과시키고, 서울경찰청은 640여 명의 병력을 배치하여 전장연을 원천 봉쇄했다고 한다.
또한, 1월 19일에 공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로 인해 사회적으로 445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해 지하철도, 버스도 탈 수 없어 갇혀 살아야 하는 장애인의 시민권에는 침묵한 채,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 불편’에만 초점 맞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는 언론플레이를 서울시가 대놓고 한 것이다.
- “오세훈 시장, ‘전장연 죽이기’ 소송 멈추고 장애인 시민권 보장부터 하라”
변론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고 측 대리인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공사는 구체적인 손해액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청구액을 증액하면서도 공사가 제출한 것은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산출하였다는, 구체적 근거를 확인하기 어려운 내역표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이 소송은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을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면서 “실제 공사는 조정 과정에서 이 소송의 목적은 손해배상이 아니라 지하철 시위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란 공적 사안에 대해 발언이나 행위를 한 개인이나 시민사회단체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공적 참여를 봉쇄하는 소송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사측이 노조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을 거는 것 등이 해당한다. 이러한 문제들로 국회에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기 위한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제정에 이르진 못했다.
박 변호사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공론장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을 법정으로 이동시켜 대중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시민의 정당한 정치적 표현을 위축시킨다”면서 “미국의 경우, 봉쇄소송이 명백한 경우엔 초기각하나 약식판결을 통해 소를 종결시키고 있다. 이 사건 또한 신의성실원칙에 반한 소권 남용으로 각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전장연의 지하철 투쟁은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모든 이들의 권리보장이라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평화적 방법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청구 그 자체도 기각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고인 박경석 대표는 “서울시는 지난해 12월부터 무정차하겠다, 1분도 용납할 수 없다며 ‘전쟁’을 선포했다. 이 소송도 그 전쟁의 결과다. 현재 서울시는 민사소송뿐만 아니라 형사소송에 최근 과태료 부과까지 하고 있다”면서 “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는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임에도 지난 22년간 이 지독한 차별의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전장연을 죽이기 위한 소송을 멈추고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먼저 보장하길 오세훈 시장에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향후 소송의 부당성과 국가와 지자체, 공기업이 이동권 보장을 위해 해야 하는 역할을 강조하며 변론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